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병이 함께 여행했다. 한국 음식을 싸와서 짐이 많았다. 1. 복음의 시작 시리아 안디옥 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곳 안디옥 .
안디옥은 하타이 주의 주도로서 시리아 국경근처의 도시다. 안디옥에서 실루기아로 더 내려가면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아랍인들이 주로살지만 터키령으로 편입된 곳이다. 바로 시리아 안디옥이다. .
시리아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480키로 떨어진 곳으로 현재 터키 지명은 안타키야이다. 바울 당시에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3번째로 큰 도시였다
안디옥 전경
몇해전에 지진으로 많은 지역이 무너져있었고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부실공사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의 흔적들이 이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복구작업을 하는 건물들을 지나 최초의 동굴 교회 안디옥 교회로 향했다. 마침 기자들이 와있어서 함께 사진을 찍고 드론을 날기도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어 .
기자는 애잔하게 말을 잊지 못했다.
지진의 피해는 삶을 피폐하게 한다.
산위에 있는 교회라선지 안디옥 교회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그 교회 위로는 베드로와 마리아를 조각해놓은 거대한 돌이 있다.
이제 무슬림이 된 도시에 이 마리아상은 전설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기도하다.
폐가된 도시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듯 하다. 곧 다시 예전의 아름다운 도시로 복구 되리라.
오론테스 강 이강은 레바논에서 발원하여 북쪽 시리아 다메섹을 지나터키 하타이주의 사만다(실루기아)와 인접한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 .
마리아상을 보러온 현지인들 .
안디옥 교회
오토바이릉 탄 가족
2.실루기아
2-1 잊을 수 없었던 실루기아 터널 대 탐사
하루 하루 기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쉽다.
1월 20일 이스라엘을 출발하여 2월 5일 돌아왔으니 거의 16일을 터키와 그리스를 다녀왔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고 모든 장소마다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에선 중요한 자료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사진을 다 찍기도했다. 다니는 곳마다 일행을 찍어 주기도 하고 찍히기도 하고 멋있는 장면을 담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니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지 않다.우연히 사진을 돌려 본다든지 어떤 비슷한 상황이 온다든지 상대방에게 얘깃거리가 생기면 불현듯 기억들이 돌아오고 즐거웟던 추억에 다시 한번 뭉클해지기도한다.
16일밖에 지나지 않은 일들이 어제일같기도하고 아주 먼날인것같기도하고 참 기억의 시간이라는건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실루기아 터널이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선교지로 떠날때 사용한 항구가 있던 항구 이름이 실루기아항구다. 로마에서는 모두 뱃길로 왔기에 모든 지역에 항구도시를 만들었다. 실루기아는 산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심해 항구로서의 기능을 할수 없게 되었다. 수리아 지역에 안디옥은 로마 알렉산더 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 그래서 안디옥의 외항 실루기아를 이용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돌려 토사를 줄였다. 이 물길을 돌리기 위해 디도 장군 ( 베스파시아누스황제의 아들 . 이스라엘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장군) 은 이곳의 돌산을 파서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돌리게 된다. 이때 유대인 노예들이 손으로 돌을 파서 물길을 만드는 작업을 하엿다고 요세프스는 기록하고 있다.
남편은 이곳에 왔었던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무방비상태로 그 뒤를 따랐다. 이곳을 지나야 디도 장군이 이 수로를 만들었다고 기록한 비문을 볼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 그리고 70대 장로님 그리고 40대 목사님 이렇게 4명이 길을 나섰다. 산세는 아름다웠지만 동굴로 이루어진 수로에는 간밤에 내린 빗물로 인해 작은 시내를 이루고 있다. 길을 통과하려니 물이 그나마 없는 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임시방편으로 집고 갈 돌다리를 징검다리 삼아 아슬아슬하게 걸어야만 했다.
물론 그리 깊지 않은 물이라 물에 빠지면 그만이지만 물에 빠지면 다 젖기에 조심 조심 돌을 짚었다. 쉽지 않은 길은 남편이 잡아주기도하며 모험같은 길을 무사히 통과했다.
정말 동굴같은 물길을 빠져 나가니 디도의 업적을 써놓은 비문이 있었다. 서너군데에 돌벽을 깍아 비문을 쓰다 만듯한 자국이 있기도 했다. 멋지게 그 앞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설마 이 길을 다시 돌아가진 않겠지 하는 희망으로 위로 올라가 산길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앞장서던 남편이 이 산길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시 우리가 온길로 되돌아가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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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면 난감해 했겠지만 이스라엘에 살면서 광야도 걸어보고 절벽도 올라보고 엔게디 히든 폭포(산길이지만 물길을 따라 걷는 길)도 걸어보았기에 이정도 실루기이 터널을 걷는 건 문제도 아니다.
정말 스펙터클한 경험이었다.첫 여정부터 아주 굵직한 모험을 하니 너무도 기분이 좋고 흥미진진했다.
뒤따라 오시던 장로님은 내가 너무 잘 걸어서 좀 놀랜듯하다. 어쨌든 장로님도 정말 열심히 걸으시고 그 어려운 여정 속에서도 계속 사진 찍으시며 열성적으로 다니셨다. 그분의 열성에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신발을 살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밑창 떨어진 신발을 그냥 신고 다니셨다 밑창이 떨어진 사진을 못찍은게 하쉽다.)
지나고 나니 정말 진귀했던 순간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룰 인도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온걸 괭장히 즐거워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 하신다. 솔직히 히스기야 터널은 그냥 좁은 길을 걷는 것에 불과하다. 실루기이 터널은 히스기야 터널속에서 엔게디 히든 폭포를 걷는 느낀이랄까.
