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골든 트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예술 Aug 04. 2024

알리바이 없던 여자 이야기

「Undercover Angel」, ★★★★

Intro


  「빨간 구두」라는 구전 동화를 아시나요? 이 잔혹한 동화는 한 소녀가 새빨간 구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끔찍한 저주를 받아 자신의 두 다리까지 자르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by Kay Nielsen

  덴마크 설화를 바탕으로 안데르센이 정리한  「빨간 구두」는 화려한 겉모습만을 좇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금기를 범하면 벌을 받게 된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죠.


  동화 속 소녀와 닮아있는 한 아티스트는 신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을 갖고 오게 됩니다. 동화 속 내용처럼 마치 금기를 깨뜨린 것처럼 칼을 든 천사들이 나타나 경고하고 저주를 퍼부으며 그녀의 두 다리를 자르려는 와중에도 말입니다.


  동화 속에선 결국 소녀를 가엾게 여긴 천사가 천국에 데려가주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언제 봤다고, 얼마나 잘 안다고 나를 저주해. 다 X까 내가 뒈지나 보자.




예쁜아, 도망쳐

담배자국과 재가 가득한 천사

*모든 것은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Undercover Angel」, 2020

・ Swervy 정규 1집


꿈속에서 난 수백 번 동안
성공과 밀애를 저질러 버리고


  독보적인 음악성과 유니크한 스타일, 대한민국의 래퍼 Swervy(이하 스월비)의 정규 1집  「Undercover Angel」 입니다.


  함축적인 가사와 음악적 장치, 중저음인 듯 카랑카랑한 톤이 강점인 스월비는 핫 루키로 데뷔해 당시 최고의 힙합 레이블 중 하나인 ‘하이라이트’에 일찍이 합류하면서 씬에서의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이후 출연한 TV 프로그램의 여파와 다른 래퍼와의 불화설, 사생활 논란 등으로 그녀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았습니다.


  SNS에선 비판과 조롱이 쏟아지며 스월비는 커리어 첫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듬해 정규 1집을 발매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대음 수상을 받는 등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죠.


  「Undercover Angel」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알리바이 없던 소녀‘로 표현합니다. 또 같은 인간임에도 심판자인 양 자신을 헐뜯고 저주하는, 자신의 사지를 자르려 하는 여론을 천사에 빗대어 언더커버 엔젤(위장 천사)을 대면해 왔던 지난 암흑기를 낱낱이 고백하고자 합니다.


TRACKLIST (APPLE MUSIC 기준)

1. Alibi
2. Did it Like I Did
3. 천수경 (Skit)
4. Mama Lisa
5. 왜 이래 (feat. Paloalto)
6. Trapped in the Drum (feat. JUSTHIS)
7. Funs & Money
8. GOMP
9. YAYA2 (feat. SUI)
10. 파랑 (feat. 캡틴락)
11. Did it Like I Did (Remix)


전곡 듣기




I

빨간 구두

베스트 트랙, 「Alibi」



천사는 내가 싫어하는 뒷번호
신발이 나를 신고 나를 갖고 도망쳐
  「Alibi」


  앨범의 타이틀이자 1번 트랙인 ‘Alibi’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녀의 암흑기를 짧게 요약합니다. 화자는 칼을 쥐고 택시에 오른 한 여고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칼을 숨긴 채 택시를 탔었고
몇 차례 신호를 못 본채로 차는 달렸고
기사 아저씨 여긴 빠른 지름길인가요
나는 알리바이 없는 여고생이었어


  ‘알리바이’는 현장부재증명이라고도 합니다. 보통 용의자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내세우는 증거인데요. 다만 알리바이가 없다고 해서 유죄인 것은 아닙니다. 어느새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처럼요.


  언제나 논란의 주제로 거론되고 없어져야 할 엄연한 범죄인 악플. 국가를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유명인을 향한 악인들의 무분별한 공격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것이 유명인의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Pixabay

  스월비는 자신의 처지를 ‘알리바이 없는 여고생’으로 표현합니다. 아직 미성숙한 자아는 알리바이 따위 있을 리 없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을 마주합니다. DM 속 욕설들과 모르는 번호로 울리는 전화.


  하늘에서 내려온 심판자처럼 구는 사람들을 향해 ‘천사는 내가 싫어하는 뒷번호’, 그리고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하는 논란을 겪어 저주를 받게 된 스스로를 ’신발이 나를 갖고 도망쳐‘ 라고 자조하죠.


  알리바이 없는 소녀가 맞서는 것은 어리석기에 화자는 자신의 과거에게 조언하듯 ‘Shawty Better run, run, run…(예쁜아, 도망치는 게 나을걸)’라고 후렴을 읊조립니다.


