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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예술 Feb 24. 2024

마침내 사랑해요

「헤어질 결심」 , 2022

안개에서 태어나 파도에 휩쓸려간 내 사랑이여.


Decision to Leave

「헤어질 결심」, 2022

・ 박찬욱 감독 / 탕웨이, 박해일 외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박찬욱 감독의 장편 복귀작이자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입니다. 개인적인 팬심으로, 객관적인 작품성으로도 다회차 관람을 즐기기에 완벽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력계 형사 장해준과 의문의 여성 송서래의 사랑. 작품은 무려 치정(!) 소재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표현하고자 합니다. 여러모로 매체 리뷰에서 봤던 "박찬욱식 멜로영화"라는 한 마디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치정극 특성상 소재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 배덕감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헤어질 결심」은 미워할 수가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세하게 쌓인 복선과 관객과의 거리를 극한으로 좁히는 파격적인 연출,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대사 없이 관객에게 작품이 가진 사랑관觀을 입체적으로 납득시키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한다라고 표현된 것처럼 사람들은 사랑을 구실로 끔찍한 일을 벌이거나,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도 합니다.


  작품은 단순히 ”이런 사랑을 해야 한다 “라는 조언보다는 “이렇게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 듯합니다. 포기와 기록과 잠수. 사랑을 끝내는 것들로 사랑을 말해본 적이 있을까요.

  


*「헤어질 결심」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합니다.


시놉시스

강력계 형사 해준은 어느 날 중년 남성이 추락사한 사건을 만난다.
자살? 타살? 아직은 확실치 않은 사건의 전말.
그러나 남편의 죽음에도 무덤덤해 보이는 송서래를 보며
해준은 그녀를 용의 선상에 올리게 된다.

당신은 용의자, 난 경찰.
어차피 떼려야 뗄 수 없는 둘.
끝없이 의심하고자 하지만,
그것 역시 그녀를 궁금해하는 관심.



https://www.netflix.com/search?q=헤어질%20결심&jbv=81646755





I

줄거리



칼을 든 용의자(이지구)를 제압하는 해준

  장해준(박해일 )은 지적이고 명망 있는 경찰입니다. 팀장 급의 연차가 되었음에도 게을리하지 않는 사격 연습, 직접 발로 뛰며 수사하는 사명감 등 책임감 있게 사건을 해결하는 참형사.


  동시에 중후한 외모와 깔끔한 수트, 어디서든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멋진 남성이기도 합니다.


  조직 내에서도 큰 굴곡 없이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해준을 닮아 살갑고 착실히 삶을 사는 아내와 소중한 아들도 있죠.



・ 구소산 추락사 사건

  중년 남성이 산 정상에서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암벽 등반을 즐겼고, 카메라로 스스로를 촬영하며 영상 시청자에게 등산 코스를 가이드할 만큼 베테랑인 사람이 추락사라. 자살? 혹은 누군가 떠밀었나?


프로 등반가인 기도수

  남성의 이름은 기도수(유승목 扮). 작은 술병을 들고 다니고 자신의 물건에 이니셜을 새기는 기행을 즐깁니다. 소유욕일까요.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 해준은 경찰로서 기도수의 아내, 송서래(탕웨이 扮)를 만나게 됩니다.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 扮)의 말대로 기도수의 딸 뻘이라고 해도 믿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미인. 중국에서 밀항해 온 그녀는 한국말이 서툽니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송서래 曰, 남편의 시체가 있는 영안실에서



  서래는 분명 독특합니다. 한국말을 서툴게 발음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단어들을 사용하고, 여느 아내와 달리 남편의 싸늘한 주검을 보고도 딱히 동요하지도 않습니다.


시신을 옆에 두고 첫 만남

  그녀는 누구인가? 설령 연기일지라도 이리 침착할 수가 있나. 결연함을 넘어 초연합니다. 꼭 마침내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다는 듯이 말입니다.





I

스스로 베일을 벗는

 「헤어질 결심」의 구성



  작품은 해준이 중심이 되는 부산의 1부와 서래가 중심이 되는 이포의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구소산 사건의 범인이 서래였음이 밝혀진 후 죄책감과 배신감을 느낀 해준이 서래를 떠나는 장면. 두 구간을 나누는 분기점이죠.


  1부 내내 관객은 해준의 시선을 따라가며 의문을 가집니다.


서래의 정체는 무엇인가?


  해준은 사적인 감정으로 서래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시켰습니다.


  남편인 기도수에게 가정폭력과 협박을 당해왔으며(동기) 남편이 죽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모습. 결정적으로 FM 형사였던 해준의 은근한 방심도.