거대한 산을 깍아 물길을 돌려 항구를 유지하려했던 로마의 계획 속에서 노예로 끌려와 일한 유대인의 처절한 노동의 산물이다.
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거대한 로마를 느낀다.
그 속의 한점 바울이 이 실루기아를 시작으로 대 로마를 향해 전진한다. 그 첫 출발점에 서있다. 이곳에사 첫 선교지 구브로를 향한 바울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구운 생선과 싱싱한 야채 그리고 빵.
여행중 가장 큰 행복은 음식이다.
오징어 귀한 이스라엘 생각하며 오징어 요리도 먹어보고 문어 홍합 요리를 시켜본다. .
여행중 만난 그리스 여성이 한국에 가고 싶은데 한국은 뭐가 좋으니 물었다.
음식이 맛있어 ..그리고 싸고 ...그렇게 내 고향의 기억은 음식과 함께 간다.
나는 생선을 보면 즐겁다. 어릴때 속초에 살았던 나는 동네 시장에서 해삼 멍게 보던 재미 바닷가에서 놀던 추억 때문인거 같다. 아빠 직장 동료 가족 모임에 문어 한마리를 사와서 나무에 걸어놓았던 추억 . 결혼하고 시댁 갈때도 문어 한마리 사서 가져가 함께 먹었던 추억이 간간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리스나 터키에 오면 꼭 오징어 문어 생선 요리를 먹는다.
늘 상에 올라오던 어물류는 늘 나에겐 평범한 반찬이었다.늘 엄마가 해주시던 가재미 식혜 오징어 젓갈 명란젓등 맛은 비슷하지만 다양했던 재료들이 늘 입맛을 돋궈주었다.
이스라엘에 오니 생선보다는 고기를 많이 먹는 문화였고 남편도 고기를 더 선호했다. 뭔가 생선은 내게 어릴 때를 추억해주고 나를 나되게 하는 그런 감성이 있다. 어쩌면 어릴때 보던 문어 오징어 들이 고향을 생각하게 해주는 매체가 되는거 같다.
2-2실루기아 식사
터키차 촤이(샤이)
아니.샤이가 아니고 샤이야
뭐가 다른데? Chai가 아니고 chay라고
내가 듣기엔 다 같이 들리는데 내 말을 교정해준다.
Chay와 chai의 발음차이는 뭘까?
그럼 췌이인가?
이 중동 땅의 가장 흔한 차는 바로 이 샤이다
차를 샤이라고 한다.
그런데 발음이 약간씩 다르다. 우리나라 사투리마냥 지역마다 다르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세
바울이야 여러날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겠지만 우리는 짧은 두주간의 여정이므로 하루 하루 지역을 오간다. 우리에게는 한장소에 이틀이 없다.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다 보니 옷을 빨기도 쉽지 않다 . 구브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나올 동안 짐을 줄여야해서 3일 내내 같은 옷을 입었다. 어디서 묻었는지 알수 없는 먼지로 지저분해진 옷을 보더니 난민 같단다. 배에서는 9시간을 배에 있다보니 피곤한 분들은 배 바닥에 그대로 누우신 분들도 있다. 숙에서 나올 때는 혹시 놓고 나오는 물건이 앖나 꼭 확인해야하고 이제 여기서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길이 없다. 사진이나 촬영도 마찬가지다 이거다 싶으면 바로 찍어야한다. 아 빛이 않좋아서 이거말고 좀더 다른걸로 하다보면 지나고 나면 아쉽고 더 좋은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나그네의 인생이다.
어쩌면 바울도 오늘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겐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산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도시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등 죽을 고비를 몇번을 넘으며 복음을 전했던 그의 삶은 곧 주의 영광을 위한 나그네의 삶이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세 .
안디옥에 다시 왔다. 바울 시대 처럼 우리가 실루기아에서 배로 구브로를 가는 뱃길은 없다.
지금은 메르신 쪽에서 가는 편이 있는데 인터넷으로는 구할 수 없고 직접 방문하여 표를 끊을 수 있다.
안디옥에서는 베드로 동굴 교회는 어제 보았기에 위에 새겨놓은 마리아상과 베드로 상만 보고 내려왔다. 혹시 어제 산 티켓( 1일 170터키리라 )로 볼 수 없을까했는데 어제 표는 유효하지 않다. 그냥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하타이 주의 주도시는 안디옥이다. 레바논 베카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다마스커스를 거쳐 지중해로 빠지는 오론테스강 주위에 안디옥이있다. 이곳은 .오론테스의 안디옥이라고도 불린다.
오론테스 강은 가데쉬 전투가 있었던 곳 이다. 시리아를 거쳐 터키 남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강이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셀루시스 왕조의 땅이 되어 이 곳을 차지한다.
안디옥 베드로교회에 다시왔다. 오늘은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서늘하다. 산 위에 마리아와 베드로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에서 전 지역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작년에 큰 지진이 있어서 도시의 많은 지역이 폭탄을 맞은듯 부서져 있다.
30년 전에 남편은 다소 근처 메르신에서 싸이프러스를 가는 배를 타고 간 곳이다. 30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남편은 다시 한번 구브로를 갈 계획을 세웠다. 나도 터키 쪽에서 구브로를 가는 건 처음이라 무척 기대되는 여정이다.
3시에 산 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특별한 집이었다. 커피도 대단히 정성을 들였다.
5시 27분 다소를 향해가고있다
싸이프러스(구브로 ) 기르네로 가는 배를 탈 예정이다.
평범한 터키의 어느 한 마을에서 .
