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숨결이 조용히 꺼지는 날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추모하며

오늘(2026년 1월 25일),

저는 한 사람의 부고를 넘어서 한 시대의 숨결이 조용히 꺼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전 교육부 장관) 별세 소식 앞에서,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슬픔이란 종종 눈물보다 먼저, 멈춤으로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제가 그 이름을 처음 또렷이 기억한 순간은 교육부 장관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제 안에 한 질문이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는 결국 제도보다 먼저, 사람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

정치의 문장을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의 얼굴과 책임의 무게라는 사실을—그는 오래도록 보여주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더 마음이 짠한 것은, 베트남 일정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라 일을 하러 떠난 길에서 마지막도 나라의 일정 속에 남은 삶이었습니다.

그 문장이 저도 모르게 가슴에 내려앉았습니다.


삶이 공적 시간에 오래 묶여 있었던 사람에게

이별마저 “공적 일정의 한 줄”로 기록되는 현실은 참 무겁습니다.

우리는 흔히 ‘정치’를 말로만 이해하지만,

정치란 결국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총량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무대에서 내려가고, 누군가는 뉴스 한 줄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남겨진 마음들은 그렇게 쉽게 요약되지 않습니다.

문득 2018년 통영에서 처음 악수를 나누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악수란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일일 뿐인데,

어떤 악수는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말은 길게 오가지 않았지만, 짧은 접촉 뒤에

“나는 지금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공적 책임이라는 것은 책상 위의 문서가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는 온도로 남는다는 것을 그때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바라고 싶습니다.

고인의 이름이 논쟁의 언어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찬반의 구호로 잘려 나가고, 진영의 재료로 재가공되지 않기를.

그분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결국,

서로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한 말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기술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사람으로 남을 길”을 남겨 두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려는 불편한 절제에서 자랍니다.

말은 언제든 칼이 될 수 있지만,

말이 품이 되는 순간에만 우리는 공동체로 남을 수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과 가까운 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에게는,

오늘의 추모를 내일의 태도로 옮길 책임이 남습니다.


말이 칼이 되지 않게, 말이 품이 되게.

기억이 추억으로 끝나지 않게, 기억이 삶의 자세가 되게 기원합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업적만이 아니라,

우리가 더 사람답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일 것입니다.


오늘, 한 시대의 이름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름 앞에서,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배웁니다.

“민주주의는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으로 남게 하는 약속이다.”

참고(사실 확인용)

오늘(2026-01-25)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국내외 주요 언론 및 발표로 보도되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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