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을 많이 와봤지만 암만 공항은 처음이다. 늘 이스라엘 육로로만 이동해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12시가 다되어서 택시로 이동중이다.
헌재는 카림이라는 택시 예약 앱을 설치해서 이미 가장 저렴한 앱을 알고 있다. 카림에서는 겅항까지 4디나르면 된다는데 마침 호텔앞에 세워진 택시기사에게 물으니 20디나르다. 짐도 있고 해서 그냥 호텔앞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30분 거리의 택시 요금이 21.5디나르면 어제 1시간 이동한 후 30디나르 받은것에 비하면 꽤 비싼 가격이다. 그래도 안전하게 이미 얼굴을 본 사람이니 그냥 남편이 예약한 사람으로 가기로했다.
벨보이가 짐을 옮겨준다. 외국에 나가면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팁을 줘야한다. 몇푼 아니지만 괜히 부담이다.
끝까지 잘 도와준 벨보이에게 1디나르를 주었다. 그의 얼굴이 환해지며 우리에게 기쁘게 인사한다. 그럼 됬지 뭐 ...
1디나르는 1.5불 정도 한다. 겨우 2천원에 서로에게 기쁨이되니 말이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름은 Queen alia airport 퀸 알리아 국제공항 이다. 수도인 암만에 있는 국제 공항으로 국적 항공사인 로열 요르단 항공의 허브 공항이다. 프랑스 아에로포르 드 파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 요르단 5대 여왕이었던 알리아 알후세인을 기리고 있다.
특이했다. 중동땅의 차별받는 여성들을 생각할 때 공항 이름이 여왕의 이름이라니 . 어떤 여왕이었기에 요르단 공항의 이름을 그녀에게 주었을까?
알리아 알후세인은 요르단의 왕비이면서 동시에 후세인 1세 국왕의 3번째 부인이었다.그녀는 1948년 12월 25일에 이집트 카이로테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투칸이 알리아가 태어났을 당시 영국, 이탈리아, 터키, 이집트 주재 요르단 대사를 역임했다기에 말이다. . 투칸은 압둘라1세 국왕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며, 1952년 요르단 헌법 작성을 도왔고, 초대 유엔 주재 요르단 대사였다.빵빵한 아버지 밑에서 서양 문화를 접한 아가씨얐다.
알리아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아버지가 요르단 외교 사절단에서 일하 때 함께 여행을 다녔고 이집트, 터키, 런던, 미국, 로마 등에서 거주하였다. 대부분 좋은 환경의 학교에 다니고자 하는 많은 다른 이들처럼 그녀는 런던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다.. 종교 상관없이 무슬림들도 좋은 환경의 기독교 학교를 다니곤 한다. 이후 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존 펠리스 로마 센터에서 사회심리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후 뉴욕 헌터 칼리지에서 홍보학을 공부했고, 외교관을 목표로 공부했다.정말 똑똑한 분이었다.
1971년에 요르단으로 이주하여 로얄 요르단 항공에서 일했고, 1972년 9월에는 압둘라 1세의 손자인 후세인 1세 국왕으로부터 아카바 연안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수상스키 축제를 감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977년 2월 9일에 요르단 남부 타필라 인근에서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하였다.그녀의 사후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 위치한 국제공항이 1983년 건립되면서 그녀의 이름을 따 알리아 국제 공항으로 명명되었다.(구글 위키 백과 참조) 나는 요르단 암만 공항 이름을 통해 요르단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한 여성과 그를 사랑했던 국왕을 통해 이름이 남겨진 한 여성을 만날수 있었다.
