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겸양 Apr 27. 2023

생산 현장에서 욕먹고 눈물을 보인 23세의 청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다른 면접자와의 약속으로 현장을 방문했다.

얼마 전 입사한 친구가 보여 안부를 물었더니

나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욕을 먹었다고 했는데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갔다.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며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했다.


유약해 보이는 그 친구의 모습에 마음을 아팠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텐데,      


면접을 볼 때가 생생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이별하고 할머니 손에서 줄 곧 커 왔던 그 친구는 이제 홀로 서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자립지원도 사회 경험도 없던 그를 반겨줄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키는 작지 않았지만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고 손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수전증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일할 때 속도가 빠르지 않아 이전 회사에서 나와야 했다고 했다.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대화를 하면서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순수함과 선함을 잃지 않고 자라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나쁜 친구는 아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고 일할 기회는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안 맞으면 고용센터라도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도 힘든 순간, 실수하던 때가 있었다고,

아직 수습기간이고 주변을 많이 의식하며 힘들어할 때이니,

용기 잃지 마시고 한 주 한 달 힘내시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다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또 찾아뵙겠다고.      


휴게 시간에 톡이 왔다.


안 그래도 오늘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었고

어제는 몸도 안 좋아서 출근길에 세 차례 구토를 했다고 했다.     

잠시 통화를 해보니 원인은 모르지만

다행히 지금 구토 증세는 없다고 했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며 통화를 마쳤다.      


어떻게든 살아 내야 하니,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면접을 진행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된다.

한 분 한 분 마음이 쓰인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고 좋은 성품을 지닌 건 아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악의가 차오르기 쉽다.

그렇다고 모두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에는 또 변함이 없다.

적어도 살아가려고 애쓰는 분들에게는

별 대단한 건 아니지만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최대한 드리고자 한다.               



한 사람이 모두를 구할 순 없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곁에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끌어안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세상은 얼마나 더 살기 좋은 곳이 될까 생각한다. 마더 테레사가 그랬다. 한 번에 한 명씩 그렇게 할 뿐이라고.           



어제 잠들기 전 틱톡을 보다 2년 전 뉴스를 보았다. 조카를 오랜 기간의 구타 물고문 등 학대로 사망케 한 부부의 내용이었다. 자녀가 있는 입장이라 그런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에게 이뤄지는 폭력을 접할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영상 속 학대받는 아이를 보니 미안하다는 마음과 함께 차라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일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 고통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 괜한 위안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화도 많이 났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인간은 양극단에 설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지만 이런 일을 대면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오히려 무뎌지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


불의에 분노하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볼 때면 화가 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내 삶의 자리에 충실하면서 이러한 고통 앞에서 작은 무엇인가라도 해야겠다는 끌림을 느낀다. 그게 소명일 수 있다.     


세상에는 참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들을 영웅과 같은 누군가가 혼자 감당할 순 없다.

각자의 울타리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 존재에게는 세상 전체가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세상에 일방적 수혜자는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로부터 부채를 지고 있고,

누군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그것이 의미가 된다.

삶이란 거저 주어졌지만 그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지금 해야 할 것들과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또 한 번 그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쉬운 건 없다. 그렇다고 안 될 것도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