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닿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내 나이 26살, 엄마가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때의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적확한 병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몸이 회복되는 대로 퇴원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얼마 전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고 주말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 노트북을 든 채로 병실을 찾았다. 내가 병실 의자에 앉아 일을 보는 사이에도 엄마는 계속 주무시고 계셔서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후회되는 일들만 떠올랐다. 그 후회의 이유가 여느 자식들이 저질렀을 평범한 잘못들이었음에도, 그렇게 무심했던 마지막 병원에서의 며칠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미워 몸서리쳤다. 고통스러웠다.
3일간의 장례식을 마치고 영정사진을 품고 집에 돌아왔던 날, 엄마가 없는 집은 너무 낯설고 차갑게 변해 있었다. 영정 사진 속의 엄마 얼굴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너무 낯설었다. 그 감정이 너무 당황스럽고 생경하다 못해 두려웠다.
세상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엄마가, 물성 없는 존재로 사라졌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그러니 더 잘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이 뒤엉켰다. 엄마가 이런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엄마가 이제 나를 영영 잊어버리면 어쩌지,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는 만날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나를 용서했느냐고, 이런 나를 여전히 사랑하느냐고, 그렇다면 나를 단 한 번이라도 다시 찾아와 주면 안 되겠냐고. 그렇게 밤마다 울었다.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일이 거의 없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때쯤. 내게 아이가 찾아왔다. 한 밤중에 수유를 마치고 가만히 아이의 볼에 나의 볼을 비벼 보고, 아이의 작은 등뒤로 얕게 느껴지는 호흡에 맞춰 자장자장 토닥일 때, 네가 나의 아이로구나, 내가 네 엄마야 -라고 속삭였다. 그제야 비로소 다시 '엄마'라는 단어를 내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안았겠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겠구나,
그렇게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어서
너를 안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엄마 생각이 나서.
내가 가장 사랑할 네 생각에 벅차 올라서.
그러니, J 너에게,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넘치는 사랑을 아니 그 이상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네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너를 더 자주 다그쳤다. 네가 더 바른 아이로 자랐으면 해서, 네가 더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해서, 작은 것들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급급했다. 이게 아닌데, 넘치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 생각하면서도, 너무 작은 내 마음에 미처 담기지 못한 사랑은 못난 모습으로 터져 나왔다.
너를 심하게 꾸짖은 날, 의기소침해진 네가 물었다.
엄마 나를 용서해 줄 거야?
엄마 나를 사랑해 줄 거야?
부족했던 것일까. 네가 그토록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은?
그래도, 내가 대답해 줄 수 있으므로,
그래도, 내가 다독여 줄 수 있으므로,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너의 곁에 남아
너의 질문에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너의 마음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그러나 그런 소망이 다짐만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조바심이 났다. 이별은 언제나 예정되지 않은 형태로 오게 될 테니까. 언젠가 나 없이 네가 살아가야 할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살다가 네가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날, 내가 네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네가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내야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고 막막했다.
그래서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의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어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슬픔, 두려움, 외로움 같은 것들이 일순간 사그라들었다고.
너는 내게 그렇게 기적 같은 아이였으니,
어깨를 늘어 뜨리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네가 무얼 해도, 하지 않아도,
아무 조건이나 이유 없이
네 존재만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니 한 순간도 뒤돌아 보거나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있다고.
내가 태어나 겪은 많은 일들이 후회로 얼룩진 날에도
너만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어떤 질문으로 존재한 적 없이,
언제나 절대적인 대답으로 존재했다고.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었고,
행복이라 부를만한 모든 풍경 속에는 네가 있었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너는 나의 전부였다고.
내가 더 오래오래 살아내고 싶고, 더 멋지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J야.
언젠가 너의 힘듦이 너를 집어삼켜 고독 속에 홀로 놓이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움츠러들지 말고 어깨를 펴고 앉아.
너는 엄마에게 너무도 귀하고 온전한 사랑이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