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 제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건
할머니가 이 세상에 한 번이라도 살아 계셨기 때문이라고요.
그 말은 곧,
당신이 제 삶에 남기고 간 것들이
이따금 제 등을 떠미는 힘이 되고,
또 어떤 날엔 울지 않고 걷게 하는 이유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돌아보면 할머니는 언제나 부드러운 손이었어요.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던 손,
조용히 등을 쓰다듬던 손,
끓는 찌개 국물을 천천히 저으시던 손.
그 손은 제게 말보다 깊은 언어였고,
침묵보다 따뜻한 대답이었습니다.
올해 1월 28일.
그 날 이후로 세상이 아주 조금, 기울었습니다.
불 꺼진 부엌의 그림자가 더 깊어졌고,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소리에도 마음이 무너졌어요.
냄비 뚜껑 닫히는 소리,
티브이에서 울리는 오래된 드라마 주제가,
그리고, 식탁에 김치가 올라오지 않은 날.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습니다.
근데요, 할머니.
그 말은 어쩌면 틀렸는지도 몰라요.
시간은 ‘괜찮아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저, 그리움을 들고 사는 법을 조금 익히게 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엔 문득 그런 상상을 했어요.
할머니가 아직 병원에 계신 건 아닐까.
제가 그 병원 복도를 돌면,
어느 병실 문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앉아 계신 건 아닐까 하고요.
그 생각에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곤 했습니다.
여전히 이별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해서
조금 웃겼고, 한편으론 안쓰러웠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감각이 제게는 위로였습니다.
할머니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숨을 고를 때마다,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평온 속에서도
당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오늘도 잘 살아보려고 해요.
울음을 참는 게 아니라,
그리움과 함께 걷는 연습을 하며.
마치 할머니가 앞서 걸었던 발자국을
조심스레 따라 디디듯이.
할머니, 보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그 눈빛처럼,
이 말도 어디선가 들려가겠지요.
그러니까,
부디 그곳에서 아프지 말고, 편안하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이만큼 단단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