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그림자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연습
아무 생각 없이 켠 SNS 피드에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이고,
누군가는 프로필 사진이 더 말끔해졌고,
어떤 사람은 “그때 그 친구”랑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고—
가끔은 그냥
나만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좋아요’를 누르며 웃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입가가 굳어지고,
기분이 슬그머니 식어간다.
별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누군가의 좋은 소식이
묘하게 내 마음을 쓰리게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괜히 내가 이상한 걸까?
우리는 원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살아온 존재다.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이기도 하니까.
누가 나보다 빠른지,
누가 더 많은 걸 가졌는지,
이런 판단이 때론 살아가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는 그 비교를
쉴 틈 없이 자극하는 세계다.
타인의 ‘베스트 컷’만을 연달아 마주하게 하니까.
물론, 그 안엔 진짜 삶이 있다.
누군가의 성취, 기쁨, 사랑스러운 장면들.
그런데 문제는,
그 ‘좋은 장면들’ 사이에서
나의 평범한 하루가 초라해 보이기 시작할 때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남들은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것 같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그럴 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나도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왜 난 이걸 못 하고 있지”가 아니라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꿔보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SNS 속의 사람들은
내 삶의 맥락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의 맥락을 모른다.
그 순간만 잘 포장된 한 장면을
전체의 진실처럼 받아들이면,
나도 모르게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런 마음이 드는 날도 있다.
그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사람 사이에서 내 자리를 고민하고 있다는 표시니까.
그저 오늘은,
나의 속도가 조금 느릴 뿐.
내 삶은
여전히 내 자리에 잘 놓여 있다.
좋아요 수보다 중요한 건
오늘도 나를 좋아하려는 마음 하나
부러움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비교는 어쩌면 평생 함께 살아야 할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나를 다시 중심에 놓아주는 연습’은 할 수 있다.
그 연습의 시작은
화면을 끄고,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이렇게 말해보는 것일지도.
“그래도 오늘, 나 잘 살아냈다.”
“누군가의 삶은 멋졌고, 나의 삶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