공항은 한산했다. 이란 이스라엘 전쟁으로 미사일이 하늘을 덮으며 지나니 다니기가 위험하다 생각할수도 있겠다
228 맨 끝에서 기다리는데 한 여성이 와서는 여기가 두바이가는 비행기편이냐며 묻는다. 나는 208번이니 228이 어디 가는지는 모른다. 혹시 같은 비행긴가 싶어 묻는다. 228번이에요 . 아 그럼 여기 맞아요 . 하고 서로 말을 건넨다. 암만 분이세요? 네 두바이엔 왜가세요? 거기 살아요. 아 암만 사람인데 거기 사시는 거에요 . 네 . 35년째 거기 살고 있어요 . 호텔 메니저를 하는 남편과 학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아내였다. 어쩌다 보니 꼬치꼬치 묻게 된다.. 이 버릇 좀 고쳐야할듯 .. 마침 전화가 와서 끊겼다. 암만사람이 두바이에서 35년을 비자로만 살면서 오고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정보얐다. 늘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궁금하다. 이제 나도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를 타러 208번 게이트 앞으로 가야겠다.
4시 40분 . 20분에 뜨기로한 비행기는 정확히 40분에 이륙을 시도했다. 비엔나에 도착후 다음날 출발이라 그곳 라운지에서 잘지 나가서 오스트리아 시내를 구경하다 달지는 상황을 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느라 너무 기뻐서 들뜬 나머지 11시까지 만난것이 좀 피곤했었나보다.. 조금 지친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에 간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지난 헌재 마르 미쯔바(성년식)을 계기로 우리는 4개국을 방문했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오스트리아. 그때 잠깐 하루 동안 궁전과 모짜르트 동상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 음악하는 나에겐 참 꿈 같은 곳인데 여전히 나는 하루만 묵어가는 곳이다. 꿈처럼 그런 잠깐의 기쁨을 기대하며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오늘도 옆자리 여성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암만에 사는 그녀는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스톡홀롬으로 가는 길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여성인데 교육이 있어 가는 길이다. 비행기가 30분이나 늦었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스톡홀롬행 비행기편이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스튜어디스에게 도착시간을 물었고 비행기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내렸다. 하지만 버스로 이동하는 거였고 냐리자마자 트랜짙을 하든 오스트리아에 체류하든 모두 여권에 도장을 찍어야해서 게속 지연되었다. 스톡홀롬에 가는 사람이 그녀 혼자만은 아니었기에 여러명 함께 가는것이 보였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니 인샬라 .이따우핔 굿럭을 빌어주었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했으나 다음날 10시 비행편이라 하룻밤을 묵어야했다. 오스트리아에 온김에.시내로 가기로 결정했다. 마침 모든 짐은 다 미국까지 다이렉트로 가게 해놓았기에.짐찾을 것도 없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을 나와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비엔나 시내까지 가는 기차가 잘 연결되어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기차역으로 가는 푯말을 따라 가니 기차표를 파는 기계가 있다. 가격은 4명이 18유로 일인 4.5유로다. 바로 10분후에 기차가 있다. 8시33분 비엔나행표를 구입하고 기차역으로 내려가 기차를 탔다.15분 후면 도착한다. 논스톱이다. 2년전 유정이는 친구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기차표를 구입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내 딸도 감회에 젖는다 . "내가 2년전에 이렇게 친구와 여행했어요 ."
비엔나역 기차 종점에서 내렸다.주위는 모두 비싼 호텔이다. 특히 노보텔이 눈에 띈다. . 물론 부킹으로 예약해보았지만 거의 매진이다. 마침 오픈된 호텔 로비가 무척 현대식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고 앉아있을수 있다. 우선 이 호텔을 예약해보았으나 다 매진이다. 하지만 이곳에 앉아 인터넷 검색하며 조금 쉴수 있었다. 검색어로 호텔도 알아보고 아파트도 알아보았다. 가까운 아파트를 찾아보니 100유로 저렴한 집이 있다. 기차역 몇바퀴를 돌며 숙소를 알아본 후 겨우 찾은 곳이다. 예약 후에 와츠앱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보내준다. 그 정보를 가지고 찾아가면 된다. 거층 건물 사이에 있는 아주 고급 아파트였다. 첩보 작전을 하듯 자전거 열쇠박스에서 열쇠를 꺼내 건물 문앞에 대니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모든 문이 자동이다. 자동 문을 통해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2층으로 올라가 방 번호를 찾아 열쇠를 열고 들어가니 집이 참 깔끔하다. 물론 1인이나 다인이나 가격이 같아 우리는 이익이긴했지만 문제는 2 명 3명 정도면 될듯한 셋팅이다. 이불이 3개밖에 없다. 유정이랑 나랑 침대에서 자고 헌재는 쇼파 아빠는 바닥이다. 내 이불을 남편에게 주고 잠을 청했다. 유정이와 나는 이불을 가로로 덮으니 발이 나올정도다. 그래도 이 오스트리아에서 100유로에 4명이 자는 거다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부스부슬 비가 온다. 어제 그렇게 헤맬때 비 맞았으면 어쩔뻔했나 ? 다행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역시 비행기 여행은 힘들다.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 비엔나 커피를 마실 예정이었는데 너무 늦었다 공항에서 마셔야겠다 싶어 얼른 기차역으로 향했다. 어제 도착한 기차역으로 가서 전광판을 보니 왠일인지 공항행 기차가 취소다. 이미 8시40분 행은 취소고 다음 9시 20분까지 예정이 없다. 비행기는 10시 40분이다. 우리의 선택은 오직 하나 택시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기로했다. 50유로다. 지금은 흥정할 시간도 없다 무조건 공항으로 직진이다.
