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권력의 방이 ‘환대의 방’으로 바뀌는 순간
어쩌다 “옛 도지사 공관”을 둘러볼 기회가 생겨, 잠시 폼도 잡아 봤다. 유리 상 위에 비친 내 모습이 묘하게 낯설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앉아 있자니, 마치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관 안에서 내가 진짜로 만난 것은 ‘권력의 분위기’가 아니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애 예술인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공관이라는 공간은 원래 ‘거리감’의 상징에 가깝다.
문턱은 높고, 공기는 정돈되어 있고, 말투까지 단정해지는 곳.
그런데 그날 공관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전시된 작품들이 공간의 결을 바꾸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만들어낸 색과 형태가, 이곳을 “누구나 들어와도 되는 방”으로 다시 쓰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건 선명한 초록의 선인장 그림이었다.
가시는 촘촘했고, 몸통은 단단했으며, 꼭대기에는 작은 꽃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선인장을 오래 바라봤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시가 생긴다.
상처를 막기 위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세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그런데 가시가 있다는 이유로 꽃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꽃은, 가시를 견뎌낸 몸에서 더 단단하게 핀다.
선인장은 말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는 나대로 자랐다”는 한 문장 같았다.
검은 바탕 위에 붉게 번져 있던 동백(혹은 붉은 꽃) 그림 앞에서는 발걸음이 멈췄다.
꽃은 크고 선명했고, 중심의 노란빛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따뜻했다.
동백은 겨울에 핀다.
춥고, 바람 세고, 마음마저 움츠러드는 계절에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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