  자신이 저지른 실책에 스스로를 비관하며 해준이 그녀를 떠나는 순간에도, 서래의 속마음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번역기처럼요.


  작품은 1부 동안 관객이 해준과 함께 서래를 관찰하도록 의도하고 정보의 불균형을 유지하며 '베일에 싸인 그녀'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포에서의 2부가 시작됨과 동시에 서사의 주도권은 서래에게 쥐어지는데요.


관객이 서래를 바라보던 시선을 대변하는 연출

   방금 전 1부 속 정보의 불균형을 언급하며 예시로 번역기가 등장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번역기는 언제나 촘촘히 엮인 두 사람의 말속 실타래를 훔쳐 엉성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작 중에서도 서래는 중국인 밀항자이기에 종종 해준과 대화하는 수단으로 번역기를 사용하곤 하죠.


상대는 자신의 말이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나는 화면에 번역된 게 진정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인지.


   「헤어질 결심」의 구성은 번역기를 닮아 있습니다. 언제나 양방향의 대화를,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번역기. 작품은 '베일에 싸인 파트너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단방향의 클리셰를 비틀고 두 사람의 오해를 해석하는 몫을 관객에게로 돌립니다.


  2부부터는 서래가 자신의 감정을 따라 주도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좌절한 해준이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희생해 자신의 곁을 떠난 뒤, 서래는 임호신이라는 사기꾼과 재혼합니다.


이포에서의 재회

  형사인 해준을 만나기 위해 이포로 이사와 다시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이전과 달리 자신을 어떻게든 검거하려는 해준을 이끌어가죠.


  그리고 마침내 해준의 떠남이 아닌 자신의 침전으로 그토록 바라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미결을 이루는데요.


용의자 서래와 경찰 해준

  해준의 시선에서 머물렀던 1부와 달리 후반부에서 토스를 받아치듯 주도적으로 서래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구성. 이를 통해 작품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인물 모두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II

핵과 바다

사랑의 특성



정안과 해준

  원전은 완전 안전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작품 속 해준의 아내, 안정안(이정현 扮)은 이포 원자력발전소의 관리자입니다.


  언제나 숫자, 확률을 신뢰하는 정안은 부부간의 사랑, 남편의 건강을 위해 섹스리스 부부의 이혼율이나 중년 남성 우울증 발병률 등에 포커스를 맞추죠.


  사랑에 불타서가 아닌 이혼이란 파국을 막기 위해 습관 들이는 성관계, 우울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귀찮게 까먹는 석류. 해준은 그동안 정안의 관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듯 보입니다.


  이는 위험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안전함을 여러 번 강조하려는 원전을, 나아가 그것을 관리하는 정안의 캐릭터성을 보여줍니다.


  자칫하면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는 원전. 그러나 관리만 잘하면, 딱히 문제없는.


  오래도록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유지한 정안과 그녀의 남편인 해준은 사랑이 원전과 같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셈이죠.


  아주 작은 리스크와 불확실함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 다만 안타깝게도 작품이 제시하는 사랑관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바다와 더 닮아서요.


서래

  그럼 바다는 안전한가요?

  모르죠. 안전해서가 아니라 모르기에 우리는 불감증에 걸립니다. 단지 들어가고 싶다, 아니다로 갈리지 않나요.


  바다는 작 중 서래를, 그리고 작품이 진정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을 은유합니다.


  밀물처럼 다가왔다가도 썰물처럼 내 일부를 훔쳐가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파도가 칠 방향과 원인 모를 짭조름한 냄새.


  어째서 해준의 숙소에 들어와 아내처럼 행세하고 까마귀에게는 해준의 마음을 달라고 말했을까요. 또 수많은 미묘한 신호들은요. 해준의 시선을 빌려 전개되는 전반부에선 관객도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확률과 관리로 어찌할 수 없는 바다는 뛰어드는 것만으로 리스크가 생깁니다. 소금기가 눈에 들어가 따가울 수도 있고 파도에 휩쓸려 바닷물을 실컷 삼킬 수도, 발목을 해파리가 쓸고 지나가거나 발이 닿지 않는 공포를 느낄 수도 있죠.


  바다를 닮은 서래도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준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며 조금씩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합니다. 피하지 않고 말입니다.


사라진 서래

  이러한 해준의 모습은 엔딩에 이르러 파도에 뛰어들며 서래를 애타게 찾는 절규로,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해준은 바다와 서래와 사랑에 뛰어들었던 것이라고요.





III

종결

잠에 드는 것, 더 이상 보지 않는 것



나는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왔나 봐요.

