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찰나, 찰나는 영원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개인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모두 들을 수 있게 잔잔하게 음악을 틀어 놓는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음악은 도깨비의 OST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이다.
감정을 건드리는 음악들.
인생이 정말 찰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찰나(刹那)는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나(क्षण, kṣaṇa)'를 음역 한 불교 용어로, '순간'이나 '아주 짧은 시간'을 뜻한다. 불교에서의 최소 시간단위이며, 약 75분의 1초 정도로 여겨진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사이에 64~65 찰나가 지난다고 하는데,
모든 찰나가 겹쳐서 하나의 삶을 이뤄지지.
그 역시 찰나와 같다.
영원은 순간과 같고 순간은 영원과 같다.
음악을 들을 때, 찰나를 느낀다.
순간의 그 선율, 화음, 흩어지고 사라지고 마는 소리 정보들...
하나의 음악/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화려한 조명 위에서 엄청난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순간
어쩌면 인생이 그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이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파올료 코엘료의 11분이란 책에서
모든 삶은 그 짧은 11분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단상에
일정 부분 공감이 됐었다.
우리는 순간을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해 나간다.
때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과정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쓰는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일까?
그 순간을 위해서만 있다고 하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운 순간을 만끽하게 될 때면,
그래 이걸로 족하다.
충분히 이럴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게도 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그 순간을 위해 들어간 수많은 헌신과 고통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그럴만했다. 좋았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
역설적이게도 짧은 인생사 속에서
또 찬란하게 빛나는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 또한 사랑하고 찬란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순간이 있지 않을까?
노력 없이 쉽게 얻는 짧은 쾌락이 아니라,
삶을 쌓고 쌓아 성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
쉽게 갖지 못할 그 순간을 위한 과정은
그 짧은 찰나와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하나의 완성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찰나는 위한 삶,
역설적이게도 삶이 찰나이기에
찰나 속의 찰나를 위한 삶은 충실한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