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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라엘 이영란 Oct 08. 2024

암만에서 만난 친구들

암만에 도착하여 옛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남편의 지인들의 아내들이다. 한분은 신혼여행을 한께했던 이상익 집사님의 아내로 1971년 3월생이다. 다른 분은 남편 학교 후배 부인으로 1970년 5월생이다. 나는 1971년 2월생이니 여기도 끼고 저기도 끼는 빠른 71년생인 셈이다. 애매하다. 한분은 후배의 아낸데 자기가 나이가 늘 한살 많은듯 얘기한다. 이제 나이들어 한살 어린게 더 좋은거지만 늘 후배 아내들과의 관계는 애매하다. 그래서  나는 나도 70년생들과 같이 공부했어 하며 지지 않으려한다. 별거 아닌듯하지민 꽤나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제 나이들어가는 판에 서로 친구로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겠다 싶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어하면 이생에는 내게 친구가 없을거라는 어느 강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서로 잘 지내야지 이제 나이 먹어사는데 말이다.

후배 부인은 거의 9년만에 만났다. 이스라엘에서 같이 살다 비자 문제로 이스라엘을 떠나 지금은 요르단에 살고 있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여 함께 잘 지내기도했다. 아들 하나 딸 둘인 이가정은 두 자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셋째는 고 3이다. 내년엔 이 딸도 어디로든 떠날 예정이다.

그녀의 걱정은 아이들이 다 떠난 후에 과연 우리가 요르단에 계속 남아있게 될까하는 고민이었다. 지금은 시리아 난민 사역을 하고는 있지만 정둘 곳이 없어지면 과연 이 땅에 남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든단다.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 의지하며 살았지만 말이다.


친구 부인은 일찍이 남편을 잃었다. 갑자기 뇌졸증에 걸려 황망히 돌아가신 이후 젊은 나이에 3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지금은 요르단에서 남편과 함께하던 여행사를 계속 이어서 아주 훌륭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부인도 3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시고 아이들은 모두 한국으로 캐나다로 다 떠난 상태다. 이제 정말 홀로 남았다. 아이들은 다 컸고 이제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자립할수 있응 나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하나님이다. 일찍이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자 이스라엘로 왔다가 남편을 만났다. 이들도 오랜 이스라엘 생활을 청산하고 요르단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참 장하게 삶을 일구워왔다는 생각에 그녀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잘 견뎌오셨어요 .그렇게 내 나이 또래의 세사람은 서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오랫만에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 아내를 제대로 위로해준적이 없는거 같다. 남편 친구분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그 장지에 같이 가 주었다. 그는 내 신혼여행때 함께 했던 분이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정만큼 가슴 아픈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충격이 컸다. 당시 친구의 죽음 이후 남편은 모든 스케줄을 다 취소하기도했다. 우리는 아차산 등반을 하며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가정은 암만의 가장큰 몰이 있다는 불루바르드로 향했다. 생긴지 얼마 않되는 공원인데 밤에 참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있다. 암만도 중동의 물결을 따라 대형 쇼핑몰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요르단은 암만만 발전하고 있다. 다른 지역은 여전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마을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한 분이 운전을 안한다하여 왜 안하냐고 물으니 여기는 도로줄도 없고 너무 거칠게 운전해서 접촉사고가 많아 운전을 대체로 안하는 편이란다. 거기다 택시비가 워낙 싸서 그냥 택시 타는게 더 낫단다. 그래 뭐든 그 나라에 맞게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다.


마침 오늘은 10월 7일 가자 전쟁 1주년이다. 이날 요르단 학교는 전부 휴강을 했고 이스라엘 대사관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요르단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의미란다. 정치적으로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국민적 성향은 반이스라엘이다. 특히 이곳에는 60프로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들어와 산다.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하다. 그런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이번 10월7일 가자전쟁은 팔레스타인이 먼저 시작하지 않았나? 평온한 명절 아침에 이스라엘로 넘어와서는 대량 학살을 하고 납치해갔는데 아직 인질들은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왜 그들은 모든 범죄의 원인을 이스라엘에게만 돌리는가? 이유는 단하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스라엘이 없다. 인질에 대한 동정도 없다. 그냥 이스라엘이 싫다. 저들은 타도의 대상인 것이다. 모든 원인 제공자는 이스라엘이라는 생각만이 그들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오히려 가해자는 이스라엘인것이다. 갑자기 내가 사는 이스라엘이 불쌍해졌다 . 이스라엘은 친구가 없구나 .

하지만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 수장을 살해한건 정말 좋아한단다. 그들도 헤즈볼라는 싫어하니 말이다. 원수들끼리의 싸움은 긍정적이다.

밤 11시가 넘을 때까지 우리는 긴긴 이야기를 나눴다. 9년만의 만남 . 우리가 서로 쌓은 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람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야 더 값어치 있다.

새로 생긴 스카이라운지에서 멋진 만남을 마쳤다.  다음에 더 좋은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만남은 반갑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즐거움을 뒤로하로 짧은 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저녁 밤공기가 차가웠다. 중동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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