바울이 지난 길리기아 게이트를 지나 1000미터 고지의 눈발 날리는 산지를 지나 저녁무렵 한 마을에 도착했다 식사가 너무 늦으면 잘때 고생할듯하여 지나는 길에 쵸르바(터키식 스프)나 먹을까하고 들른집 . 맛집이었다.
바울 기념교회
터키에선 교회를 박물관이라 써 놓는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박물관이 될수 있다.
스토아 학파가 기세를 부리던 이 땅 다소 땅에서 유대인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유학간 바울 .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실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은 젊은 혈기라 유대교를 회방하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다녔을수도 있다. 우리 예루살렘에서도 보면 샤밧날 주차장에 들어가는 차들에게 샤밧을 지키지 않는다며 무리르 지어 야유를 보내는 청년들이 있다 그러면 경찰들이 와서 시위를 저지하다 충돌이 일어나기도한다. 적어도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의 규율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날도 그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로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그는 다메섹 도상 밝은 빛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아 . 만약 내 앞에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왜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니 하고 꾸짖으신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갑자기 뒤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지는 심정이다.
바울은 아예 예수님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빛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은 이후에는 인생의 흐름이 예루살렘 유대인 중심에서 전세계 복음으로 바뀌었다.
복음 전파의 출발지였던 터키 지역은 지금은 무슬림으로 변하여 박물관이 되었지만 그 폐허 속에 바울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는 꿈에 마게도니아로 오라는 제 3차 전도 여행 이후 그리스로 전해져서 신화와 철학의 본고장 그리스에서 꽃을 피우며 국교로 공인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과 관련된 곳에 기념 교회를 세우게 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바울은 그렇게 땅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던 이름으로 이 땅에 남아있다.
복음의 전파자 바울 그의 생가와 그의 우물이 그대로 박물관으로 남아있고 옛 성문에 바울의 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씨앗을 뿌리고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다 로마에서 생을 마쳤다.
바울의 문( 다소 )
길리기아 지방 다소 사람 바울의 고향에는 바다로 향하는 문이 남아있다. 바울 당시에도 있었던 문이었기에 분명 바울도 이 문을 드나들었을게다 . 다소에 유명한 사람이 어디 바울 뿐이었을까?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이곳에서 총독을 지냈고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였다.그래도 이문은 이곳 출신으로 예수님을 전하고 다신 바울의 문이라고불린다. 무슬림 땅이 된 지금은 특별히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을 방문했다하여 클레오파트라문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아테네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가는 학문과 문화의 도시였다. 그래서 그는 "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유명한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되어 더욱더 학문을 쌓아나갔다.
바울은 그들이 지켜야할 규율중 특히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생각해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안식일을 범한 사건 그리고 부활한 사건등은 그가 존귀하게 여긴 그의 학문 세계에서는 용납할수 없는 사건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닌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바울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던 길에 오히려 예수님에 잡힌바되어 모든 그의 생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어 모두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모든 학문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참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이야기한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바울의 여정을 따라 직접 배를 타고 이동 중이다
ㅂ
기르메 항구에서 니코시아까지 국경을 넘어 바보까지 갈 예정
니프고시 성안으로 들어왔다.
리프고쉬 북쪽 .
니코시아 남쪽
파마구스타에 영국 기지가 있다.
바울은 첫 선교를 나가면서 얼마나 설랬을까? 늘 미지의 세계를 간다는건 참 두렵고도 떨리는 일이지만 새로운 희밍을 갖게 하는 여행이다. 처음으로 배를 타고 싸이프러스로 가는 나의 느낌은 바울과 동행하고 있었다.
싸이프러스 비극적으로 분단된 아름다운 섬 . 1974년이후 분단 . 북쪽은 터키령 남쪽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독립국가. 고대 살라미 . 동쪽 해안에
바보 남서쪽 해안에 ㅡ 니코시아 검문소를 통해 양쪽을 오갈수 있다. .
중앙평원과 북쪽에서 남쪽으로 프라이팬 손잡이 모양으로 뻗어있는 카레이나 산맥의 뽀족한 능선이 대조를 이룬다.
바다쪽 돌출땅 근처에 수면 바로 아래 방파제의 기초 .
예루살렘과 가장 가까운 외국?
구브로 안디옥 .
바나바가 최초로 선교 사역을 나간곳 .
구브로에서 살라미 . 바보
우리는 반대로 바보에서 살라미로 .
오늘 가기로한 배편이 취소되면서 하루를 벌었다. 오늘 여유롭게 키티온과 나사로 교회를 보고 국경을 넘어 . 북싸이프러스 살라미로 향함.
북사이프러스 통해서 오기때문에 남싸이프러스에 들어갈슈 없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들어갈수 있다. 빠에서 차를 마시며 한밤을 보냄 . 북싸이프러스에서 이스탄불로 가서 아테네로 가서 아테네에서 남싸이프러스로 들어감 . 북 사이
프러스 스탬프를 캔슬하면 들어갈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왔다. 합승택시를 타고
북 싸이프러스에서 아침 식사.
그리스를 시작으로 터키를 거쳐 북싸이프러스에 오늘 도착했다. 아침 시간이라 열어놓은 식당도 없고 뭐라도 먹으면 감사한 시간 . 마침 샌드위치 집이 있어 앉았다.
이렇게 맛있는 샌드위치도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느낌이었다.
