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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예술 Oct 23. 2023

당신의 실패는 숭고했으니

「빌리 엘리어트」 , 2000

커튼콜


포스터

「빌리 엘리어트」 , 2000

스티븐 돌드리 감독 / 제이미 벨, 게리 루이스 주연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후보작이자 영국 발레리노 필립 모슬리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입니다.


  아마 다들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여준 기억이 한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데요. 청소년 시절에는 꿈을 잃지 않는 빌리의 순수함만이 보였지만, 나이를 먹고 생각이 뻗어나갈수록 다른 부분들에 감동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그 무대 뒤편에서 다루어진 시대적 배경과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가 더욱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명작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낙후되어 삭아가는 마을의 전경과 그 속에서 뛰어오르는 백조와, 그 아래를 묵묵히 받치고 있던 연못처럼 말이죠.





I

줄거리



  영국의 한 마을. 아버지와 형과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소년, 빌리는 파업 시위 중인 광부 아버지 재키형 토니의 밑에서 투박하게 자라온 남자아이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인 데다가, 아버지는 파업으로 인한 궁핍함과 막막함에 휘둘려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하는 등 딱딱한 가정에서 자라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오히려 수다스럽지 못하게 자라는 소년이기도 한데요.


저도 해보고 싶어요

  마초적인 성격의 아버지의 명령대로 빌리는 '남자다운 스포츠'인 복싱을 배우러 다니지만, 어느 날 같은 체육관에서 진행되던 발레 레슨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흥미에 자신의 열정을 빼앗겨 버립니다.


  결국 빌리는 아버지 몰래 발레 강사인 윌킨슨에게 수업을 듣고, 서투른 소년의 재능을 알아챈 그녀는 점차 사제로서 빌리와 가까워지며 빌리를 로열 발레 스쿨에 진학시키기로 마음을 먹게 되죠.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우아한 동작을 취하는 발레에 대한 선입견, 값비싼 발레 스쿨 학비, 때문에 재키에게 있어서 한 치 앞도 깜깜한 자신이 더 짊어져야 할 가장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재키는 이러한 이유들로 빌리의 꿈을 용인하지 못합니다. 삶과 사회의 냉정함을 일찍이, 아직도 뼈저리게 느끼는 그에게 있어서 언제든 바스러질 수 있는 치기 어림으로 보였겠지요.


  시간 낭비가 아님을 보장할 수 없는 출사표. 당장 네 명의 식구를 먹여 살릴 돈도 급한데, 수입도 불분명한 예술이라는 분야에 아들을 던지는 것에 두려움 내지는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했을 테니.


나중에는 성공하긴 합니다

  그러나 재키는 빌리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신의 실패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어제까지 함께 연대했던 노동조합 동료들을 등지고 파업을 포기한 채 '배신자'라는 모욕을 들으며 탄광으로 향하죠.


  이러한 아버지의 희생에 힘입어 빌리는 우여곡절을 거쳐 끝내 발레 스쿨에 입학시험에 합격합니다. 후에 로열 발레단이 되어 아버지가 있는 관객석 앞에서 우아하게 동작을 펼치는 빌리 엘리어트.





II

철의 여인, 혹은 마녀

・ 영화의 배경


  당시 영국 대부분의 산업은 국유화된 채로 비효율성의 끝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경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악화되어 가는 마당에 노동조합과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동당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총선 결과 보수당에게 패배하게 되었고,


  오늘날 영국 보수당의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한, 역사상 최초로 여성 수상인 마거릿 대처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국가 산업이 직면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파격적인 개혁을 진행하며 정책을 펼쳐나갔고, 신 자원의 개발과 발전으로 입지를 잃어가던 석탄 산업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죠.


시위하는 노동자들

  결국 '석탄 산업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행해지게 됩니다. 수많은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고, 너나 할 것 없이 파업에 동참하여 고통스러운 싸움을 시작하게 돼요.


  작 중에선 빌리의 가족인 토니과 재키가 이러한 배경을 담고 있으며 그들 역시 파업에 동참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III

숭고한 실패

・ 「빌리 엘리어트」의 서브 텍스트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한 소년의 꿈을 방해하는 현실, 그러나 그 모든 핍박을 이겨내고 꿈을 현실로 만든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작품의 톤과 연출은 꽤나 드라이합니다. 다른 곳에 조명을 조금 더 비추고 있다는 뜻으로 보아도 되겠지요.