20여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9시 20분. 아직 우리에게는 1시간의 여유가 있다. 이미 표는 있고 짐도 없다.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서 다른건 못해도 유명한 비엔나 커피는 마셔야했기에 카페에 들렀다. 왜 비엔나 커피가 유명한가? 유럽 커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시절 이 비엔나까지 점령했던 그들은 이곳을 철수 할 때 커피 5ㅔ봉을 놓고 갔다. 추운 겨울 비엔나인들은 이 커피를 갈아 마시기 시작하면서 비엔나 커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비엔나 커피라고 씌여진 카페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와 크로와생그리고 치즈 샌드위치를 시켰다. 크로와상이 조금 텁텁한 맛이었지만 먹을만했다. 30유로나 나왔다. 그래도 기분 좋은 아침이다.
오스트리아 공항이 참 깔끔하다 .쇼핑몰에 들어온 듯한 쾌적한 분위기다. 그래도 이제 서둘러야한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커피와 빵을 먹고는 부랴부랴 체크인을 했다. . 오스트리아는 duty free 쇼핑 장소를 통과하고 나서 출국 도장을 찍는 여권 컨트롤을 한다. 괜히 쇼핑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길 권한다.
오스트리아 공항은 깨끗했다. 비행기 타는 곳이 원형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돔형식으로 되어 있어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였다. 오스트리안 항공 승무원은 빨간색 옷과 구두를 신는다.그뿐아니라 스타킹도 빨간색이다. 빨간 망토를 연상케하는 그녀들의 옷은 동화 나라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특히 한 승문원 애인이 한국 사람이라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자신이 한국어를 배운다는데 정말 여성이 얼마나 남자를 사랑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데 사랑이 되나 싶기도하다. 하긴 사랑은 말이 아니라 느낌이지 않은가? 말이 안통하기에 오히려 사랑의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결혼은 현실이라 . 아마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나 보다. 여성의 노력이 대단하다. 남성도 함께 노력하면 더 좋겠다 싶다.
미국까지 9시간이 걸린다. 좋은 영화나 볼까하고 틀어본다. 내가 30년전에 본 before sunrise가 있다. 나를 좋아했던 남자와 같이 보았던 영화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며 지난 추억을 한번 돌아보려한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기차안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여행하다 헤어지는 이야기다. 대화가 대부분인 영화 . 문제는 자막이 없다. 집중이 잘안되긴한다. 나도 이 영화보고 나서 이제 그만 만나자고 했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이 영화를 가장 싫어한다고했다. 그렇게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헤어졌었는데. 몇명의 남자중 가장 나에게 잘해줬던 친구다 . 바로 그 신의 지문 책을 줬던 친구다. 오늘 자막없이 영어로만 들으니 오히려 장면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역시 지루하다. 옛날 그 느낌은 사라지고 없다.
이제 뉴왘행 비행기 이륙 직전이다. . 우와 내가 미국을 간다.^^11시 11분에 이륙했다. 이제 9시간 후엔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