주인은 터키어를 하지만 북싸이프러스에서 태어난 싸이프러스인이다. 북싸이프러스가 터키땅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달리 그는 터키가 점령한 상태라고 한다. 이곳에 서 태어난 싸이프러스 사람이었다, 그들은 남과 북 싸이프러스를 자유 자재로 오갈수 있다. 하지만 터키를 갈 때는 마치 외국를 가듯 여권 검사를 받는다.
북싸이프러스는 터키가 점령하고 있어서인지 터키령이지만 입국 할 때 여권 검사를 하였다. 완전 다른 국가인 셈이다. 치안을 위해 터키군이 들어와 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터키 땅이라기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스라엘에서 바로 남싸이프러스로 갈 때와는 달리 배로 가는 여행은 조금 더 긴박했다.한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나르는 많은 사람들, 세탁기 까지 실어 나르는게 이웃집 이삿짐을 나르듯한다. 많은 물건을 실은 트럭들이 빽빽히 배안에 실리고 배안의 캐빈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새벽 시간부터 아침 9시 까지 꼬박 밤을 지샌다. 나도 배안에서 자는 잠이 편치 않다. 자다 보면 믈살에 흔들리는 배에 잠을 설친다. 밤새 잠을 설친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충혈되어 있다. 짐칸에 실려 갔을 바울 일행을 생각하니 참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싸이프러스를 간다는 이 설렘처럼 , 바울 일행도 처음으로 떠나는 선교 여행의 기대감과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그 고생을 하고 내려 겨우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도 그렇게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페북 댓글 글
성령의 임재안에 가시는 곳곳마다 사도행전을 몸소 체험하는 은혜의 시간 되시길 기도합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헌신으로 너무 감동 깊게 여정 따라가고 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번 책 쓸 때도 두 분 기록이 무척 도움되었습니다 제가 감사해서 두 분 성함을 제 책의 감사한 분들에 삽입했어요 책 나오면 어떻게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늘 강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바울 채찍교회( 구브로 바보)
싸이프러스 파포스 유대인 식당 싸바
.
오늘 하루 두끼를 겨우 먹었다.
아침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저녁엔 많은 식당이 비수기라 문을 닫은 터라 .
그래도 우연히 싸바(히브리어로 할아버지) 라고 씌인 식당을 발견하여 들어가 피타와 후무스 그리고 쉐아르마(닭고기와 야채를 빵에 말아 먹는 음식)을 시켰다.
파포스에서 바울을 만나러 온 우리
바울이 유대인을 만나러 회당을 들렸을 마음처럼 .
우리는 파포스의 유대인 식당에서 반가움을 맛보았다.
코셔라고 크게 씌여있었던 식당 .
바울시대에도 싸이프러스의 유대인들은 이렇게 코셔를 먹었겠지 싶다. 비수기에 문닫지 않고 열려있는것을 보니 그래도 이집은 장사가 좀 되나보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바울. 그도 코셔를 지켰겠지만 믿는 그리스인들 집에서는 코셔 아닌 음식을 용납했을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바울. 그도 코셔를 지켰겠지만 믿는 그리스인들 집에서는 코셔 아닌 음식을 용납했을 것이다.
남싸이프러스와 북싸이프러스의 국경
북싸이프러스에서 남싸이프러스로 걸어서 이동하고
다시 자동차로 오고가고 그렇게 도합 4번을 왕래했다.
국경 경 찰이 왜 벌써 가냐며 다시 또오란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살면서 자주 가는 곧 중 한 곳이 바로 이 싸이프러스다. 한국의 제주도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비행기로 1시간안에 갈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섬나라다.
아프로디테가 거품에서 탄생했다는 신화가 있는 곳 싸이프러스 . 추운 겨울에도 비만 안오면 참 따뜻하고 온화한 곳다.
사이프러스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성지중 한 곳이다. 바로 최초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를 나간 곳이며
중요한 기독교인 무덤이 있는디 바로 나사로와 바나바의 무덤이다. 이 두 성인의 무덤이 두곳에 있는데 공교롭게도 남과북으로 갈라져 있다. 나사로 무덤은 싸이프러스의.남쪽 수도 라르나카에 있고 바나바의 무덤은 북쪽 살라미스 근방에 있다. 1974년 이후 터키에 점령된 북싸이프러스와 자치독립국인 남싸이프러스를 국경을 통과하며 방문할수 있다.
번거롭다면 번거로울 수 있는 여정이다. 터키에서 배를 타고 여권 검사하고 들어와서는 북이서 남으로 갈 대 또 국경을 통과해야한다. 우리도 남북이 이렇게 자유롭게 오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남싸이프러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북싸이프러스에서 짐을 풀었다. 어제 바보에서 자고 아침식사후 (암포라 호텔식이 너무 근사하고 빵이 많이 나와서 순간 당황했다. 늘 한끼 식사가 빵 한 조각인데 말이다. 빵 하나는 휴지에 돌돌 말아 점심용으로 가져왔다)
뱃시간은 늘 날씨와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기르네에서 차를 렌트하여 남싸이프러스로 갔다오는 방법도 괜찮디만 일단 기르네에서 국경까지 가는
고전9장 . 바울이 사도권에 대해서 바나바처럼 홀로 다니지 않냐? 정경 외경 위경 . 바나바행전 위경평가를 받음 . 5세기에 씌여졌기에 .임의로 쓴거라고 평가되고 있다.
11시13분. 기르네 항구에 도착했다. 작은 도시지만 근처에 큰 성채가 있다. 1984년에 터키군이 점령한 이후 터키 점령지다.
터키 타슈즈 힝구로 갈 예정 터키는 사이프러스조다 1시간 빠르다.
루기아와 밤빌리아 통합 .
세스트루스 강의 큰 항구 버가가 이지역 수도 .
