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순 없어요.'
영화를 하나 보고 싶었다. 넷플릭스를 뒤지는데, 그냥 익숙한 양산형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서, 계속 뒤지다 ‘스카페이스(1983)’를 발견했다. 알파치노가 주연이길래, 소개 영상을 잠깐 보고 바로 10분 정도 봤다. 배짱 있고 강단 있는 언변에, 히스패닉 억양이 매력적이라 날을 잡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염으로 기진맥진했던 어젯밤, 아들을 재우고 난 뒤 침대에서 조용히 영화시청을 재개했다.
소설《스카페이스》가 원작인 이 영화는 1980년대 쿠바에서 범죄자 신분으로 망명온 토니 몬타나(알파치노)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그는 빈털터리에서 마약 범죄에 가담하며 점차 마이애미를 주거점으로 한 마약왕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이전 보스의 여자 엘비라 핸콕(미셸 파이퍼)에게 사랑을 느끼고, 보스의 자리를 쟁취하며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그녀는 배트맨 2에서 캣우먼을 연기했던 인물이었는데, 참 찬란한 순간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토니는 밑바닥 삶에서부터 시작해 정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부를 쟁취했지만, 벌어들이는 돈의 10% 이상을 자신의 경호에 쓰는 삶을 살아간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몸은 자신이 취급하는 약에 중독되어 가고, 사랑하던 사람, 가까운 사람들과 멀어져 가며 정신적으로도 망가져 간다.
영화 막바지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이프와 절친과 함께 하는 식사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엘비라와 토니가 주고받은 날 선 대화가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극 중 토니는 엘비라가 약에 취해 아이도 낳지 못하는 여자라 모욕하는데, 이에 엘비라는 당신이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냐며 격분한다.
경호원 없이 혼자서는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당신이 아이를 정상적으로 학교에 등하교시킬 순 있냐,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우릴 봐라, 우린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당신은 약쟁이고 살인자 일뿐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며 자리를 뜬다.
이러한 관계는 그 이전부터 조금씩 전조증상이 있었지만 고급스럽게 분위기를 잡고 교양 있게 식사하는 부유층 사이에서 폭발하는 모습이 괴리감과 함께 이상스러운 아픔을 느끼게 했다.
나도 부를 추구한다. 재정적인 안정을 희망하고, 그를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노력이 잘 못 됐다는 게 아니지만, 그들이 실패했다고 하는 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것들이 부정한 방법이라서 문제였을까,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 와이프와 좋은 관계, 자녀와 함께 편하게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 함께 시간을 나누고, 가족과 단란한 식탁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그 평범함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이지, 새삼 느꼈다.
그날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영화와 관계없이 집 안팎으로 애쓰는 와이프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몇 차례 했었다. 아이에게도 그랬다. 열심히 유치원 다니며 적응한다고 고생하는 아이에게도 감사했고 여러 가지 일들로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내주지 못함에 미안했다.
토니의 가정은 아버지의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그 아버지를 두둔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 아버지 역시 구조적인 영향을 받았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토니 어머니는 혼자 딸을 양육하며 함께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토니 어마무시한 돈을 벌었을 때도 그의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비쳤다. 토니는 화목한 가정을 꿈꾸었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여동생만큼은 더러운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고, 순결하고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랐던 거 같다. 끝자락에 암살대상이 두 자녀와 와이프와 함께 있음에 그들을 죽이지 않은 최소한의 양심, 신념이 있었던 그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과 관련된 문제에 극단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의 말로가 어쩌면 약과 부정으로 쌓은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그 레스토랑 장면에서 엘비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토니가 허드레 일을 하며 차근차근 자리를 잡으며 일반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일까,
우리가 필요로 하며 많은 이들이 결핍을 느끼는 물질적 풍요, 추구하는 삶의 여유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을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인생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고 깊게 얽혀 있다. 분명한 건 삶의 대부분이 경제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그것을 쉽게 구분짓기 어려울 때가 많다. 처음에는 행복을 위해서, 필요를 느껴서 추구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그 부 자체가 성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로 설정한 것이 문제가 되는 걸까, 사실 모호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부를 수단으로 삼겠다고 할 때보다 그 자체가 목적인 될 때 위험성과 부작용은 분명 더 클 것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편취하는 이들은 항시 존재해 왔다. 인류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인간 종의 특성일 수 있다. 정규분포를 그리면 항시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런 삶도, 저런 삶의 삶의 일부인건 자명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디에 속할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인간다움, 고귀함이 아니겠는가.
토니는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돈을 얻었지만, 자유를 잃고, 가족을 잃고 사랑도 우정도 목숨도, 영혼도 잃었다. 엘비라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며, 돈에 눈이 멀지 않도록 경계하며 곁에 있는 사람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