악마는 왜 굳이 '프라다'를 입었을까?

프라다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분위기로 말한다.

by 퍼퓸그라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처음 본 게 어언 20년. 그때만 해도 악마가 뭔지는 알았어도 프라다가 뭔지는 잘 몰랐다. 물론 이후 몇 년도 다름 없었다. (내 나이를 유추해보지는 마시라.) 그저 ‘어른들의 브랜드’, ‘비싸 보이는 가방’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내게 프라다는 미란다 프리슬리라는 인물로 다가왔다. 차가운 백색 머리에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 아무 말 없이 건네는 한 장의 서류만으로 사무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 미란다는 무서웠고, 멋있었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그녀가 등장하기도 전에 그녀의 향이 복도를 따라 책상 앞까지 밀려들어오는 것 같은 압박감까지도.


주인공 앤디가 처음 런웨이라는 패션 잡지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는 그 세계에서 철저히 ‘부적합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주어진 일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패션이 세상을 바꾸냐"는 말로 조용히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미란다와 마주한 뒤부터, 그녀는 점점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분위기를 입고 싶은지, 무엇으로 자신을 표현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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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의 시작은 늘 ‘한 사람의 분위기’였다. 분명 그 사람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차 자신의 잔재를 남겨두듯이. 말보다는 걸음걸이로, 옷보다는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은 어느 그룹에든 있다. 앤디에게 미란다라는 존재가 그랬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브랜드가 바로 프라다다. 프라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누군가는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느낌을 주고, 누군가는 오래된 책에서 꺼낸 듯한 고전적인 무드를 풍기며, 또 누군가는 가죽 재킷과 운동화를 같이 신고도 이상하게 멋있어 보인다. 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결국, 어떤 공기와 결이다. 그리고 프라다의 향수는 그런 순간의 분위기를 꽤 정확하게 짚어낸다.


오늘은 그런 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각기 다른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흐르는 향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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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도, 출입문 앞에서도 늘 한 발 물러서 있는 사람이 있다. 서두르는 법이 없는 사람. 하지만 출근길 카페에서는 가장 먼저 주문을 마친다. 주머니에서 딱 필요한 카드만 꺼내는 동작이 자연스럽고, 그 손끝에 걸린 얇은 골드 링이 햇빛을 받아 반짝일 때면 괜히 따라 웃게 된다. 흰 셔츠에 연한 아이보리 슬랙스, 발등이 드러나는 플랫 슈즈까지.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지만 부담스러울 만큼 각 잡히진 않은, 말하자면 힘 빼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녀에게선 늘 비슷한 향이 난다. 막 씻고 나온 것 같은 맑은 비누 향, 구김 없는 린넨 셔츠 같은 공기. 시간이 지나면 은은하게 퍼지는 아이리스와 머스크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무슨 향수 써요?”

“또 생각나면 알려드릴게요.”


옅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기억하게 만드는 향이다. 그날의 햇살, 그 테이블,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까지. 깨끗한 비누 같은 아이리스 향을 중심으로 은은한 꽃향기가 따라다닌다면 레스 인퓨전 디 아이리스, 삼나무의 담백한 촉감에 눈을 천천히 감게 된다면 레스 인퓨전 디 아이리스 세더를 뿌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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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면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걷는 사람이 있다. 캘린더 앱은 화려한 컬러 블록으로 꽉 차 있고, 휴대폰 배경은 조금 식상한 비행기 이륙 장면. 퇴근 시간을 넘긴 미팅을 마친 뒤에도 헬스장에 들르고, 주말이면 도심에서 자전거를 탄다.


언제나 활기차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사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편안하다. 모노톤 셋업 위에 스포티한 바람막이를 툭 걸치고, 매번 같은 운동화를 신는다.


그에게 이 향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세상이 나를 속이는 거다. 기술적으로 디자인된 향, 루나 로사가 사람이 된다면 그와 꼭 같을 것 같다. 차가운 금속처럼 정제된 상쾌함과 따뜻한 앰버가 묘하게 뒤섞여 있다. 스포티한 패키지와는 다르게 꽤 포근한 향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볼을 부비고 싶은 포근함이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왠지 든든하게 느껴지는 날의 안정감이랄까. 어떤 하루든 스스로 주도하는 사람, 그가 가진 속도에는 그의 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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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모순적인 게 매력이다. 흔히들 말하는 반전매력을 잔뜩 가진 사람. 말투는 차분한데 동그란 눈빛은 반짝이고, 손바닥만한 작은 핸드백 안에는 늘 무언가 가득 들어 있다. 화려한 컬러의 원피스에 테일러드 재킷을 걸치고, 하이힐 대신 청키한 부츠를 신는다.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래서 어떤 공간에 있어도 그 사람이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향도 그렇다. 첫인상은 달콤하고 가볍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묵직한 잔향이 매혹적으로 남는다. 패러독스. 이름 그대로, 정반대의 매력이 공존하는 향이다. 플로럴과 머스크, 따뜻함과 시원함, 강인함과 유연함. 그녀가 그 향을 입고 지나갈 때마다 공간이 조금 더 생기를 띤다. 언제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 그녀는 향으로 말한다.



앤디가 프라다 코트를 입고 회사에 들어서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날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향수도 그렇다. 조용히 나를 바꾸고, 말 한마디 없이도 분위기를 만든다. 잘 고른 향은 말보다 먼저 나를 소개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게 한다. 단정하고 투명하게, 혹은 부드럽고 깊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보여준다. (사진 출처=<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틸컷 외)


Editor. Sonior

향수 브랜드에 관한 글을 씁니다. 글에 등장하는 향수는 퍼퓸그라피 공식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