휴양지 안탈리아에서 사진 찍고 놀기 ..
배테랑 남편의 인도하에 사진 좋아하시는 장로님과 젊은 목사님 함께 사도바울 1차 전도여행을 잘 마쳐가고 있다. 마지막 마무리 안탈리야 .
동계 축구 훈련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1300고지 산지에 쌓여있던 눈은 어디에도 없고 아름다운 해안가에 낚싯군과 휴양지 다운 식당들로 가득하다.
터키엔 길가에 고양잉와 주인 없는 개들이 참 많았다.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를 그리 쫓아 내지도 않는지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개들은 혹시나 먹이를 줄까 기웃거리고 고양이도 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지중해 해안가에 어슬렁거리는 개와 고양이들도 역시나 우리 식탁 주위를 서성이며 혹시나 던져줄 먹이를 기대하며 몰려든다. 먹던 생선 대가리를 던져주니 가장 힘센놈이 와서 채어간다. 어디선가 개가 뛰면 다른 개도 뛰어간다.
이곳에선 그저 자연에 취해 사는게 맞아보인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그 황홀함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다. 우리도 자연에 취해 사진을 찍어본다.
전문가 사진 작가님의 조언을 받아가며 원경 근경 생각하며 찍어보지만 역시 그냥 느낌가는 대로 찍는게 내 스타일이다. 사진의 자유함이랄까.
이곳 버가에서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탈리아로 온 바울 일행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제 1차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 그리스 경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성경에 나오는 한 장소를 가기 위해 우리는 비행기 타고 배타고 수십키로를 운전하며 다녔고 가는 곳마다 거대한 로마 시대때의 흔적들을 볼수 있었다. 폐허로 남은 유적만 봐도 감탄하는데 그 시대에 살았던 바울은 이 도시들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지금 현대 사회에서 바울이 전도를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여전히 그의 외침이 들리는듯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남편의 눈이 충혈되었다. 아마도 실핏줄이 터진듯하다.
가끔 남편눈에 실핏줄이 터진다. 본인도 모르게 너무 열심히 일에 집중하다보니 그렇게 되나보다. 집에서 그랬다면 좀 쉬면 될텐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계속 진행해야하는 이 여정에서는 쉴틈이 없다. 그저 잠깐 잠깐 식염수 넣어 시원하게하고 눈을 좀 감고 있고 눈을 비비지 않으려 노력한다.
갈라디아서에 보낸 편지에 보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내가 주었으리라 하는 표현이 있다. 혹자는 그것이 바울이 심한 눈병을 알고 있었다고 암시한다고 한다.
그래 어쩌면 바울도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그 긴 여정을 갔겠구나. 39대를 맞는 고통을 이겨내며 구브로 선교를 마치고 밤빌리아에 돌아왔을때 마가는이제 그냥 예루살렘으로 덜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라 나도 카톡으로 유정이가 보내주는 예루살렘 소식을 들으니 이제는 그만 돌아가고 싶어진다. 겨우 이제 일주일 답사했건만 배타고 돌아가는 여정이 집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가도 그러했으리라. 아직 어린 나이에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바울의 열정은 식지.않고 더 불타는듯하다.
버가 세스트루스 강 .
안탈리아 박물관 무라의 죿 성 니콜라스의 유골이 담긴 작은 성물함 . 루기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비역 유물 . 버가의 조각상과 석관 이 매우 인상적 . 이도시의 부와 이시기 장인들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안탈리아 항구 . 루기아 산맥 .하드리아누스 3중 아치 .문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2세가 앗달리아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힌다.
비시디아 안디옥 온천으로 유명 .
더베 루스드라
오후 4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각.
우리는 터키 하툰사레아 라고 불리는 성경 지명 루스드라에 도착했다. 지난 촬영 때 루스드라 지역의 한 찻집에서 이곳 텔을 직접 와주며 이곳에서 루스드라 유적이 발견되었다며 이곳까지 같이 와 주었다.
지나는 길에 강이 있고 강의 다리 모습을 보니 고대다리로 보인다. 지나던 차를 뒤로 후진하여 로마 다리로 보이는 곳 근처에 차를 세웠다. 푯말에는 오스만 터키때의 다리라고 하여 우리는 약간 실망했지만 남편은 끝까지 이 가초에는 분명 로마의 잔재가 있을거라며 다리 주위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여보 이리 와봐 .아 남편이 뭔가를 발견한건가? 싶어 다리 밑 강가 쪽으로 내려갔다. 아 다리 위와 다리 옆에 로마 시대때 사용되었던 비문 석상 등이 보였다.
비아 세바스티에
구브로에서 떠난 바울은 버가 항구에 도착하여 로마가 만든 세바스티에 길을 따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동하였다.
이 길은 로마 장군 아우구스투스가 이 지역을 로마의 속주로 만들면서 군인들이 지나갈수 있는 군사 도로로 새로 만든 길이다. 이 길은 안탈리아에서 시작하여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를 거쳐 더베(어떤 학자는 루스드라까지만 도로가 나있었다고 한다) 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이 길을 따라 자신의 선교사역을 이어 갔던 것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서기오 비울이라는 비석이 발견되면서 이 비울이 구브로에서 만난 서기오 바울의 고향이 아니냐 하는 설이 있다. 그 때 만난 서기오 비울이 개종한 이후에 우리 고향도 들러달라는 말을 전해듣고 비울이 이곳을 방문한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바울은 로마가 만든 길을 따라 갔고 그곳 안디옥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아침에 이고니온 꼬냐에서 출발하여 먼저 바울 기념 교회를 찾았다. 그돗은 바울과 테클라의 성화가 보관되어 있다.
