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티 보이즈」, 2008
야, 뭐 여긴 달달한 거 없냐?
여긴 왜 이렇게 퍽퍽하냐?
위는 작 중 재현의 대사이자 영화 속에서 거짓말과 배신, 확인과 집착 모두에게 둘러싸인 '사랑'을 관통하는 한 마디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감독이자 현실밀착형 연출이 강점인 윤종빈 감독의 작품, 「비스티 보이즈」입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화려하다!"라는 문구답게 손님 접대를 위한 자기 관리, 준비된 럭셔리함과 고급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호스트 업계를 소재로 한 작품이죠.
그러나 실상은 돈도 책임감도 인간성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말빨과 능청이 전부인 호스트바의 큰형, 재현과 잘생긴 외모로 호스트바의 에이스일 뿐, 아직 그 바닥의 원리와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승우의 이야기를 다룬, 씁쓸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다시 보면, 개봉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빛나는 서울의 밤거리가 생각납니다. 어딘가 향락적이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더 오래 있을 수 없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곳.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뒤편에는 그늘진 곳이 언제나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재현은 호스트바의 맏형, 리더 격의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틈 없이 능청스럽고 처세술이 좋으며 미꾸라지처럼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 언제나 '느낌 있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낭만까지.
다르게 말하면 남 등쳐먹기 참 좋은 조건들입니다. 친구인 창우에게 5천만 원이란 거금을 빌렸음에도 착실히 돈을 모아 갚기보단 호구 하나 제대로 물어서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일명 공사 치기에 더 열을 올리는 캐릭터로 볼 수 있습니다.
재현과 동거하는 한별의 동생이자 재현과는 친한 형동생 사이인 승우 역시 호스트로 일합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덕분에 가게의 에이스로도 활동하며 나름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셈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승우는 우연히 친구들과 손님으로 온 지원을 마주하게 되고, 점점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간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과 다를 바 없는 만남이었음에도, 심지어 지원이 동종업계 사람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만은 다를 것이라며 자신을 억지로 달래기 시작합니다.
배신과 거짓말, 사기꾼들이 판치는 이 바닥 사정을 알고 있는 재현이 지원의 속내를 우려했음에도 승우는 지원과의 미래를 계속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데,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을 내가 모르겠어?
내가 그간 술을 따라주며 마주한 눈들 중에,
이번은 다르다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아닐 거야.
칫솔이 왜 이렇게 많아.. (울먹이며)
그러나 재현이 경고한 대로 승우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스킨십을 하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곤 애칭을 붙여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찰이 잦아지며 지원이 정말 자신을 상대로 공사를 치려는 게 아니라는 믿음 역시 흔들리기 시작하죠. 오히려 자신이 그러한 밤 문화에 속해 있기에 그녀만은 '깨끗한' 여자이길 바랐던 이중적인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는 막연한 자의식을 가진 채로. 결국 그러한 승우의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변질되어 그 누구도 이해해 줄 수 없는 사랑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한편 재현은 한별을 차버리고 빚 탕감을 위해 공사를 친 여자와 붙어먹습니다. 그러나 빈 수레가 요란하기 마련. 빚을 갚아줄 유일한 수단이자 자신의 실체를 알아버린 여자에게 퇴짜를 맞게 된 재현.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애절한 사랑고백을.. 하지는 않고 그녀를 폭행하며 자신의 답답한 상황에 대해 분개합니다.
그럼에도 사랑이란 게 알다가도 모를 것이니, 마지막 동아줄인 한별을 찾아온 재현. 한별은 자신을 배신한 재현이 다시 돌아와 능글맞게 굴기도 하고, 불쌍한 척을 하며 설설 기자 그렇게 당해놓고는 또다시 그를 믿어버립니다.
승우는 이를 눈치채고 자신의 누나인 한별에게 절대 재현에게 돈 해주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지만, 달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랑인데 어쩔 수 있을까요.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한별을 등 처먹을 생각만 하는 이 답 없는 재현을, 어쩔 수 있을까요.
한편 승우와 지원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승우의 집착에 질린 지원이 결별을 선언하자 승우는 그녀의 가게로 찾아가는데요.
소동을 일으키고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오히려 지원에게 큰 모욕을 당하게 되자 승우의 자존심은 물론이고 삐뚤어진 그의 사랑 역시 짓눌려 벼랑 끝에 내몰립니다.
하지만 승우의 집착은 끝날 줄 모르고, 급기야는 무언가 애원과 살의에 찬 표정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게 되며 두 사람의 운명은 최종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 한별이 건넨 오천만 원을 갖고 창우도 무시한 채 들고 날라버린 재현은 일본으로 도망치듯 건너와 여전히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본어는 서툴지만 여전히 '느낌 있게' 산다는 곤조는 지키고 사는 재현. 이내 자신들의 서비스를 돈 주고 팔듯 퍽퍽한 꼬치를 돈 주고 사 먹으며 다시금 이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를 말합니다.
여긴 왜 이렇게 퍽퍽하냐?
「비스티 보이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각자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호구처럼 무조건 재현을 보듬는 하는 한별과 사랑 자체를 수단으로 여기는 재현.
자신의 열등감과 집착마저 표백해 버릴 사랑을 추구하는 승우와 사랑이라지만 사실 가게 손님을 대하듯 승우를 대하던 지원. 이들은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다를 것입니다.
그들은 돈에 허덕이며 닿으래야 닿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이상을 꿈꿉니다. 끓어오르는 욕망과 열정의 타깃이자 가장 쉬운 해소 대상이었던 사랑.
그러나 음지의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수많은 돈을 써서 고작 남이 따라주는 술, 귀에 속삭여주는 달콤한 말을 사는 허무한 행위를 하듯, 자신들의 욕망과 열정을 팔아 어떤 것도 얻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죠.
공사를 부정할 때도, 공사를 인정할 때도, 공사를 시작할 때도, 공사를 끝낼 때도 사랑이란 구실을 대지만 결국 그들은 서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굶주린 짐승일 뿐입니다. 느낌 있게 사는 걸 추구하는, 갈기가 조금 윤택한 늑대 정도.
영화가 나올 당시보다 지금은 오히려 취업은 어려워졌고, 경제는 기울었으며, 청년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한탕주의에 기대곤 합니다.
그 속에서 사랑과 같은 당연한 감정을 만끽하고 싶으면서도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쉴 사람들. 아마 요즘에 나온 영화였다면 조금 더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달달한 것을 쫒았지만, 결국 퍽퍽한 삶 속에 처한 이들. 호스트계의 처절한 현실과 사춘기 때의 설레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제목대로 저급한 녀석들의 사랑을 잘 그려낸 영화.「비스티 보이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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