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上善若水), 다시 물처럼

진주문고에서 만난 『도덕경(道德經)』

오늘 진주문고(晉州文庫) ‘서점친구들’ 독서모임에 앉아 있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작았는데, 제 안에서 일어난 기억은 조용히 컸습니다.

스무 살 무렵, 도서관의 책 속에서,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선생님의 강의에서 처음 노자(老子)의 문장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한 스승님 앞에서 『20대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를 꺼내 들고 물었습니다.


“청년(靑年)으로서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最善)입니까?”


그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마음 한쪽에 남아, 때때로 다시 읽히는 미완(未完)의 문장처럼요.

표지 위의 질문, 다시 나를 겨냥하다

오늘 손에 들어온 『도덕경(道德經)』의 표지는 물처럼 담백했습니다.

그리고 표지 위로, 묘하게도 오늘의 저를 정확히 겨냥한 질문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삶의 주인(主人)으로 살게 하는가?”


이 한 줄만으로도, 모임의 절반은 이미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늘 “남의 삶”을 사느라 바쁘고, 정작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은 뒤로 미뤄두기 쉬우니까요.

개념(槪念)이 아니라, 삶으로 다가온 동양철학(東洋哲學)

부산대학교(釜山大學校) 대학원 시절, 저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공자(孔子), 묵자(墨子), 한비자(韓非子) 등의 이름을 교재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는 “개념”으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오늘의 문장들은 “정리(整理)”가 아니라 “살아냄”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마음에 오래 걸려 있던 한 문장—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善)은 물(水)과 같다.

물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늘 낮은 곳으로 흐르고, 다투지 않으면서도 결국 길을 만듭니다.

무너뜨리기보다 감싸고, 밀어붙이기보다 스며듭니다.

그래서 물의 힘은 크지만, 그 힘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이 가르침을 “공부(工夫)”가 아니라 “살림”으로 느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관계(關係)를 살리고, 하루를 살리는 방식으로요.


나의 인생 나침반: 자성반성(自性反省) 성덕명심도덕경(聖德明心道德經), 그리고 ‘맑은 물과 같은 마음’

제 삶에는 오래 붙들어 온 나침반이 있습니다.

성덕도(聖德道)의 경전인 ‘자성반성(自性反省) 성덕명심도덕경(聖德明心道德經)’,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어진 마음공부의 여정(旅程)입니다.

돌아보고, 고치고, 다시 방향을 잡는 일.

그 과정에서 제 마음속에 늘 남아 있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맑은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면 나의 뜻을 이루느니라.”

오늘은 이 말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뜻을 이룬다는 것이 거창한 성공(成功)이 아니라, 마음을 흐리지 않고 살아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덕도 의례에서 합송(合誦)하는 다짐들—

용사대법(大法)을 순명(順命)하고, 미신(迷信)을 버리고, 삼강오륜(三綱五倫)과 팔선(八善)의 근본법을 실천하며, 만사(萬事)를 원의(元義)의 이치에 따라 행하고, 교화중생(敎化衆生)의 뜻을 마음에 새기는 다짐—

이 모든 문장도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사람답게 살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다움이란, 세상을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을 맑게 하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A skilled hiker leaves no track.”

책 속 사인 페이지에 끼워진 문장이 있었습니다.


“A skilled hiker leaves no track.”

능숙한 등산가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 문장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처럼요.

요란한 발자국으로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누군가의 길을 망치지 않게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傷處) 대신 조금 더 맑아진 공기만 남겨두는 사람.

오늘 저는 그 문장을 “철학(哲學)”이 아니라 “인간다움(人間다움)”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물이 물을 알아보듯, 서로를 받아주는 자리

올해 첫 비문학(非文學)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참 행복했습니다.

모임에서 나눈 말들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 “대단하지 않음”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물은 물을 알아보듯,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과장 없이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누가 정답(正答)을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여러분께 작은 질문(質問)을 남깁니다.


요즘 여러분의 마음을 맑게 해 주는 문장(文章)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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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한 줄만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그 한 줄을 오래 품고, 저는 다시 물처럼 걸어가 보겠습니다.

(좋아요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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