  작품을 잘 살펴보면 축약된 줄거리 말고도 윌킨슨이나 빌리의 친구들, 토니와 재키의 서사 역시 촘촘하게 서브플롯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드라이함' 때문에 빌리의 극적인 성공보다는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던 이들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하죠.


윌킨슨 선생과 빌리

  이 영화의 강력한 서브 텍스트이자 상징적인 주제는 후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숭고한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줄거리에 나와있듯 재키는 막내아들 빌리의 꿈을 선뜻 용인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그의 성격 탓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당장 먹고살기 급하고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입장(기성세대) 속 빌리의 도전(후대의 미래)은 너무나도 불확실할 뿐이니까요.


깜깜한 탄광처럼 어둠을 헤매다 진정 빛나는 것들은 구경도 못한 채 살아갈 것만 같은.


  「빌리 엘리어트」 가 이러한 서브텍스트로 찬사를 받는 이유는 우리가 진정 감동과 벅참을 느끼는 시퀀스가 '빌리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빌리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어제까지만 해도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던 배신자(가난에 못 이겨 파업을 포기하고 출근하는 광부들) 무리에 합류해 묵묵히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책임감을 짊어 일어서는 재키의 변화에 더욱 동요하곤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진정한 화해를 하는 부자

  재키는 한눈에 봐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입니다. 빌리에게 남자다운 복싱이나 축구를 강요하고, 그것이 자신이 빌리에게 베푸는 사랑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이는데요.


  화법이나 사고방식 역시 융통성 없고 꽉 막혀 있으며, 토니만큼은 아니지만 언행이 다소 거칠기도 합니다. 막내아들인 빌리 역시 이런 아버지의 특성을 어렸을 때부터 피부로 학습했는지 그의 성질을 긁지 않기 위해 발레를 배운다는 사실을 연신 회피하고 숨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윌킨슨이라는 자신을 보호하고 변호해 줄 든든한 아군이 있음에도 그녀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꽤나 꺼려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 아버지를 몰라서 그래요!


  이 대사는 어쩌면 자신조차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함을 시인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우리라는 대명사에 빌리도 들어갈 줄이야.


  그렇다면 재키는 악인인가요? 작품 속에서는 한 때 빌리의 대적자로 기능하지만 결국엔 빌리를 지지하고 도와줬으니 조력자인가요? 그만큼 재키의 캐릭터성과 캐릭터가 표방하는 무언가는 모호합니다.


  그는 분명 가부장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광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을 사랑하지만 육아에 너무나도 서툰 아버지기도 하고요.


우리 빌리를 위해서야! 걔는 망할 천재일 수도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빌리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거잖아.



'배신자' 편에 선 자신을 뜯어말리는 토니에게 재키가 일갈한다


    재키는 빌리라는 다음 세대를 구제해 내기 위한 이전 세대를 나타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한 때 투쟁했던 노동자들의 비루한 모습만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까지 아울러 나타내기에.


  그 과정에서 연출되는 장면들은 재키의 희생이 꽤나 담담하다 못해 냉정하기까지 하며, 실제 역사 속에서 어째서 노동조합의 파업이 실패로 돌아갔는지에 대해 은연중에 암시하기도 하죠.


그 추측 끝에서 우리는 실패의 요인이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지 않았나요.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광부로 살아온 재키의 입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막중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재키가 가장이자 남성으로서 제일 추구했던 가치는 아마 강인함이었을 테니.


  빌리에게도 강인함을 강조하는 듯한 언행과 결국 모든 비난을 다시 되받으면서도 아들을 위해 굴하지 않는 모습 역시 자신이 세운 첫 번째 가치인 강인함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요.


  피아노를 부수는 장면에서 ‘죽은 아내는 이제 잊어야 하는데.’라는 듯한 감정선과 전당포에 아내의 귀금속을 맡길 때의 ‘이제는 잊어버리자.’라는 감정선의 대비는 재키의 변화를 잘 나타내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죽은 아내의 귀금속만은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그였지만, 죽어서 사라진 과거의 유산으로 살아 숨 쉬며 나아갈 미래에 보태는 용기 역시 재키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또 살아온 삶을 어떻게 뒤집어내는지 다시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렇게 제 몸 희생해 미래를 받쳐주며 노파심에 건넨 질문, 빌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https://youtu.be/VSOfDu7dE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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