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연휴였다. 우리 집 양가 부모님은 다들 따로 살고 계신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너무 길고, 장인어른은 경주, 장모님은 현재 우리와 같이 지내시고, 어머니는 충북 영동군에, 아버지는 포항에 거주 중이시다. 그렇다고 이혼을 하셨거나 그런 건 아니다.
여하튼 이런 날이면 조금 머리가 아프다. 이 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선물?이나 방문이나 동선이나 우리 일정이나 뭐 신경 쓸 게 많으면 많다고도 할 수 있는데, 형편도 빠듯하고 그렇다고 밥 굶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그렇다.
어린이날이 금요일이었던 탓에 누군가에게는 황금연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사람도 참 많아서 비가 오는데도 관광지는 길이 꽉 막혀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금요일 오후에는 온 가족이 포항에 다녀왔다. 비도 오고 해서 밖에 나가서 밥을 먹지는 않고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잠깐 인사드리고 왔다. 용돈 드리기도 어려워 과일 좀 사고 아들에게 씌울 카네이션 머리띠를 사서 갔다. 그것도 와이프가 신경 써서 그나마 한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와 다음날은 나 혼자 어머니께 갔다.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 그건 별거 아니었다. 오지 말라고 할 거 같아 연락도 없이 갔는데, 어머니께선 나를 보고 남해 강진 이모가 건강이 안 좋아 보이니 얼굴 한 번 보고 오자고 하시더라.
다음날 경주 장인어른이랑 점심 약속이 있는데, 강진까지는 네비상 편도 3시간 30분 거리였다. 내차는 모닝이었고, 이 번 연휴에는 비가 많이 왔지만, 어머니께서 이런 마음먹기가 쉽지가 않기에 나는 바로 가자고 했다. 참고로 어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장거리 이동 자체가 힘드시다. 의료사고로 청력을 잃고 대인기피증에 우울증과 불안증이 같이 있어 어딜 나간다는 것 자체가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먼저 떠나간 형제자매들 소식에, 강진 이모도 죽기 전에 한 번 보겠다고 하시니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급하게 짐을 챙기고 애완견 해피도 데리고 출발했다. 그리 장시간 운전 끝에 도착을 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었고 나는 운전을 위해 일찍 자리에 누었다. 그러나 새벽 3시 30분 출발 전까지,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개들이 짖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그냥 일어나 커피를 털어 마시고 어머니를 깨우고, 이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다시 황간으로 출발했다. 캄캄한 어둠 속 도로 위를 뛰고 있는 고라니 새끼만 두 번을 마주했다. 비는 오고,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동이 트고 도착할 때쯤이 되니 눈이 감기려 했다.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일찍이 경험해 봤기에, 정말 힘들게 정신을 부여잡고 왔다. 오자마자 1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대구로 갔다. 비는 계속 왔다.
대구에 서둘러 간 이유는 와이프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10시까지는 가겠다는, 여하튼 이것도 할 얘기가 많은데, 일단 대구로 와서 씻고 준비해서 경주로 향했다. 운전은 와이프가 했다. 나는 조수석에서 가수면 상태로 갔다.
결혼을 해서? 발생하는 에페소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 번 연휴는 참... 여러모로 기억에 님을 것 같다.
어제 좀 일찍 자서 그런지 지금은 그나마 좀 괜찮긴 한데, 무탈히 연휴 보낸 것에 감사함을 남긴다.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중간중간 할 얘기가 많지만 쓸 힘이 없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