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골든 트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예술 Jun 05. 2024

양홍원이 말아주는 '죄의식'

「SLOWMO」, 2024

GOSLOW

모든 것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SLOWMO」, 2024

・ 양홍원 MIXTAPE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래퍼 양홍원의 신작, 「SLOWMO」가 최근 발매되었습니다. 무수한 발매 연기와 연기를 거듭한 끝에 세상에 등장한 그의 신보는 벌써부터 차트인에 성공하는 등 꾸준한 우상향을 하는 중인데요.


  비록 앨범 전체적으로 깔린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와 거진 3년간의 기다림을 무마하기엔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의 기존 강점인 탄탄한 실력과 전작 「오보에」에서 크게 호평받은 시적인 가사는 이번작에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또 새롭게 시도한 부분으로는 비교적 국내에서 낯선 장르인 아프로비트 / 뭄바톤 스타일을 양홍원 특유의 한국적 세기말 감성으로 구현해 내었는데요. 특히나 기민한 우울감의 근원인 그의 죄의식이 작업물들의 매력을 항상 끌어올려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뽕짝 같다', '어색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SLOWMO」를 좋게 들은 사람으로서 본 작품에 여실히 묻어나는 아티스트 양홍원의 감정, 특히 그가 느낀 죄의식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TRACKLIST

1. 24YB (Intro)
2. ENGLAND
3. JEALOUSYVALHALLA
4. 색깔별로 하얀걸로 (Feat. KOVV)
5. SAHARA
6. 근데
7. PALISADE
8. GOSLOW






I

나를 쫓아오는 그것



죄를 지었지만 벌을 피한 적 없지 밤마다
 - 「ENGLAND」


  팬이든, 아니든 간에 그의 시끌벅적한 삶은 이미 꽤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차례 논란이 터지며 뉴스 기사에 이리저리 쓰인 '영비'의 언행 때문이었는데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본명인 '양홍원'으로 활동명을 바꾼 뒤 그의 음악들엔 후회와 자책, 우울감이 주된 정서가 되었습니다.


내 랩은 논란까지 덮어 _ 「범퍼카 (2018)」
무너진 날이 더 많았는데, 이모가 날 봐야 되는데 _ 「GOSLOW (2024)」

그의 정서 변화를 알 수 있는 부분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 역시 몽환적이거나 우울감, 퇴폐적인 분위기를 띄는 비트가 주를 이룹니다. 점차 멈블랩을 자신의 발음 체계로 다듬어 구현하는 특유의 랩 스타일 역시 비트와 잘 묻어났다고 보는데요.


  인간 '양홍원'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는 사실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으레 그렇듯 죄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올 때 우리는 보통 후회합니다.


  아티스트 양홍원의 자책 역시 비슷한 색깔을 갖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말한 가정사와 '내가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는 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그의 회고처럼,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몰고 온 파장이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지쳐서 주저앉거나, 쾌락에 취해버리길 선택합니다.


양홍원

  또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키워드로는 '소년'과 '어른'이 있는데요. 힙합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견지해야 하는 패기, 도전욕구와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진 어른으로서의 짐이 복합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역시 마초적이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그의 모습과 역설적으로 모든 것의 무의미함, 또 진정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다른 모습이 본 앨범에도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번 트랙인  「24YB (Intro)」나 3번 트랙인 「JEALOUSYVALHALLA」등 화자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비되는 래퍼 양홍원의 업적을 나열합니다.


24YB

올려줬지 두 명 월급, 천만 원으로 노는 X신들
9억짜리 집을 샀어


JEALOUSYVALHALLA

아이를 가질 때쯤 회사를 세우겠어


  또 동시에 4번 트랙 「색깔별로 하얀걸로」에선 술과 약을 뜻하는 제목처럼 무의미함에서 도피해 쾌락에 빠진 스스로를 보여주며 그의 연인과 이어온 복잡한 관계 역시 푸념합니다.