지난번에는 찬양하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잘 만나고 촬영했는데 사실 이곳은 일요일만 연다고 한다. 마침 정원에서 한 터키인이 나오더니 이번주는 매우 위험한 주란다. 마침 지난 주일에 이스탄불의 한 교회에서 터키인이 총으로 한 교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 교회 주위에 ㅅ
해발 1300고지를 지나고 있다. 드넓은 평야 지대이다. 왜 이곳에 길을 냈는지 왜 로마군이 이곳까지 왔는지 왜 이곳에 대도시가 섰는지 그리고 바울이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알수 있는 평야의 모습이다 벌써 1시 14분이다. 비시디아에서 안디옥까지 1500키로를 달려야한다. 이 높은 지역에 호수가 있다.
1시 40분쯤 지나다 보이는 식당에 차를 세웠다. 다소에서 먹던 양고기 스프가 있다. 파챠 . 밥만 있으면 딱인데 여기도 밥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온 햇반을 넣고 계속 끓였다. 750 리라를 맸다. 다른 식당에 비하면 조금 많이 낸 느낌이다. 휴게소니 그럴만도 하다.
하시(아르메니아어: Խաշ, 아제르바이잔어: xaş)는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남캅카스·중동 지역에서 먹는 쇠족 요리이다. 파차(아랍어: باجة, 불가리아어: пача), 파체(보스니아어: pače), 칼레 파체(페르시아어: کلهپاچه), 켈레 파차(튀르키예어: kelle paça) 등으로도 부른다.
하시를 만들 때는 소고기 다리를 재료로 한다. 그리고 돼지, 면양, 치킨 다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고기 일부를 잘 씻은 후에 사용한다. 마늘, 소금, 푸성귀를 하시와 같이 먹는다.
그러니 우리 나라 소족탕을 먹은셈이다.
같이 간 목사님이 가져오신 김치와 라면 그리고 햇반은 국과 함께 끓여 맛있게 먹었다. 햇반을 넣어달라는데 이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직접 부엌에 들어가 파체를 함께 넣고 끓였다. 손님이 들어가서 요리를 하는데도 오히려 그릇도 주고 불이 켜주고 주걱도 주며 도와준다. 아랍이나 터키는 이런 매력이 있다.
브르기아 지방은 산액지대다 물론 길리기아 지방도 1000미터 고지를 넘어 갈라디아 남부를 지나 이곳 브르기아 지방까지 넘어왔다.
2024년 1월 30일 터키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지방은 참 추웠다. 구브로섬만해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은 온화하고 따스했다. 구브로에서 배를 타고 터키 해안가로 오는 밤공기는 참 매서웠다. 너무 바람이 거세서 그 전날은 취소되었고 다음날 12시 출발 예정이던 배는 2시가 넘어서야 선적이 끝났고 9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배 위에서도 너무 바람이 불어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 전전날 배를 탈때도 밤 12시의 찬공기는 얇은 바지 사이로 몸을 얼게 하였다.
다시 이틀후 밤 9시에 다시 돌아와 차를 타러 가기까지 머리와 몸을 꽁꽁 싸맨체 찬 바람을 가급적 맛딱뜨리지 않으려 몸을 움츠리며 겨우 차에 올라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낮시간엔 햇빛도 쨍쨍하고 시원한 바람이 상쾌함을 주었다. 오후무렵 길리기아 게이트(다소에서 갈라디아 지방으로 넘어가는 길은 고대로부터 이길밖에 없다. 바울도 갈라디아 지방을 갈 때 이 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를 넘어가는데 눈발이 날리기 기작한다.꽃가루 같은 눈발이 날리더니 시야가 흐려질 정도의 눈이 내린다. 온 산은 눈으로 뒤덫히고 전혀 지중해가에서는 보지 못하던 광경이 산중마을에 펼쳐진다. 이렇게 눈오고 추운 겨울은 터키 여행중 처음이다.
로마 기행중 바울이 갇힌 감옥을 들어가보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했던 것처럼 바울은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이 산을 넘어 선교를 다녔을거란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우리처럼 따뜻한 옷도 따뜻하고 안락한 차도 숙소도 없이 다녔을 그를 생각하니 그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인내하며 다녔을지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세
바울이야 여러날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겠지만 우리는 짧은 두주간의 여정이므로 하루 하루 지역을 오간다. 우리에게는 한장소에 이틀이 없다.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다 보니 옷을 빨기도 쉽지 않다 . 나올 때 혹시 놓고 나오는 물건이 앖다 꼭 확인해야하고 이제 여기서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길이 없다. 사진이나 촬영도 마찬가지다 이거다 싶으면 바로 찍어야한다. 아 빛이 않좋아서 이거말고 좀더 다른걸로 하다보면 지나고 나면 아쉽고 더 좋은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나그네의 인생이다.
어쩌면 바울도 오늘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겐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산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도시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등 죽을 고비를 몇번을 넘으며 복음을 전했던 그의 삶은 곧 나그네의 삶이다.
오믈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세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버가까지 .
지금 에지르디르 호수 옆을 지나고있다 9시 27분
바르티아산을 병풍삼아 호수 반대편으로 지나고있다.
