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은 어떻게 독(毒)이 되는가
― 자성반성의 자리에서
나는 종종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이해해 왔다.
적어도 옳은 방향에 서 있으려 애써 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독선(獨善).
혼자 옳다고 여기는 태도.
그런데 이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니
‘獨善’이 어느 순간 ‘毒善’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을 향한 의지가
관계를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깨달음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추어 섰다.
1. 지혜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남산은 북쪽에서 보면 남산이고,
남쪽에서 보면 북산이다.
산은 그대로인데,
서 있는 자리가 이름을 바꾼다.
내가 보고 있는 진실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옳다고 여기는 판단도
어쩌면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산 이름일 뿐일지 모른다.
지혜(智慧)는 많이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어느 산의 기슭에 서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그림자 안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독선을 녹이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2. 어짐은 아래에 서 보는 마음이다
‘Understand’라는 말이
‘아래에 선다’는 뜻을 품고 있다는 해석을 들은 적이 있다.
이해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자리 아래에 서 보는 일이다.
아이의 100점을
어른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자리에서 인정해 주는 마음이다.
상대가 “검다”라고 말할 때
“아니다, 희다”라고 반박하기 전에
그 사람의 안경이 어떤 색인지 먼저 헤아려 보는 태도이다.
나는 때로
상대의 독선을 비판하면서
내 독선은 보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옳은 쪽에 서 있다”는 생각이
이미 또 하나의 독선이었음을
늦게서야 인정하게 된다.
어짐(仁)은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3. 용기는 나를 향해 칼을 드는 일이다
“아심아적포기살(我心我賊捕氣殺).”
처음에는
세상의 부정을 향한 결연한 외침처럼 들렸다.
그러나 마음공부의 자리에서 이 구절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남을 향한 칼이 아니라
내 안의 도적을 향한 결단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
인정받고 싶은 마음,
무시당하기 싫은 자존심이다.
그것을 내려놓는 일은
비겁함이 아니라
가장 큰 용기일지 모른다.
남을 이기는 용기는 쉬울지라도
나를 비추어 보는 용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성반성은
언제나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4. 겸손은 먼저 나서지 않는 태도다
“불감위선(不敢爲先).”
나는 이 말이 좋다.
선을 하되, 선을 앞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먼저 나서서 옳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말할 수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절제이다.
가르치려 하기 전에 배우려는 사람이다.
판단하기 전에 잠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자리에 겸손이 있다.
독선을 버린다는 것은
나를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넓히는 일이다.
5. 자성반성은 나를 넓히는 공부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어느 산기슭에서
그 산이 세상의 전부인 듯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한 자체가 남의 일을 어찌 알고 판단하리요.”
지혜로 관점을 넓히고,
어짐으로 상대를 품고,
용기로 내 마음의 도적을 다스리며,
겸손으로 먼저 나서지 않는 삶이다.
그 길이 곧
독선이 독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길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낮아지기를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넓어지기를 배운다.
자성반성의 길 위에서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