왜 이래 MV

  1번 트랙 ‘Alibi’는 스카이민혁의 ‘14-23’처럼 자신의 패를 모두 내려놓고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달리는 자동차(문 여닫는 소리, 깜빡이 소리, 창문 소리 등)의 소음으로 비트를 구성한 점이나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듯 뒤로 갈수록 힙합풍의 사운드가 추가되는 점들도 청각적으로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Intro에서 말했듯 그녀의 서사는 동화 ’빨간 구두‘와 닮아있지만 그 결말은 조금 다른데요. 저주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다리를 자른 소녀가 천사에게 용서받고 구원받는 원작과 다르게 스월비는 자신을 해하려던 위장 천사들을 뿌리치고 ’X까‘라며 이를 악물고 다리가 잘린 채 보란 듯이 살겠다고 침을 뱉습니다.  





II

언더커버 엔젤



  스월비는 2번 트랙 ‘Did it Like I Did’를 시작으로 자신의 태도를 말 그대로 뱉어내기 시작합니다.


  실제 그녀의 어머니가 기도하는 소리를 담은 ’천수경 (Skit)’ 에서는 불경 소리와 매치시킨 악기 사운드로 음산한 느낌을 극대화시키며 바로 다음 트랙이자 또 다른 타이틀인 ‘Mama Lisa’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에 답장을 합니다. 


사랑은 왼 손목에
사친 오른 손목에
「Did it Like I Did」
우리 엄만 말해, 나를 보고
뺨을 한 대 맞음 목을 뽑고 와
반대쪽을 대야 할 건 너고
용서 따윈 없지, 아냐 여호와
「Mama Lisa」,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비튼다


  여러 종교적인 메타포가 있지만, 스월비는 의도적으로 종교에서 인용한 요소들을 비꼬며 자신의 반골 태도를 강조합니다. 그녀 역시 위장 천사에 포함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죠.


  하늘을 날고 싶어 날개를 만들었지만 태양빛에 추락한 신화 속 이카루스를 은유하는 등 앨범의 제목처럼 ‘나도 천사는 못 해 먹겠다 ‘는 반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래

  이어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싫증을 표현한 5번 트랙 ‘왜 이래’, 세상의 인식에 갇힌 자신을 묘사한 ’Trapped in the Drum’ 이 이어지며 특유의 톤과 함께 숨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악기 사운드가 이어지는데요.


너무 뜨겁다 보면 타는 거지, 뭐
그걸 못 배운 건 니 운명
「왜 이래」
사랑에 미친 성과 난 미치면 너를 못 봐
「Trapped in the Drum」


  사운드 요소와 스월비의 랩을 의도적으로 대칭시키거나 앞 트랙에서 사용된 요소가 메인 멜로디로 다시 쓰이는 등 프로듀싱이 빛난 구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특히 유튜브에 공개된 ‘왜 이래’의 MV는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놀릴지언정 그들이 떠나는 것은 원치 않는, 모순된 감정이 잘 드러나며 왜 이러냐는 듯한 제목과 겹쳐진 좋은 트랙이기도 합니다.


Did it Like I Did Remix

  뒤이어 ’Funs & Money‘ 와 ’GOMP’에서는 실험적인 사운드를 사용하며 다른 힙합 아티스트와는 조금 결이 다른 야망을 내비치며 숨을 조입니다.


나 원하는 건 그냥 이 지폐
내 성패는 달렸지, 내 입에
「GOMP」
내 눈은 빛나니까
구겨져 너희들 미간
「Funs & Money」


  동요 ‘작은별‘을 샘플링한 ‘YAYA2’와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캡틴락이 참여한 ’파랑‘ 역시 앨범의 종막을 장식하는 트랙들로서 상처받아 공격적이었던 스탠스를 조금 덜어내고 상처가 아물고 버텨낼 것임을 노래합니다.


  여러 리스너가 평하듯 바로 앞 트랙인 ‘GOMP’와의 분위기 낙차가 커서 몰입을 깨는 아쉬움, 또 피처링으로 참여한 프로듀서 수이의 벌스 역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지만


  클래식 한국 락이 생각나는 듯한 사운드를 넣어 아련하고 희망적인 감상으로 마무리하며 마지막에는 'Did it Like I Did'의 리믹스 버전과 함께 고명을 얹어 러닝타임을 채웁니다.


난 말이야 울 수가 없다니까
왜냐면 내 눈은 빛나니까
 「파랑」





III

총평


예술가의 알리바이는 작품뿐



  이전에 포스팅한 스카이민혁, 양홍원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논란의 경중을 떠나 세상을 등지게 된 예술가들은 작품으로 갚아야 할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결국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들은 그 속에서 상처받은 유약함과 버티려는 악바리가 공존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의 고통은 그 자체로 알리바이가 되는데요.


  스월비는 자신을 심판하려는 사람들을 언더커버 엔젤로 규정하고, 또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기준에 맞춰 천사가 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으로 갚아나가는 수단으로써, 신인으로서 스월비의 「Undercover Angel」은 제대로 된 앙갚음이자 화려한 새 출발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좋아요, 구독, 댓글은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양홍원이 말아주는 '죄의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