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명의 인생 향수를 찾아준 12년의 데이터

퍼퓸그라피 홍윤표 대표 인터뷰

by 퍼퓸그라피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향기만으로 그 사람을 기억해 본 적이 있나요? 12년 전, 향수가 주는 보이지 않는 힘에 매료되어 '366days'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한 덕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국내 대표 향수 플랫폼 '퍼퓸그라피'를 이끄는 홍윤표 대표를 만나, 향기에 인생을 건 한 사람의 진솔한 기록을 들어보았습니다.


대표_프로필_혜화스토어 (2).jpg 퍼퓸그라피 홍윤표 대표


향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임팩트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좋은 향기가 났어요. 소위 동네에서 좀 잘 나간다 하는 형, 누나들에게는 고유의 향이 꼭 있었거든요. 빈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에 누군가의 향기가 남아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땐 복도식 아파트나 골목의 주택이 많던 시절이라, 공간에 남은 향기만으로도 그 사람이 지나간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도 저를 대신 표현할 좋은 향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멋진 사람들은 자기만의 향이 있구나.’ 어릴 적 동경의 마음이 향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거죠.



대표님 삶에서 향수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향수를 단일 아이템으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향수가 한 사람의 인생과 서사에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향수가 소중한 순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어떤 추억이 되며,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런 것들이요.



‘366day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블로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향수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향수는 와인이나 위스키랑 비슷해요. 방대하기도 하지만, 일단 직접 맡아보는 체험이 선행되어야 경험이 확장되거든요. 그런데 당시엔 검색을 해도 정보가 별로 없어서 스스로 불편함을 느꼈어요. 너무 전문 용어만 쓰거나 광고 글 위주라 정보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향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아주 쉬운 용어만 쓰려고 노력했죠. 단순히 향기를 설명하기보다 '이 향수를 뿌리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상황극 형태의 글이 나오게 됐어요. 향수엔 관심 없어도 단편 소설 한 편 읽으러 오시는 팬분들이 생기기 시작한 지점이죠.



향수를 좋아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블로그였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영국 명문 학교에 다니던 남성 독자분도 기억나는데요. 영국 귀족 문화가 있는 파티에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 드렸는데, 그 향수를 뿌리고 갔을 때 관심 있던 여성분으로부터 향기가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향수가 누군가에게 즐거운 추억과 서사를 남기는 과정이 저한테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긍정적인 에피소드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수험생 시절 뿌렸던 향수를 리뷰한 적이 있어요. 학원 학생들이 아저씨 냄새가 난다며 수군댔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적어 올렸는데, 글에 대한 반응은 좋았지만 나중에 어떤 분이 그 향수를 통해 아내분과 좋은 추억이 있는데 안 좋은 에피소드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는 댓글을 남기셨더라고요.


그때 아차 싶었죠. 나에겐 좋지 않은 향수라도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고 좋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향수는 지극히 취향과 기호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뒤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떤 향에 대해 '안 좋다'는 말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_프로필_오피스 (2).jpg “나에겐 별로인 향이라도 누군가에겐 생애 최고의 향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향수 블로그가 퍼퓸그라피로 확장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모든 일의 시발점이죠. 블로그 운영할 때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았거든요. 댓글 다는 수고를 알기에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통하다 보니 독자들의 진짜 불편함이 보이더라고요. '정품 향수를 믿고 살 곳이 없다', '시향할 곳이 너무 부족하다' 같은 것들이요.


사실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이 불편함을 해결해 보자는 서비스로 시작했죠. 물론 초반엔 비즈니스 구조를 잘 몰라서 실패도 맛봤고요.(웃음)



그 실패를 극복했으니 지금의 퍼퓸그라피가 있는 거겠죠?


첫 사업을 접고 고민해 보니, 어떤 분야든 영향력을 가지려면 10년은 쌓아야겠더라고요. 완전히 새로운 걸 시작하면 또 10년이 걸릴 텐데, 돌아보니 제가 향수에 쏟은 기록과 시간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이 길을 계속 가자'고 다짐하고 1인 창업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 시간과 노하우가 쌓여 지금의 퍼퓸그라피가 되었습니다.



퍼퓸그라피의 향수 추천 서비스로 팬이 된 고객이 많은데요, 향수 추천 관련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지금 추천 서비스에 '사진 첨부 시스템'이 있는 이유가 있어요. 초기에 메일로만 문의받을 땐, 글만 보고 상상한 이미지와 실제 고객의 이미지가 너무 다른 경우가 많았거든요. 갭이 크면 정확한 추천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사진 첨부를 원칙으로 정하게 됐죠.


재수 시절부터 대학 진학, 연애와 이별까지 인생의 굵직한 순간들을 향수 추천과 함께 공유해 주신 고객님도 기억나요. 나중에 매장에 방문하셨을 때 그분만의 독특한 스타일링 덕에 바로 알아봤지만, 차마 아는 척하며 인사까진 못 드렸네요. (웃음)



정말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향수 추천 서비스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있나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특별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수만 개의 향수 추천 데이터를 멀리서 들여다보니, 개인의 취향도 결국 거대한 인생의 패턴 안에 있더라고요. 시대적 환경과 자유의지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일종의 규칙 같은 거죠.


트렌드에 따라 취향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본질은 '나 자신이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였어요. 이 니즈를 추적해 보니, 표현 방식은 달라도 비슷한 갈망을 공유하는 그룹들이 나뉘더라고요. 마치 MBTI처럼요.


대표_프로필_혜화스토어 (4).jpg 퍼퓸그라피 오프라인 스토어(서울 종로구, 혜화)


그럼 어느 정도 매뉴얼을 만들 수도 있었겠어요. 이를테면 그룹별 추천 향수 리스트 같은 거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각 그룹의 니즈를 채워주려 전 세계 거의 모든 브랜드를 뒤졌는데, 아무리 찾아도 도저히 메워지지 않는 '공백'의 영역이 있더라고요. 데이터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니즈인데, 현실엔 그에 맞는 향기가 없었던 거죠. 그 지점들을 하나하나 모아 '분명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을 채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노운 언노운(nownunown)’입니다


다음 인터뷰에서는 퍼퓸그라피가 만든 니치 퍼퓸 브랜드, 노운 언노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ditor. Sonior, Jay

Photography. 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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