굽이굽이 산을 내려왔다. 오는 딜에 아저씨 한분이 터키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겠다. 길이 막혔다는 건가 깊어 번역기를 돌려보니 안탈리아 가는 길이 맞단다. 그런데 왜 자꾸 뭐라하는거지? 아무래도 자기 가는길이 밎냐고 오히려 묻는거 같아. ㅇ타지인에게 물을게 따로 있지. 우리에게 묻다니 .. 약간의 해프닝 끝에 또 지나는데 큰 바위위에 나무 한그루가 멋있다. 내려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데 한 장로님이 아무래도 선왕당 같단다. .손바닥모양이 찍혀있고 왠지 무당집같단다. 에구 경치는 멋있는데 아무래도 이것도 쓸만하지.않다. 좀더 내려오는데 물을 먹을수 있게 해놓은 통나무로된 곳이 있다. 정말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것을 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지금 이길을 사람들이 다니는걸 보면 바울 시대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녔겠다 싶다.
비시디아 안디옥 천이삼백 고지에서 이제 천미터 100미터 0 미터 까지.내려가고 있다. 차갑던 공기는 시원한 공기로 변하고 다시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바뀐다.
버가에서 내리자 마지 마가요한은 예루살렘 가는 배가 있냐고 찾아다니지.않았읅까?
안탈리아에 새로 오픈한 좋은 호텔에서 2박으로 마무리를 했다. 겨울 비수기라 참 저렴하다. 우리는 방 하나에 둘이 다른 일행은 한방씩 예약을 했다. 우리는 참 편하게 잠을 잤는데 다른 두분은 한분은 너무 추워서 한분은 너무 더워서 잠을 설쳤단다.다음날 두분은 다른 방으로 방을 바꾸셨다. 어쨌든 조식이 포함된 공항 근처의 고급 호텔이다.
이틀동안 안탈리아의 해안가에서 생선을 먹었다. 평소 먹던 케밥의 몇배되는 가격이지만 15유로에서 20유로면 먹을수 있다. 특별히 이번에는 한국에서 오시는 분을 통해 김치와 라면을 20키로 가량 받았다.
우리 남편은 부킹 닷컴 지니어스다. 호텔 예약시 20프로 이상 할인 된다. 그리고 후기를 쓰는 권한이 있기에 대부분 호텔에서 서비스가 좋다. 지난번 이집트에 갔을 때는 너무 심하게 댓글을 강요당해서 불쾌할때도 있기는 했다.
알바니아를 갔을 때는 마지막에 엘리베이터도 고장나서 4층 계단을 무거운 짐을 들고 내려와야해서 평점을 아주 낮게 주었다 . 그랬더니 전화가 왔다 제발 평점을 높게 해달라고 .사실 그날 다른 일행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정전이 났다.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우리 일행이 너무 강하게 문을 억지로 열어서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단다. 정전사고는 전체 지역의 문제였고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어쩔수 없이 짐을 들고 내려야했던 것이므로 우리가 한보 양보하여 다시 평점을 좋게 주기도했다. 요즘 인터넷 시대라 평점이 괭장히 중요하다. 하긴 모든 여행자들이 전세계에서 오고 하루 이틀만 자고 가니 얼마나 신중하게 장소를 정하겠는가? 모든 정보는 인터넷 고객 평점으로 평가되니 신경쓰지.않을수 없다. 이 좋은 호텔을 나오면서 아침 조식에 서빙을 하던 여직원도 평점을 좋게 써달라고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넨다. 자신의 이름까지 가르쳐주며 말이다.나도 그러겠다며 방긋 웃으주었다. 우리 아들 딸 같아서 더욱 정이 간다.
요즘 진상 손님도 많다는데 그네들은 자녀들이 없는 건가? 아니면 고생을 안해본건가? 어떻게 자식같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못되게 구는지 이해할수 없다.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말이다.
안탈리아에서 그리스로
아침 8시에 공항 근처 렌트카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10시 15분 비행기를 탔다. 원래는 아다나에 돌려주거나 이스탄불까지 가서 반납할 생각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비용이면 더 저렴하게 갈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먼 거리라 운전하시는 분 생각에 버가와 안탈리아도 찍을 겸 이곳에서 2박을 하고 이곳에서 반납하기로 결정을 했다. 터키는 워낙 큰 나라라 이곳 저곳에서 반납이 가능했고 큰 도시에는 비행장이 있어 어디서든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편이 가능하다.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 1시간 5분이 걸린다는 방송이 나왔다. 여행은 이동이 절반이다. 이제 도착후에는 이스탄불에서 4시 비행기를 타고 그리스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3일을 머문후 다시 이스라엘로 갈 예정이다. 다른 두일행은 저녁 8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들도 반나절을 다시 공항에서 보낼 예정이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정은 터키해안에서 구브로 (싸이프러스)까지 배를 타고 간 여정이었다. 새벽 시간 찬 공기를 피해 대기실에 모여있던 많은 사람들. 마치 이삿짐을 나르듯 냉장고 까지 나르는 사람들 . 담배나 술은 다 압수하여 모아두던 광경 . 밤새 흔들리던 배에서의 잠 . 힘들수록 바울을 좀더 가깝게 느낄수 있었다.
구브로에서 배를 타고 다시 돌아와서 타우루스산을 넘어 길리기아 문을 통과하여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지난번에 돌았던 곳이라 나는 이번에 두번째 방문이었다. 바울도 이길을 오고 가묘 3번에서 4번정도는 걸었던 길이다.루스그라는 성경에 4번 나온다) 그리고 다시 타우루스 산맥을 내려오며 좁은 도로를 굽이 굽이 내려오며 확연히 달라지는 날씨의 변화를 느낄수 있었다(. 길리기이 게이트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더베 루스드라 지역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정말 진귀한 루스드라의 눈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더 선명한 사진을 찍었다. 정말 추운 터키릐 산지.날씨를 직접 경험해 본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는 곳마다 모두 맛집이었다. 산지의.케밥과 피자가 맛있었고 마지막 생선요리를 통해 지중해의 진미를 맛보았다.
