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COMPUTER」, 1997
여러분은 인터넷의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파동처럼 커져가는 SNS의 몸집은 또 어떻고요.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만 6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 중 최근 1년 이내에 SNS를 이용한 비율은 65.2%로 나타났으며 이 중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이용률은 65.0%에 달했는데요.
조금 더 간편해진 세상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잠재적인 가치를 창출해 내거나, 혹은 편리함으로 마취되어 자꾸만 무뎌지는 영혼을 힘겹게 붙잡고 있을지도요. 동시에 더 예민해져만 가는 염증을 앓으면서요.
'그게 뭔 멍소리냐'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물건은 사게 만들고 자존심은 상하게 만드는 광고들과 자극적으로 편집되는 동영상들. '~한 사람 거르는 법'을 인터넷으로 배우는 우리는 자꾸만 머릿속의 '나'라는 자아와 행복을 걸러 깊은 우울로 빠뜨리곤 합니다.
혹시 지금 우울하신가요? 삶이 불행하신 것 같나요?
그럼 그 얘기를 해봅시다.
영국의 밴드, 라디오헤드의 3집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손꼽히는 「OK COMPUTER」입니다. (이하 OKC로 지칭) 얼터너티브 락 사운드의 본 앨범은 세상 속 불합리하고 녹슨 것들을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음울한 감성으로 풀어낸 작품인데요.
그 명성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OKC의 위대함'이라는 담론을 뜨겁게 뎁히며 음악사와 후배들에게 전파된 지대한 영향력을 실감하게 만들곤 했더랬죠.
비틀즈 이후 약 40여 년 동안 장르를 지배해 온 향락적 분위기를 멸종시키고
본격적인 아트 얼터너티브 / 일렉트로닉 락의 유행을 발생시켰다
OKC의 실험적인 사운드는 취향에 따라 약간은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본 작품을 자주 듣는 필자로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음악이 여전히 실험적이고 독보적인 사운드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녹슨 스틸과 기름진 나일론, 항생제를 들이키며 삶에 염증을 느낀 채 울부짖은 돼지들. 삶과 죽음, 우울, 인터넷, 기계화, 정치, 자본주의 등 '현대'라는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20년도 더 지난 앨범이지만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으며 틈 없이 치밀하게 짜인 시적인 가사, 음악적 장치들은 지금의 라디오헤드가 가진 이름값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단 몇 곡 들어보실까요?
먼저 앨범 콘셉트를 설계한 라디오헤드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음반 제작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멤버이자 라디오헤드의 보컬인 '톰 요크'는 환경주의자, 사회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특유의 기민한 우울감이 합쳐져 자기 파괴와 분노, 또 방황하는 이들에 대한 조언이 그들의 음악에 여실히 묻어나죠.
초창기 그들은 '너바나 카피캣'이라며 당시 밝은 분위기의 브릿팝(Britpop)이 대세였던 영국에서 홀대를 받았지만, 결국 '인터넷'이라는 시대의 큰 격변을 경고한 OKC로 상업적 성공이었던 2집 「The Bends」에 뒤이어 예술성으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됩니다.
인터넷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라디오헤드가 3집을 제작할 때쯤 세상은 인터넷의 등장과 보편화로 격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되는 과도기와 맞물린 셈이었는데요.
지금에서야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2000년대가 오면 컴퓨터가 숫자 2를 인지하지 못해 지구가 멸망한다더라'는 괴담이 떠돌았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의 막연한 공포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음악가로서의 자가복제를 강박적으로 거부하는 그들은 서정적인 기타 사운드가 주였던 2집 「The Bends」를 탈피하기 위해 이 격변에 대한 공포를 역이용합니다.
'밴드'하면 떠오르는 사운드인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에서 벗어나 전자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기계적인 사운드와 락을 융합해 예술적인 특성은 유지하며 음악적으론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게 됩니다.
'Fitter Happier'라는 트랙에선 아예 보컬 대신 번역기를 튼 것처럼 로봇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를 등장시키기도 하죠.
그들의 아름다운 우주선에 나를 태우곤 내가 원했던 세상을 보여주길
_Subterranean Homesick Ailen
껍질은 부서지고 체액이 새어 나와 날개가 경련하며 다리는 꿈틀대
_Let Down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영감을 얻었다)
진압 방패와 부두 경제학, 그건 다 사업일 뿐이야
소몰이 막대와 IMF도..