기도수가 떨어진 절벽을 거꾸로 올라가는 해준

  해준은 서래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으로 구소산 사건을 더 치밀하게, 더 강하게 수사하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시켜 버리게 됩니다. 부산에서의 1부 내내 드러나는 해준의 바람은 딱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용의자와 경찰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쫓고 쫓기는 존재가 아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마음 깊은 곳 바람이 묻어 나왔던 것일까요.


  해준은 의문점으로 가득한 서래의 알리바이를 순순히 인정한 채 사건은 종결로, "이제 우리는.." 이란 여지를 미결로 남겨두었으나,


  우연한 계기로 해준은 구소산 사건의 진범이 사실 송서래였음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이내 재수사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서래의 휴대폰을 들고 그녀를 찾아가죠.


나는요.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단란했던 가족에 대한 죄책감, 경찰로서의 무능함과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알면서도 갖고 놀았다고 생각되는 서래에 대한 배신감. 해준은 자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말합니다.


  서래는 자신을 비관하고 따져드는 해준을 보며 이제 그가 "우리"를 종결시키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이제 다 끝난 것처럼요.


해준의 잠을 괴롭히는 것들

  작 중 해준의 숙소 벽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결 사건들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요.


  서래는 그 모습을 보며 해준의 불면증이 이 사진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 미결된 것들은 언제나 해준의 곁에 남아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죠.


  누구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알아서 종지부가 찍힙니다. 벽에서 떼어버린 사건들처럼, 더 이상 서래를 수사할 필요가 없는 해준과 더 이상 용의자가 아닌 서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해준이 자신의 실책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구소산 사건을 재수사하여 송서래를 구속하고 사건을 완전히 종결시키는 것. 그녀에 대한 감정도, 잠깐의 골치 아팠던 해프닝도.


  그러나 해준은 서래의 휴대폰을 돌려주며 이 말을 전하곤 그녀를 떠나 정안이 근무하던 이포로 향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리고 이포에서의 2부가 시작되며 서래는 해준의 곁에 남기 위해, "우리"를 미결로 만들려 이포로 찾아가게 되죠.





IV

미결

작품의 메시지


  실제로 작 중 해준은 서래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래가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다. 그걸 남편(임호신)이 알아버렸었다'라고 하자 해준은 당황하듯 되묻죠.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언제요?


  앞에서 작품이 던져놓는 단서들이 하나의 메시지로 집중되는 순간입니다. 감옥을 죽는 것보다 두려워했지만, 죽을 만큼 좋아한 여자였기에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 홍산오. 그리고 해준.


죽을 만큼 좋아한

  해준은 구소산 사건을 재수사하여 무너진 자신의 모든 것들을 회복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일한 증거를 서래에게 넘겨주며 폰을 바다에 던져 없애버리라고 했죠.


  서래를 사랑했고, 그랬기에 모든 것이 붕괴되었지만 그를 버틸 만큼 속에 들이 찬 사랑.


  앞서 말했듯 오로지 뛰어들고 아니고의 문제입니다. 해준이 마지막으로 건넨 말인 "그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곳에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가 서래에겐 다르게 들렸을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해."라고요.


  서래의 대사를 잠시 봅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어요.
해준과 서래

  위의 네 줄은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묘사합니다. 해준은 1부가 끝나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래에게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관계를 종결시켰죠.


  서래는 더 이상 조사당할 이유 없이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해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리곤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 범죄에 연루되려고 하고요.


  결국엔 그가 준 증거품을 돌려주곤 자신은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들어가 바닷물에 잠기며 목숨을 끊죠.


  앞서 설명했듯 미결된 것들은 단잠을 방해하거나 골똘히 생각할 때의 소재가 되는 등 언제나 해준의 곁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서래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고자 합니다. 해준이 재수사를 해서 사건을 종결시키길 바라고, 아무도 못 찾게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 한 것처럼 스스로 깊은 바다에 빠져 우리라는 관계를 끝맺을 수 없게 만드는데요.


  1부에서 서래가 혐의를 벗기 위해 정말 해준을 이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어쩌면 알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서래는 작품이 제시하는 사랑을, 독한 사랑을 했습니다.


종결시켜 곁에서 보낼 수 없는 관계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 적이 있나요? 전할 수 없는 호감을 간직하다 거부당할 공포를 이겨내고 고백하는 순간. 나를 조금씩 잘라내고 포기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헤어질 결심」 이 제시하는 사랑입니다.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나면, 사실 제목부터 주제를 암시했었음을 알게 되죠.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누군가를 위하는 것. 확률과 손해와 거래가 아닌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무모하고도 우리를 뒤흔들어 놓는 것.


  엔딩에서 해준은 자신의 모든 것을 깊이 감싸며 휘몰아치는 파도에 들어갑니다. 몸을 밀치고 다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사랑 안에서 이제는 미결이 된 서래를 애타게 찾죠.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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