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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라엘 이영란 Oct 27. 2024

이스라엘은 위험하지 않은가요?

미국에 나와보니 이스라엘은 참 위험한 나라다.

살때는 몰랐는데 미국에 와보니 이스라엘은 전쟁 속에 가슴조이며 사는 나라다. 이팔 분쟁으로 늘 속보가 뜨고 샤밧 전날은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스라엘이 한방 먹이면 어디선가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일으킨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나라다. 우리는 그저 성경 연구하고 예배드리며 평안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겠거니 하는 마음이 강한것 같다. 하지만 우리도 10월 7일 가자 전쟁 이후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의 친구가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더 그렇게 느낀다.


유정이에게  유대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몇번 안만나고 유정이가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준다며 집으로 초대를 했다. 꽃다발을 들고 나에게 전해주는데 순간 너무 당황했다. 티비에 보면 사위 될 사람이 그렇게 인사를 드리지 않는가?  그런데 아직 준비도 안되었고 그냥 친구사이인데 이렇게 인사하는 것 자체가 너무 한국 정서로서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정이의 남자친구를 알게되었디만 우리가 속된말로 인정한건 아니었다. 물론 딸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선택이지만 사위는 우리의 선틱아닌가? 그런데 10월 7일   가자 전쟁이 일어난 그 시기에 유정이 남자 친구 다니엘은 예비군으로 이스라엘 예비군에 소집되었다.. 그것도 가장 위험한 가자 땅굴을 찾아 다니는 엔지니어로 말이다. 가끔 드론으로 속을 들여다보거나 가자 땅굴 입구의  철문을 뚫는 일을 하는 야알롬이라는  특수 부대다  다니엘로 인해 가슴조일 딸의 걱정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 터널 안이나 군인들이 쉬러 들어간 건물 안에 부비트램을 설치하여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기도했다. 그런일이 벌어질까 마음이 늘 불안했다. 얼마나 그를 위해 기도했는지 모른다. 딸의 남자.친구를 위해 말이다.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가끔 다니엘은 집으로 놀러왔고 예배도 참석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예배도 함께 참여하고 우리 가족과 잘 맞으면 우리 가족으로 함께 할수도 있겠다 싶다.


아들은 4년간  이스라엘 군에서 근무하다 이제는 대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하여 군 제대하고 잠시 한국 방문을 하는 중이었다. 10월 7일 하마스가 침투하고 바로 1시간 만에 전 예비군 소집령이 내렸다. 한국에 가있는 헌재에게도 빨리 군으로 돌아오라는 문자가 떴고 일본에서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비행편이 있으면 가끕적 가장 빨리 이스라엘로 돌아오라는 지시였다. 마침 우리는 아랍 지역에 나가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는 무조건 국경을 넘어 터키 이스탄불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비행편은 모두 취소되었다. 암만으로 들어가서 텔아비브로 가는 비행편을 알아보았는데 그것도 취소되었다고 통보가 왔다. 우리는 그리스로 가서 그리스에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항공기를 사기로 결정을 했다. 먼저 남편의 핸드폰으로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아테네 가는 비행편을 스텐바이 해놓고 내 핸드폰으로는 그리스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비행편을 스텐바이 해놓았다. 한쪽마 되고 한쪽이 안되면 안되기에 말이다. 준비를 끝낸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항공편을 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그리스를 통해 텔아비브로 가는 비행 티켓을 확보할수 있었다.