백종원은 신혼여행을 와서 음식 투어를 했다는데 이렇게 산지도 와서 먹어볼것을 권한다. 아무리 똑같은 케밥이라도 지역에 따라 매운맛 향신료를 달리하니 맛이 다르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그 지역 이름을 붙힌다. 예를 들어 아다나 케밥 . ....이스틴불 케밥 ....등등 .. 터키 케밥과 이스라엘.케밥을 비교한다면 터키나 이란 케밥은 손으로 많이 치대어 거의 고기죽이 될정도로 만든후 뭉치기에 소화가 잘 된다.
오후 6시 쯤?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사실 언제 도착했는지 정확하진 않다. 지금은 6시 50분 . 30분정도 기차를 기다린듯하다 지금 이 시간이 그리스 시간이겠지? 터키와 그리스는 1시간 차이가 난다. 터키가 1시간 빠르다. 그리스 터키 비행 시간은 1시간 정도다 . 떠서 음료 마시고 나오는 빵 먹고 나면 좀 지나면 도착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주는 밥 먹는 즐거움이랄까 . 굳이 내가 밥 할 필요없이 그렇게 맛있진 않아도 또 그렇게 먹으면 맛있다. 특히 여행중엔 뭘 먹어도 맛있다.
오늘 그리스로 오는 비행기 안에 예쁜 여성이 내 옆에 앉았다. 처음엔 그리 맘에 들진 않았다. 너무 예쁜 척 하는 거 같아서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질투심인가? 남자라면 이쁜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을텐데 말이다. 뻔히 옆자리에 사람이 앉을걸 알텐테 옷을 놓은 것부터 맘에 안들었다. 옷좀 치워줄래요? 첫만남은 그러했다. 좀 지나 스튜어디스가 빵과 음료를 나눠주는네 와인 한잔을 시킨다. 보이지 않는 와인을 시키는걸 보니 자주 비행기 왕래하는 여성같다. 호기심에 말을 걸어보니 화장품 관련 메니저다. 그리스에 본사를 두고 터키에 판매하는 제품이 있나보다. 제품을 알려주었는데 잘 모르는 상표다 . 그래도 이스라엘에도 메니저가 가있다는걸 보면 꽤 큰 회사같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간다고 하니 매우 위험하다며 조심하란다. 갑자기 급 걱정 모드다.
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레 종교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이 말이 빨라서 말이다) 자신도 그리스 오소독스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며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리스 콘스탄틴 황제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촤초의 교회가 이스라엘에 있다며 이야기해줬다. 그녀는 자신도 너무 가고 싶은데 한번도 가본적 없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헬레나가 예수님 못에 막혔던 십자가를 발견했는데 다 조각내어 여기 저기 흩어졌단다. 그러나 한 조각은 그 때 예수님 당시의 조각이 아니었다고 판명낫다며 다큐멘타리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나도 핼레나가 찾은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를 알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화재를 바꾸어 화장품하면 우리나라지 내가 그녀에게 자랑처럼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도 그래 정말 한국은 경쟁회사지 . 하며 한국을 칭찬한다. 요즘 중동국가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인기있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에서도 그렇게 인기있는지는 몰랐다. 그리스에서도 우리나라 드라마는 폭팔적이란다. 무엇보다 남성들이 너무 멋있다며 자기 친구중 하나는 한국 남자랑 결혼하고 싶단다.. 에궁 ... 그렇지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은 참 멋있긴 하지 . 내가 봐도 그러니 말이다. 오죽하면 터키에서 잠깐 만난 여성도 만나자마자 한국 배우 이름을 댔으니 말이다. 몇달전에 세상을 떠난 배우 이름까지도 안다. 이게 터키뿐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정말 인기가 많구나 싶다.
그리스인들은 왜 터키를 방문할까?
자매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 . 아주 짧은 시간에 .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건 이 비행기 안에 왜 이렇게 그리스 인들이.많은지 였다. 그리스인들은 터키에 왜 오는 걸까?
일단 두나라간에 통행이 자유롭가는 거다. 무엇보다도 유럽국가에서는 터키로 여권 없이 신분증 하나로 이동이.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터키에서도 유럽을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다. 아 그래서 터키에서 구브로 섬을 갈 때 다들 신분증 보여주며 여권없이도 오고갔구나 . 단지 터키령이기 때문에 그런줄 알았는데 말이다.하긴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아시아이면서 유럽인 나라다. 보통 보스포러스 해협 오른쪽과 왼쪽이 유럽과 아시아에 서로 나뉘어 있다.
그리스인들중에는 터키 본토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많다. 옆에 앉은 여성도 갑바도기아가 뿌리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그리스인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터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힘이 강해지면서 오스만 터키때에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로 강해지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예전에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심 수도 역할을 했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이어오다가 1543년 셀주크에게 망하면서 그 유적만 남아있다. 비잔틴의 흔적 그리고 가족
그리고 또 이들이 터키를 자주 가는 또다른 이유는 터키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특히 치과라든지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확지는 않다. 비행기가 착륙해서 헤어질 시간이 되어 말을 길게.잇지 못했다) 암튼 저렴한 시설이나 의류 등 많은 것이 그리스보다는 저렴한가보다.
기차를 타고 호텔로 가고 있다. 로마는 기차를 타고 로마 센터까지 3ㅔ분이면 갔는데 이 기차는 그냥 일반인들도 많이 탄다.
우리는 1시간 가량 이동하여 신타그마에서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