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아카데미 1기 수료생으로 ‘국사학자 남명 학술대회'에 앉아 있었다
어제 저는 남명 아카데미 1기 수료생으로, 경상국립대 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사학자 남명 학술대회’에 참여했습니다.
교과서에 남명 조식 선생이 수록된 것을 기념해, 국사학자들이 처음으로 남명과 제자들을 ‘집중 조명’한 자리였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건 단순했습니다.
아, 이건 정말 “학술대회”구나.
발표도 토론도, 말의 결이 달랐습니다. “국사학자들의 언어”로 촘촘하게 짜여 있었고, 한 문장 한 문장이 근거 위에 세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후 시간엔 졸리기도 했습니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도 있었고, 잠깐씩 정신이 멀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졸음 사이로 불쑥불쑥 ‘지금 왜 남명인가’를 묻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남명은 종종 “당쟁 속 인물”로만 좁혀져 설명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논의는 그 프레임을 넘어, 남명을 한 시대의 윤리와 실천을 조직한 사람으로 다시 세우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건, 남명 조식 선생의 핵심이 결국 ‘경(敬)과 의(義)와 실천’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 이론이 아니라 삶.
지식을 ‘머릿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 만드는 태도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위기 앞에서 서로를 믿고 손잡는 힘이 약해졌다고 느낍니다.
갈등과 불신이 커지고, 공동체의 언어가 점점 거칠어지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의 논의가 저에게는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저는 이런 질문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만약 남명의 ‘의(義)와 실천’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을 실제로 움직였던 힘이었다면,
그 힘은 정말 “좋은 마음”만으로 생겼을까요?
아니면 구체적인 연결과 조직, 원칙과 책임이 있었을까요?
사실 저는 현장에서 이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를 들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마음속에 남겨 둡니다. 다음 자리에서, 다음 세대에게, 다음 수업에서 꺼내기 위해서요.
제가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남명의 ‘의(義)와 실천’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을 실제로 움직인 힘이었다면,
그 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요?
누가 누구를 어떻게 연결했고,
어떻게 조직이 만들어졌으며,
어떤 원칙으로 행동을 이끌었는지—
대표 사례 하나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원칙을 오늘 우리의 지역·학교·시민사회에 적용한다면,“지금 당장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제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술대회장 단체사진을 찍히는 순간,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답”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연결하는 질문일지도 모른다고요.
남명이 남긴 ‘의(義)’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였을 테니까요.
어제 저는 졸음을 참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사실 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제게는 작은 다짐이 되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분열이 아니라 연대로,
지식이 아니라 책임으로.
남명은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저는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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