한국에 나가있던 헌재는 우리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대한항공 편은 결항되어 직항은 없어졌고 우리와 함께 동시에 들어가는게 더 안전할듯했다. 헌재는 그렇게 한국에서 이스탄불로 날아왔고 하룻밤 이스탄불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후 그리스를 거쳐 이스라엘 항공기로 안전하게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올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후 헌재는 다시 이스라엘 군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렇게 우리 아들마저도 이스라엘 예비역으로 가자 전쟁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전쟁으로  히브리 대학교 수업일이 늦춰지면서 다행히 수업에는 지방이 없었디민 대학 수업이 두달 후에 시직되면서 헌재의 고충도 더해갔다. 수업은 시작되었는데 군에 잡혀있어야하니 말이다. 다행히 전투 부대는 아니어서일주일중 반은 학교 수업을 듣게 했고 절반은 군에 가서 도왔다. 군제대한지 몇달 안된 고참이라 부대에서의 지위가 꽤 높았다. 공부와 군생활을 병행하던 아들이 벌써 이번 학기를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함께 미국 여행을 갈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며 아들과 딸이 더욱 자랑스러웠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저력이 대단하다. 한국인들은 유대인이 가는 곳만 따라다니면 교육도 잘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될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정도다.


지난 이란이 미사일을 날렸을 때를 한번 생각해보자 .

이란에서 소아 올린 미사일은 8분안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전화기에 긴급 메세지를 받은 이후 싸리엘이 우리고는 바로 하늘로 날아오고 요격되는 미사일을 직접 눈으로 벌수 있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이 사정권안이다.

이스라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 예를 들어 알렌비국경을 넘어 달려 텔아비브 지중해해변까지 가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100키로 정도 1시간 17분이 걸린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까지는 얼마나 거리는가?  1시간 46분 176키로 레바논 국경까지는 520키로   가자 까지는

이란에서 미국에서 바라볼때 이스라엘은 손바닥보다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은 전쟁중이지만 전면전은 아니다.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 가자 근처 그리고 아랍인들이 몰려사는 웨스트 뱅크 지역이다. 중심부는 안전한 편이다. 물론 그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전국적이라 마을마다 죽어가는 군인들을 애도하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10월 7일에 잡혀간 인질들의 사진이 아직도 그 슬픔을 기억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늘 기도의 땅이다.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이미 우리는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평안한 집에서 잠을 청하고 보고 싶은 오순이도 보고 여지껏 못보았던 회한으로 오순이은 꼬리를 흔들며.머리를 부비며  서로 웃음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야할 때다. 하지만 하나님은 또하나의 계획을 우리에게 남겨두셨다. 우리는 다시 하룻밤을 암만에 묵게 되었고 또 하루를 이 암만 땅에서 자게 하셨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물으시는것 같다. 너 정말 예루살렘에 살고 싶으니? 하고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그 곳에 너는 살길 원하니? 예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니? 하고 물으시는것 같다.


물론 마침 오늘이 심하토라 장막절 마지막 날 이스라엘 휴일이라 좀 일찍 국경문을 닫은 탓도 있다. 12시 반까지 한다하여 12시 20분까지 국경 앞에 도착했지만 국경은 우리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암만으로 돌아와서 암만 올드 씨티에 방을 잡았다. 중동 분위기가 나는 시장터였다. 호텔은 중동 분위기 나는 헤브론의 한 호텔 숙소와 비슷했다. 이런 곳에서 남편은 30여년전에 머물렀고 이곳에서 시리아 다마스커스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도했다. 이곳은 배낭족들의 허브다. 마침 아는 후배 목사님이 시간을 내주셔서 예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유명한 마아루프 카페(아랍어로 마아루프는 유명하다는 뜻)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마침 사모님이 맹장 수술을 맏으셔서 지금은 회복단계시다. 그녀를 위로하려 작은 헌금을 했다. 그리고 요르단 선교사님들에게도 조금의 헌금을 드렸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땅의 선교사님들에게 위로를 주라고 하룻밤을 더 묵게 하셨는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내일은 진짜 이스라엘로 간다. 이제 나는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40년의 출애굽시기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으로 우리는 내일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땅으로 입성한다. 다시 우리는 전쟁의 소효속에서 기도해야하며 이팔 분쟁 속에서 테러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할지도 모른다.  이 땅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위해 보내주신 사명을 감당할 마음을 품고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말 마음가짐이 새롭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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