너의 소중한 한 표 나에게 주리라 믿어
_Electioneering (가장 정치적인 곡, 포퓰리즘을 풍자)
내가 편집증일수는 있어도 안드로이드는 아니야
_Paranoid Android
오늘은 영광스러운 날이 될 거야 내 운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
_Lucky
라디오헤드가 본 세상은 '불감증' 그 자체입니다. 직접 만들지도 않은 안전망에 삶을 맡기고 - Airbag -, 이기심으로 인해 인과응보를 간과- Karma Police - 하는 등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너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영향들은 정치인들의 확성기가 되며 - Electioneering - 세상을 바꿀 인터넷을 타고 더 빠르게 전파됩니다. 분노와 혐오를 들이마시면서도 아무런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 우리. 결국 선을 넘어버린 이들은 쥐 죽은 듯 눈을 감아버리죠. - No Surprises -
결국 죽지 않고도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우울을 서로에게 전염시키고 있는 판국입니다. 특히나 인공지능기술에 회의적이었던 그들답게 '컴퓨터'의 목소리를 빌려 들려주는 이야기들 - Fitter Happier - 은 예방주사 같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OKC는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기계가, 하나는 인간이 내리는 처방이죠. 'Fitter Happier'에서 등장하는 기계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읊조립니다. 그거 건강하고 행복하고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들.
Fitter Happier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더 생산적이게
편안히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고
체육관에서의 규칙적 운동
일주일에 3일
동료 직원과 더 잘 지내기
편안히, 잘 먹기
냉동식품과 포화 지방 없이
참을성 있고 더 좋은 운전자
더 안전한 자. 뒷좌석에서 웃음 짓는 아기
잘 자기, 악몽 없이
피해망상 없이
모든 동물들에게 조심하기
배수구로 거미 흘려보내지 않기
옛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기
가끔씩 술 마시기
음산하고 높낮이 없이 들려주는 기계의 처방은 분명 틀린 말들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러니할 뿐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계로부터 듣는 조언이라니. 심지어 맞는 말임에도.
결국 인간이 집어넣은 정보의 파편을 조합해 내놓은 알고리즘일 텐데도 정작 인간은 이를 실천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세상. 다른 말로 기계화된 인류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나머지 하나의 처방. 마지막 트랙인 'The Tourist'는 톰 요크의 목소리이자 같은 인간이 전해주는 충고입니다.
The Tourist
They ask me where the hell I'm going
그들은 내가 대체 어딜 가냐고 물어봐
At a thousand feet per second
초속 1000피트의 속도로
Hey man, slow down, slow down
이 사람아, 천천히 가, 천천히 가
Idiot, slow down, slow down
멍청이. 천천히 가. 천천히 가라고
제목 그대로 여행객처럼 항상 바쁘고 정신없으며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휘몰아치는 우울감과 긴장감, 고립감은 이 트랙에서 해소됩니다.
세상을 향하던 손가락질은 이제 하늘을 향하며 "이렇게 하면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 듯한데요. 앞 트랙에서 진행된 불행과 고통의 나열은 결국 속도에 매몰된 우리의 삶이라고 가리킵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고착화된 고속인 셈이죠.
빠르게. 더더욱 빠르게. 이젠 익숙해져버려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돌아볼 수도 없이 너무도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 와중에도 서로에게 전염시키는 우울과 혐오는 다리에 더욱 가쁘게 채찍질을 해댑니다.
그래서 OKC이자 라디오헤드는 말합니다. 제발 좀 천천히 가자고요.
어느 쪽이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일지는. 듣는 사람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듣기에 더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아 보이는 컴퓨터의 말들은 굉장히 딱딱하고 높낮이를 가지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할 필요도 없고, 카드 고지서를 보듯 머리에 입력되는 텍스트들. 반면에 담담하게 조언하는 톰 요크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우린 비로소 내려놓은 기분으로 앨범 감상을 끝마치게 됩니다.
바쁜 삶의 과제를 끝낸 듯한 기분이 아닌 친구에게 전화해 좋은 음악을 들었다고 말하면서요.
「 OK COMPUTER 」는 전체적으로 보면 꽤 우울한 감성이 그득한 앨범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우울감에 빠져 우회로 없는 자기 연민만을 일삼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하고 사회와 개인에게 발생하는 어떤 문제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당시 받았던 평가대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죠. 물질적 풍요와 과시. 비교라는 백신을 찾아 인터넷을 헤집고 매몰되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예언 같은데요.
뭐든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손에 넣겠지만. 과도한 속도를 선망한 나머지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위해 행복을 팔아넘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천천히 가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귀에 들리는 소리들은 녹슬어가고. 내가 만지는 것들은 점점 퀴퀴해지지만 모든 것을 천천히.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