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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없는 교육정책과 인공지능 시대의 학생부 기록

비교 교육학적 성찰

철학 없는 교육정책과 인공지능 시대의 학생부 기록 - 비교 교육학적 성찰

초록

본 연구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시행되는 학생부 세부능력특기사항(세특) 기록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인공지능(AI) 도입의 교육적 영향을 철학적, 비교 교육학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본래 전인적 성장과 상호작용을 담아내고자 했던 세특 제도는 과도한 행정 부담과 기록의 형식화로 인해 교육적 진정성을 상실하고 있다. 최근 AI 도입은 행정 효율성을 높였으나, 기록의 획일화와 의미 축소라는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본 논문은 한국 교육정책의 철학적 부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교육의 총체적 기록주의가 가져온 병리적 결과를 드러낸다.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교육철학의 방향으로 '기록에서 대화로', '총체적 기록주의에서 선택적 기록주의로', '편법적 AI 활용에서 철학적 도구화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주제어: 학생부 세특, 인공지능, 교육정책, 교육철학, 비교교육학


1. 서론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현장은 학생의 학습과 성장을 기록하기 위한 제도로 학생부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운용해 왔다. 그러나 교사의 과도한 수업 및 행정 업무는 진정성 있는 기록을 어렵게 하며, 기록의 형식화와 상징적 폭력이 현장에 만연해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이러한 업무 부담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도입되고 있으나, 그로 인해 교육의 질적 차원이 더욱 소외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철학 기반 교육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2. 본론

2.1 인공지능 도입 전후의 교육 현장 변화

AI 도입 이전, 교사는 학생의 발언과 태도를 직접 관찰하여 기록에 반영함으로써 최소한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AI가 자동 생성하는 문구는 획일화와 추상화를 동반하며, 학생 개별성은 삭제되고 있다. 이는 '속도의 효율성'이 '교육의 의미'를 대체하는 위험한 전환이다. 또한 AI 기록은 비평적 성찰 없이 표준화된 평가를 강화함으로써 교육적 상상력을 억압한다.


2.2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중심 전형 비교

학생부종합전형은 전인적 평가를 지향했으나, 실상은 교사의 기록 노동과 사교육의 포장 경쟁으로 왜곡되었다. 반면 수능 중심 전형은 비교적 공정성을 확보했지만, 학생의 서사와 개별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두 제도 모두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라는 철학적 기준 없이 기능주의적 논리에 따라 기획되었다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2.3 해외 사례의 비교교육학적 시사점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전면적 기록주의 대신 포트폴리오, 핵심 과목 중심 평가, 교사 추천서 등을 통해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입체적으로 판단한다. 이들 국가는 기록보다 '평가의 철학'을 중시하며,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유례없는 기록의 양과 형식을 강제하며, 평가의 주체가 아닌 기계화된 데이터 생산자로서의 교사를 전제한다. 이는 행정 효율성의 극대화와 교육의 의미 상실이라는 모순을 초래한다.


3. 대안적 방향: 철학 기반 교육정책의 제안

AI 시대의 교육정책은 기술 수용 여부가 아닌, 기술을 이끄는 철학의 유무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1) 기록에서 대화로

교육 기록을 결과 중심의 산출물이 아닌 교사-학생 간 성찰적 대화의 연장선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기록을 평가가 아닌 배움의 일부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2) 총체적 기록주의에서 선택적 기록주의로

모든 과목 기록을 의무화하는 대신, 핵심 역량과 의미 있는 활동 중심의 선별 기록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의 주체성이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


3) AI의 철학적 도구화

AI를 단순한 업무 경감 수단이 아닌, 교사-학생 상호작용을 심화하는 철학적 도구로 재정의한다. 이를 통해 AI는 교육의 목적에 봉사하는 보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4. 결론

한국 교육정책은 오랫동안 기술과 제도 중심의 효율성 논리에 매몰되어 철학적 성찰을 결여해 왔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러한 결핍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며,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되살린다. 본 연구는 교육정책이 인간에 대한 철학적 합의를 기반으로 기획되어야 하며, AI조차 그러한 철학적 기획 안에서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철학 없는 교육은 기술의 수단이 될 뿐이며, 철학 있는 교육만이 기술을 교육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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