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달걀 - 세계여행이 가능한 재료
냉장고를 열었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다.
반찬도 없고, 고기도 없고,
“오늘은 배달시킬까…”
손이 휴대폰으로 갈 때.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
늘 배신하지 않는 것.
심지어 난각번호 2.
‘그래, 오늘도 너로 버텨보자.’
우리 집 생존 키트는 단출하다.
도깨비방망이(핸드블렌더), 김밥말이, 스테인리스 후라이팬 하나.
이 세 개면 세계 일주도 가능하다.
적어도 식탁 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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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 계란찜
달걀 3개 + 물(아빠숟갈 3개, 킥!) + 소금 한 꼬집.
혹시 조금 더 MSG 느낌으로 맛있게 먹고 싶으면 소금대신 참치액 반숟갈.
도깨비방망이로 윙― 돌리면 거품까지 생긴다.
뚝배기에 물 반컵 넣고 먼저 끓이다가,
아까 재료 넣고 숟가락으로 휘적 3분 약불 + 뚜껑 10분.
폭신한 계란찜 완성.
식당에서 하나 더 추가할까 고민했던 바로 그 맛.
계란말이
냉장고 자투리 채소 다져서(호박, 당근, 파를 보통 넣는다) 남은 달걀은 예열한 팬 위에 부쳐서 대강 접어서
두툼하게 말아버리면 계란말이.
김밥말이 등장.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물건이다.
한번 굴리면 모양이 근사해진다.
계란알찌개
서울식 음식으로 진짜 오분컷.
남은 계란물 + 물 한 컵 + 명란알 (냉동 소분해 둔 두 덩어리 정도) + 참기름 쪼끔
추운 날 아침에 빠르고 따뜻하게
내가 애정하는 음식.
그리고 최후의 필살기.
간장계란밥
따뜻한 밥
+ 버터 or 참기름
+ 간장 한 스푼
+ 반숙 계란
솔직히 말하면,
이 조합은 반찬이 필요 없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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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한 조각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저으면 스크램블.
포인트는 절대 세게 볶지 않기.
계란은 성격 급한 사람을 싫어한다.
우유 한 스푼 넣으면 호텔 조식 맛.
시금치 같은 채소나 햄 남은 거 털어 넣으면
그 순간 ‘프리타타’라는 멋진 이름을 얻는다.
사실은 그냥 ‘잡탕 계란 전’인데
이름이 영어면 뭔가 건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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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볶음밥
찬밥 + 달걀 + 파.
이 세 개면 게임 끝.
기름 두르고 약한불에 파볶다가
달걀 먼저 스크램블 밥 투입 간장 태우듯 살짝.
(약간 중식에선 벗어나지만 남은 숙주 있으면 볶음밥 마무리에 넣으면 아삭한 식감 굿굿)
중식당에서 먹으면 ‘볶음밥 9,000원’
집에서 만들면 ‘냉장고 정리’.
토마토계란볶음
토마토 있으면 꼭 해보길.
토마토계란볶음은 사기 메뉴다.
새콤 + 폭신 + 밥도둑.
스크램블 + 식초 밥숟갈 하나 + 설탕 밥숟갈 반개
or
스크램블 + 케첩 두 숟갈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먹을 때마다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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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계란덮밥
냉동실에 있는 돈가스 살짝 꺼내두고.
설탕 + 간장 + 물 조금.
달걀은 깨서 젓가락으로 풀어두고.
끓인 단짠 소스에
계란물을 풀고 불을 꺼서 익힌다.
밥 위에 달걀단짠소스 뿌리고
돈가스 얹어서 인스턴트 아닌 척.
냉동돈가스가 요리가 되는 마술.
오야코동
그리고 치킨이나 닭가슴살 남으면
오야코동.
돈가스계란덮밥 치킨버전.
그릇 하나에 밥, 닭, 계란.
이 조합은 일본판 간장계란밥 느낌.
단순한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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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달걀은
재료가 아니라 보험 같다.
냉장고가 텅 비어도
‘그래도 계란 있잖아’
이 한마디면 마음이 편해진다.
비싸지도 않고
단백질 든든하고
한식·양식·중식·일식 다 커버.
솔직히 말하면
요리 못하는 게 아니라
계란이 너무 유능한 것뿐.
오늘도 나는
스탠 팬 하나 달그락거리며
세계 여행을 한다.
비행기 대신 프라이팬,
여권 대신 난각번호 2.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생존 전략 아닌가.
‘전산감사 이사님의 주말 냉장고’ 계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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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난각번호는 닭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랐는지 표시하는 숫자로, 1번이 방사로 가장 좋고 4번이 가장 좁은 사육 환경. 가성비와 품질 균형은 2번 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