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인과 나

김주영

by 김주영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잠시지만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곁에 와 머물다 가는 날이다. 올해 참깨랑 작년 들깨는 이미 볶아 기름으로 짜두신 어르신들. 집안 곳곳을 청소하느라 아침부터 바쁜 요즘이다. 그 와중에 들깨밭에 앉은 새도 쫓아야 한다.


추석 때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지만 아들네에서 알아서 지내는 집들도 있다. 혼자 사는 남자 어르신은 자녀들에게 어르신 댁에서 제사 지내지 말라고 했단다. 그러면 사별한 배우자가 정말로 죽은 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안 보이면 아들이나 딸집에 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먹먹한 사연이다. 아내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난 것 같은데 그리움은 갈수록 커지나 보다.


어르신과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한 집에서 자란 사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혼까지... 70년 이상을 같이 산 세월이다. 오토바이 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맛있는 것도 해먹는 등 즐겁고 든든한 세월이었다가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사는 어르신은 정원에 꽃 피는 것만 봐도 아내가 생각난다. 같이 심고 전지했던 나무였고 꽃이 언제 피려나 얘기하던 나무였다. 그 정원에서 아내와 티격태격도 하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을 테다. 집이라는 공간 곳곳에 아내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내가 사용하던 책상도 식탁 자리로 옮기고 책꽂이들도 버렸지만 거실 책상 위에서 공부하던 아내가 여전히 그려지는 것 같다.


어르신의 아들 내외가 부모님 모시려고 큰 아파트로 옮겼지만 두 분은 안 가기로 하셨다고 한다. 어르신은 며느리 눈치 보기 싫어 홀로 지내신다. 자기 집에서는 속옷도 자유롭게 입을 수 있고 먹는 것도 자유롭다. 누구 말대로 시어머니가 같이 살자고 할 까봐 며느리들이 겁내는 요즘 세상이다. 어르신은 건강을 생각해 아침에 거미줄 떼어가며 산책도 하고 장도 보고 때가 되면 이발소에 가신다. 당뇨가 있고 치아도 안 좋아 먹는 것도 제한적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늙어간다. 소파 위에는 풍채 좋았던 두 분의 사진이 놓여있다.


나 역시 큰 아이가 중학교를 기숙사 학교로 가게 되면서 집안 식구가 다섯 명에서 네 명으로 줄었다. 내년에 둘째도 가게 되면 셋으로 줄게 된다. 지금은 그래도 시끌벅적한 편이지만 막내마저 가게 되면 집안에 들어올 때 아내랑 나만 얘기하며 들어오려나... 사실 둘이 시작한 가정이지만 둘이 잘 늙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될 순간이 다가온다.


어르신 중에 괴산 어느 산에 고려장했던 곳을 봤다는 분도 계신다. 지게를 지고 늙은 어머니를 어느 굴 속에 밥이랑 같이 넣어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내려오는 고려장. 같이 따라갔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게는 왜 놓고 가냐고 자기도 나중에 아버지 모시려면 그 지게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고려장 풍습이 없어졌다는 설이 있다.


요즘은 제 명대로 살다 죽을 수 있는 시절이다. 추석을 맞이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어감과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생각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맹꽁이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