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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라엘 이영란 Nov 16. 2024

예루살렘 살기

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살면서 크게는 3번 이사를 하였다.

다 예루살렘 피스갓제에브에서 생활을 했는데 히브리대에서도 가깝고 집이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아 렌트하기에 수월해서 였던거 같다.  무엇보다도 이곳엔 한인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더. 장벽이 세워지기전 엘리타빈 동네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엘리타빈 바로 옆으로 아랍 마을이라 장벽이 들어서있다. 예전엔 들어가려면 버스에서 내려서도 10분을 걸어 내려오고 올라가야했는데 지금은 동네 버스가 다니는 곳으로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다.


두번째 레우벤 아라지.  엘리타빈에서 조금 걸어올라와바로 맞은편에 있는 동넨데 조용하고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전망을 매우 중요시여기던 남편눈에 꽂혀 여리고성을 돌듯 매일 올라와 돌곤했다. 이곳에 집하나만 나오면 좋겠다던 남편의 바램이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 나타났다


 마침 아내를 잃고 슬픔에.잠긴.한 남성이 집을 당장 파는 건 법으로 안되어 잠시.렌트를 해주기로 원한 집이 나왔다. 아직 매물로도 올라오지 않은 집이었는데 남편이 주위 사람들에게 집 나온거 없냐며 묻던 차에.찾게 되었다. 가격도 정말 저렴했다. 그렇게 우리는 복2층 최고 전망 좋은 집을 얻게 되었다.


집이 커지니.손님도 많이 왔다. 물론 엘리타빈 살 때도 손님이 없진 않았다 . 개인 사생활을 끔찍이도 보장받길 원하는 서울 사람과 대가족 공동 생활에 익숙한 파주 농촌 사람과의 갈등은 아마도 이런 손님 문화에서 가장 크게.부딪혔던것 같다. 물론 아이들은 손님 오는걸 무척 좋아했지민 말이다

여성은 님이 오면 할일이.많지.않은가 . 음식 부터 시작해서 침구 정리까지 . 보통 일은 아니다. 결혼해 처음 시작하는 세댁에겐 말이다.


세번째 집은 타자르라는 단독 주택이었다. 한국 교회에서 후원하는 연구소를 세웠는데 이건물을 확장하느라.대대적인 공사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반 전문가가 되어 집을 확장하였다. 물론 무리한 공사로 비가 새는 문제가 발생하기더했지만 넓은 겅간에서 생활하기엔 더없이 젛은 공간이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따라 우리는 다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준비중이지만 자녀들에게 살집을 내어 분가를 시켰고 연구소는 연구소의 기능만 하기 위해.우리 기족은 새로운 집을 구해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3채의 집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들이 아무리 자기들만 산다헤도 엄마의 손이 필요하다. 연구소는 연구소대로 아직 정리가 안되 있고

새로 산 광야집도 아직 수리중이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나는 이집 저집을 오간다. 마침.샤밧 저녁 아이들 집에는 샤밧 예배를 드리러 온 청년 2명이 자고 있어 내방을 내주었다. 여전히 내 소유는 없는듯하다

 다 주님께 받은것이니 다 함께 공유함이 맞다. 적어도 내 교회 지체들에겐.말이다

과거 초대교인들은 자신의 집을 예배처로 만들었다. 함께.나눔에는 음식만이 아니엇을 것이다.


음 하나 들고 다녔을 바울은 집이 있었을리 없다. 그저 가는 곳에서 쉬고 먹고 자고 주님의 사역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나마 나에겐 3채나 되는 집이 있지 아니한가. 오늘도 나는 이집에서 저집으로 올라가고 있더.

고생인지 축복인지 모를 이 상황을 받아드려야한다


 옆집 아모스 할아버지와 마잘을 만났다. 예전같이 않게 무척 반긴다. 늘 우리집을 감시하듯 바하보던 그였다.

요즘 아이들도 안보이고 우리도 없어서 늘 불이 꺼져있는걸 보는게 매우 마음이 적적하단다. 우리도 아마 아모스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맘이 많이 쓸쓸할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남편이 우리가 집에 없을 때도 2층 불을 꼭 켜놓잖다. 적적하시지 않게 말이다. 이웃은 그런건가보다. 옆집에 불만 켜저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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