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는 한국 날씨와 비슷하다. 10월이 되면 단풍도 지고 날씨는 가을 날씨다. 요 며칠 겨울이 올듯 추워졌다가 이틀전부터는 다시 따뜻한 여름인듯 가을인듯한 날씨로 여행하기 좋은 햇살을 뽑낸다. 늘 계절은 우리를 희롱한다. 가을인듯 가을 아닌듯 겨울인듯 겨울 아닌듯한 날들 말이다. 그래서 옷을 얇게 입었다가 두껍게 입었다가 하며 감기에 걸리기도한다. 좀 얄미운 시기이기도하다. 뉴욕에서 메를랜드를 지나 포트맥 강을 끼고 워싱턴과 접하고 있다. 버지니아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버지니아에서 일주일정도 보냈다. 화려한 뉴욕을 뒤로하고 버지니아의 비엔나 역에 내렸다. 4시간 반의 논스톱 버스를 타고 와선지 많이 힘들었다. 거기에 새벽 일찍 일어난 탓도 있었고 어제 먹은 음식이 몸에 맞지 않았는지 아침 국밥도 입에 안맞다. 오는 내내 멀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점심 도착하자마자 예약된 멕시컨 음식점에서도 한술도 못떴다. 단단히 탈이 났나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자다 다음날 일어났다. 좀 개운하다. 아들 헌재도 상태가 똑같다. 음식이 문젠지 여행이 고된지 . 둘다 인듯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 저녁에 사온 죽이 그대로다 .남편 빼고 온가족이 다 녹초가 되었다. 남편이야 설교에 강의에 바쁘다지만 따라다니는 우리도 힘든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나마 죽은 먹을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침일찍 펠로우쉽 교회로 향했다. 유대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의가 있다. . 유대인 교육은 알려진 대로 너무도 유명하다. 우리가 유대인 교육을 받으려고 이스라엘에 갔다고는 할수 없다. 그저 남편 공부 때문에 가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헌재 유정이가 유대인과 함께 공부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유대인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대인 교육은 정말 훌륭한가? 결과가 말해주듯 유대인들은 노벨상을 많이 받았고 아인쉬타인 퀴리 부인등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유대인이다.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똑똑할까? 그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일게다.
유대인은 고난의 민족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됚을 때부터 그들의 고난의 길은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도 의지할수 없다. 하나님 한분 외에는 . 어디에 살든 동화될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은 음식법도 달랐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 그들은 구별되어야했다. 남들이 머리를 기르면 반대로 머리를 잘랐다. 교회에서는 모자를 벗는데 유대인들은 모자를 쓴다.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 무슬림은 금요일 유대인은 토요일 기독교인은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한다.
이스라엘은 중동국가중 유일하게 무슬림이 아니다. 모든 중동 아랍 국가에 둘러쌓여 지중해 바닷가에 겨우 붙어 있는 이스라엘 . 그러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굳가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불안한 가운데 살면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일까? 선민 사상 때문일까? 그들은 불안한 가운데 차분하다. 그들의 진면목이다. 무엇보다 군사력이 당하다. 최첨단 무기로 소리없이 적국에 침투해 목표물만 폭파하고 돌아오는 나라다. 가끔은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살아 남기 위한 발악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런 나라에서 그들은 살아남기위해 애쓰면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것 같아 . 그들의 저력이 바로 이것에서 나오는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도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만 군대 제대 이후에 더욱 성숙해졌다. 공부도 무척 책임감있게 한다. 그런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뿌듯하다. 믿을만 아이들로 성장해줘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펠로우쉽 교회에서 2번의 강의와 한번의 설교를 마친 남편은 와싱턴 교회에서 새벽기도와 특강 그리고 저녁에 이집트 모임을 가졌다. 아이들도 대견하지만 사실 남 편이 더 대단하다. 그 많은 강의와 설교를 버텨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오스트리아 항공기를 타니 비엔나 왈츠음악이 흐른다. 음악의 나라 비엔나를 향해 이륙하고 있다. 비엔나에 2시간 도착후 바로 암만으로 간다. 3시 도착후 바로 국경으로 가도 4시는 촉박하다.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버스는 5시에 막차라는데 그 시간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암만에서 하루밤 자야한다. 일단 가보자 .
나는 다시 하늘 위다. 반복되는 인생이다. 캐나다 음악 페스티벌을 가기 직전 나는 한 아이와 선을 보았다. 그냥 아이 같았다. 처음엔 병원에서 만났다. 의사였다. 아버지가 변호사라 나늠 피나노를 전공했으니 . 부모의 재력과 미모 덕분에 (그냥ㄴ 하는 말이다) 의사와도 선을 볼수 있었다. 아마 내가 열쇠 3개는 줄수 있어 보였을까? 교회 장로님이 나를 어여삐보사 목사님 아들을 소개해주었다. 처음으로 병원으로 맞선을 보러 가보았다. 예쁘게 차려입었다. 화장 잘하는 친구가 얼굴에 떡칠도 해주었다. 한미모하니 꽤나 예뻐보였을게다. 좋은 만남이었다. 남자는 좋은 가람이었다. 하지만 남성적 매력은 느낄수 없었다. 반전은 한강고수부지의 저무는 해를 볼 때 일어났다. 나는 지는 해에 마음이 녹아버렸다.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마음이 열려버린 것이다.
그 며칠 후 나는 캐나다 음악 캠프에 참가했고 그 때처럼 나는 오늘 하늘을 날고 있다. 그 때일이 떠올라 한자 적어봤다.
내게 남자는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 감정이 곧 바로 내 음악과 연결되었기에 말이다. 그 때 캐나다 음악 캠프에서 참 연주를 잘했다. 물론 밤마다 그리움에 잠을 설쳤지만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다 아름다운 음악이 나왔던것 같다. 처음으로 너는 진정한 음악가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참 좋았던 경험이다. 물론 그와 결혼까지는 가지 않았디만 좋은 추억이었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기억하니 말이다.
나는 어떤 감정 자체를 사랑하는거 같다. 물론 사랑은 감정이라는걸 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해야하는데 내 감정을 사랑할때가 많다. 그래서 그 김정이 식으면 상대에게 무감정으로 대해버리게된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다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미국에서 이스라엘 바라보기
미국에서 만난 사람중 대부분이 묻는 질문은 지금 전쟁중인데 이스라엘 괜찮나요? 라는 질문이다. 이스라엘은 너무 작은 나라라 모든 곳이 사정거리안에 있지 않냐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그 작은 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견뎌냈는지 . 전쟁인 그 나라에 다시 돌아가는건지 아니면 피난 나온건지 묻는 분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