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지하철에서 벌금을 떼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카이로에 가기 위해서는 꽤나 험난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에서 부다페스트로, 부다페스트에서 바르샤바로, 바르샤바에서 카이로로 총 2번의 경유 끝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세계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긴 경유로 이곳에서 무박 이일을 보내게 되었다. 14시간 만에 새로운 땅을 밟는다는 것이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으나, 비행기가 착륙할 때 즘에는 무채색의 비가 창문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었다. 마침 우산과 우비 모두 큰 배낭에 넣어 놓았던 터라 우리는 비를 맞으며 헝가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예상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대로 흘러갔지만,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에게 드디어 우리만의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과 같이 느껴졌다.
비가 오는 헝가리 시내였지만, 비가 오는 유럽은 내가 상상했던 도시 속 거리와 비슷했다. 높지 않은 건물들과 비를 그냥 맞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모두 신기했다. 시내를 둘러보며 우리는 성 이슈트반 성당에 도착해서 선민이가 설명해 주는 성 이슈트반 성당에 대해 듣고 간단히 사진을 남겼다. 또 바로 근처에 있는 젤라또 맛집에 가려고 했지만 오픈을 안 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부다 성을 향해 걸어갔다.
부다 성은 굉장히 커서 돌아보는 묘미가 있었다. 그리고 부다 성 위에서 3대 야경이라고 불리는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점점 해가 지나가니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들이 부다페스트 건물의 매력들을 한층 살려주었다. 비가 와서 아쉽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운치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주위의 도시 건물들을 빗소리와 함께 구경하니 오로지 이 공간에 빛나는 야경들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 안개가 살짝 껴서 더 신비로워 보이니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넋 놓고 쳐다보게 되었던 것 같다.
비를 맞으면서 야경을 다들 오랫동안 바라보니 슬슬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우리는 인근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하였다. 가는 길을 헤매기는 했지만 무사히 식당에 들어갔고, 현지 식당이라 그런지 당연히 헝가리어로만 쓰여 있었다. 앞에서 보고 들어왔을 때는 가격이 분명 괜찮았었는데 왜 안에 메뉴판은 더 비쌀까...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앉아서 물도 주문한 상태라 그곳을 빠져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우리는 아껴서 먹기로 했다. 온통 헝가리어로 되어있는 메뉴찬을 보며 헝가리어 중간중간에 보이는 영어 단어들을 조합해 메뉴를 추측하며 주문을 했는데 나름 성공적이었다. 비싼 식당에 들어온 탓에 빈곤하게 먹었지만 그래도 비싼 값을 하는 맛이었다. 나름 성공적인 식사를 마치고, 로컬 식당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서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여행 첫날치고 너무 알차고 순조롭게 지낸 것 같은데?”라는 말…
역시 인간은 자만해서는 안 되는 걸까. 그 말을 내뱉으며 뿌듯해하는 순간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래서 여행은 잠들기 직전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한 걸까?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함께 헝가리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헝가리 지하철은 꽤나 불친절했다. 겨우 티켓을 사서 찍고 들어가려는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찍고 들어가는 곳이 굉장히 허술하게 되어있었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방역할 때 온도 재는 기계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찍고 들어가는 기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기계가 티켓 찍는 곳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아무도 티켓을 찍고 들어가지 않길래 그 사람들을 따라 그냥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올라가는 입구 쪽에 직원들이 서서 티켓을 검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 저기서 티켓 검사를 하고 가는 거구나!”라고 깊은 깨달음을 얻은 채로 우리를 부르는 직원에게로 향했다.
그 직원 분이 나의 티켓을 보더니 갑자기 여권을 달라고 했다. 그때 수상함을 눈치채고 여권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외국인 신분을 확인하려는 건가?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여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또 나는 곧이 곧 대로 직원 말에 따라 친구들의 여권 모두를 야무지게 걷어서 직원에게 건네었더니, “너희는 무임승차를 했어. 무임승차를 했기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해. 벌금을 내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너희 여권을 돌려줄 수가 없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대체 무슨 돈이 있다고 벌금을 내라는 건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직원에게 우리는 정당하게 티켓을 샀고, 찍는 곳이 전혀 없었다고 아무리 이야기했지만 원칙은 원칙이라며 1인당 4만 원의 벌금을 요구했다. 벌금도 너무 비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권이었기 때문에 결국 피 같은 32만 원을 벌금으로 지불하고 겨우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비와 낭만을 챙기려던 헝가리는 약간의 불쾌함과 함께 여행에서 언제나 긴장감을 늦추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