색깔별로 하얀걸로

How to love, 난 몰라 그런 법은
약처럼 색깔별로 악마처럼 하얀걸로, 약처럼 괜찮아져 악마처럼 안아줘 너를
 = 약과 술에 취해 고통을 주다가도, '괜찮아졌다'는 핑계로 그녀를 붙잡는 악마 같은 자신


  또 자신의 방탕함 때문에 멀어지고 가까워지길 반복하지만 결코 사라져 주지 않는 연인을 위한 곡들 // 「SAHARA」, 「PALISADE」 // 역시 들어볼 수 있는데요.


SAHARA

넌 마치 나를 아는 듯 해 그 눈빛이 기억과 같은데
Destiny? Stop
 = 고통을 잊기 위해 거쳐간 하룻밤의 여성들, 연예인이라는 운명으로 반복되는 불편함
내성 결국엔 생겨
늘려 흘러
 = 방탕하게 취해 사는 삶


PALISADE

여자친구는 바뀐 적 없지
후각에는 너무 많은 향기 지나쳤지만
 = 많은 이성들과의 짧은 교류를 수많은 향수(후각)에 빗댄 표현


근데

그만 쳐다보고 술이나 주겠니
부담스러워서 그래


  이토록 그의 음악들엔 솔직함이 무기인 회고가 짙게 담겨있습니다. 분명 통통 튀는 클럽 사운드 같지만 가사와 비트를 듣고 있자면 어딘가 시끄러운 곳에서 혼자만 웃고 있지 않는 모습이 생각나는데요.


  도피성 쾌락에 젖어있다 모든 게 끝나고 고요한 새벽이면 썼을 가사들엔 이러한 죄의식이 담겨있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망치고 숨어들며 우울해하는 밤이면 도망쳐서 달려온 발의 물집이 내 후회를 더 아프게 만들고요.






II

나란히 천천히



선공개곡이었던 「JEALOUSYVALHALLA」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곧 시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고착화된 고속은 시간이 지나 그 속도감마저 무뎌지게 만들고 놓치는 것만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되기도 하죠. 라디오헤드의 「Tourist」처럼 진정한 휴식과 성장을 도피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마주하는 것에서 찾아낸 깨달음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이미 과거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트랙은 그가 발매 전에 개사를 한 듯 싶은데요.


GOSLOW

매일 밤을 괴로워야 했어
눈 아래 소나기 Silhouette
Money make it rains

 = 매일 밤의 괴로움, 눈물을 '소나기 실루엣'으로 은유/ 돈을 번다는 속어인 'Make it rain'과 앞서 나온 눈물에 대한 가사를 이중적으로 활용해 돈은 벌었지만 눈물은 더 흘렸다는 것을 표현 
천천히 걸어가 지예처럼
무너진 날이 더 많았는데
이모가 날 봐야 되는데

 = 양홍원은 과거 자신의 여동생이 투신을 해 다리를 다친 것을 밝힌 적 있다. 다친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나아가려는 여동생의 의지를 따라가겠다는 의미 / 이젠 자신의 이런 모습을 봐줄 수 없는 주변인에 대한 그리움


나란히 천천히

  언제나 예술가들에게는 본인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자아를 보존하고 싶은 욕구가 공존합니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존재 뒤에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했던 유약한 자아가 뒤처지고는 합니다.


  마지막 트랙까지 듣고 난 후 든 생각은 화자가 자신의 삶이 제목대로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는 듯했습니다. 발에 피가 나도록 도망치던 지난날의 뉘우침과 후회는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음을 인정하죠.


  또 동시에 그것조차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며 차라리 후회와 과거를 안고 조금 천천히 가보고자 합니다. 무의미와 불필요를 구분하지 못하던 소년의 질주는 성장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느린 BPM의 비트와 박자를 더 세밀히 쪼개는 랩. 할리 데이비슨을 시티플러스로 바꿔버리듯 이국적인 장르를 자신의 감정선을 담아 몽환적인 한국의 밤거리로 프로듀싱한 「SLOWMO」였습니다.



구독, 좋아요, 댓글은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뭐 어쩌라고, 어쩌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