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 정병 레시피 ~
때는 20XX년 강릉에서의 어느 화창한 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날,
나는 내 앞으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말 전화를 받고 만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면접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다정했고, 감미롭기까지 했다.
면접관은 부드럽게 내 이름을 물어보며 합격 사실을 전달했다.
"안녕하세요, 000님 맞으시죠? 축하합니다. 저희 회사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
"네? 진짜요? 와, 대박!"
"네, 숙식제공 N년간 지원되구요, 입사예정일 메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합격이요? 비상경 문과에 코딩이라고는 1도 할 줄 모르고!
글 좀 끄적여서 돈 번 걸로 내가 제일로 잘난줄 알았지만 출판사 100곳 넘게 떨어진 제가요?
박리다매로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으로 값싸게 글 팔아서 번 돈으로 알량한 자존감을 채우던 제가요?
타지로 유학보낸 보람 없게 부모님 등골이나 뽑아먹으면서 허구헌날 자괴감에 울던 제가요?
합격사실을 전달받았을 때는 정말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행복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내게 축하를 건넸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내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날 나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이곳저곳 합격 소식을 전하며, 이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그게 불행의 시작인 줄은 모르고...
나는 악어의 턱주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덜떨어진 생쥐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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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한 곳은 아주 저 아래에 위치한 지방에 있는 회사였다.
나름 업계에서는 인지도도 높고(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희한하게 이런저런 이명이 많은 곳이었다.
웹검색을 해보면 괴담이 제법 나오기는 했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비상경 문과에 가진거라고는 어쭙잖은 영어 실력과 약간의 문서작업능력밖에 없는 나로서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당시의 내게는 단기 인턴 경험 1번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N년 전의 것이라서 그 사이의 공백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난감한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타지살이라면 도가 튼 상황이었다.
어릴때부터 이사를 다닐 일이 많았고, 그 효과인지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오래 보고 지낸 얼굴들을 상대하기가 벅차고 두려운, 그런 희한한 대인기피적 요소가 있었기에(관계가 깊어지면 버겁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낯선 사람은 오히려 대하기 쉽고, 익숙한 사람은 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그 회사가 뜬금없는 곳에 위치해있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단, 난 부모님께 빌어먹는 상황을 탈출할 수 있었고, 아늑하고 좋은 숙소까지 배정받게 되었으니까.
심지어 그곳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브랜드를 론칭한 회사였다.
아, 근데 뒤돌아보면 그게 패착이었던 것 같다.
그 브랜드를 떠난 적은 있어도 안 돌아온 적은 없는데,
이제 나는 이 회사에서의 경험 덕분에 광고에 그 브랜드가 뜨기만 해도 질색팔색하며 앱을 끄게 되었으니까.
나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려 했던 탓에 내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지속되어온 추억을 잃고 말았다.
tlq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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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면접을 보러갈때, 나는 처음으로, 내 힘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보게 된 첫 면접에 쿵쿵 뛰는 가슴을 잡고 그 먼 곳에 짐을 바리바리 싸갔었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와도 된다고 했지만, 일부러 캐주얼한 정장을 챙겨갔다. 회사 옆의 카페에서 간단히 아점을 때우고 화장실에서 정장으로 갈아입었으며(버스 안에서 옷이 구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용모를 단정히 하고 회사에 입성했다. 보부상이나 다름없던 내 꼴에 인사담당자분께서는 당혹을 금치 못하셨다. 나는 이 차림이 편하다고 말하며 면접장에 들어갔다.
아무리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일지라도, 최소한의 규격은 맞춰야한다는 게 내 철학이었어서 나는 일부러 차려입었었다. 물론, 그래도 너무 답답해보이지는 않으려고 조금은 느슨하게 입었다. 면접에서 약간은 아방하게 보이면 좋다는 친구의 팁까지 귀기울여들은 나는, 일부러 면접관들 앞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내 나름 귀엽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였다.
면접관-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
나-햄스터 키우는 계정들 찾아봐요~ㅎㅎ
근데 희한하게도, 면접은 금방 끝났고, 면접 질문 난이도가 내 기준 너무 쉬웠기에 심란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면접에 인사담당자분께서도 당황한듯 보였다.
난 머리를 긁적이며 그곳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합격 소식을 전달받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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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주변인들에게 축하란 축하는 다 받고,
요즘 젊은 애들은 너무 금방 그만두니 3년은 다니라며 5만원과 함께 덕담을 이곳저곳에서 듣던 나는
3년은 다니겠다며 호언장담하다가 3년은 개뿔!
2달만에 그곳을 그만두게 된다!
포괄임금제(주52시간제, 월급에 야근비용이랑 식대 전부 포함)인 것을 알면서도 들어간 내가,
이미 포괄임금제를 경험해본 내가,
타지살이라면 도가 튼 내가,
취업을 제발 하고 싶었던 내가 왜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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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밤 9시에 퇴근하면서 30분 단위로 메신저로 틀린 거 찾았냐며 밤 11시 반까지 물어보던 사수가 있어서? 자기는 수습 때 사수가 새벽 N시에 매일 집에 보냈다며 00씨는 복받았다고 말하는 사수가 있어서? 입사한지 2주도 되지도 않아 사자후를 내지른 사수가 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내게 "00씨, 저희는 산책 다녀올게요~"하고 은근히 소외시키는 사수가 있어서? 툭하면 의자를 돌려서 내 모니터를 감시하던 사수가 있어서? 피드백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불량한 업무태도를 전달받았다며 내게 퇴근할때면 마지막에 본론을 꺼내던 사수가 있어서?
아, 이게 끝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 레시피 이상으로 길고 긴 직장인 갈굼의 달인 레시피가 있다!
여러분은 겪지 마세요~
미련하게 버티지 마세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힘드세요? 걍 나오세요.
개뜨억같이 굴려지기에 당신은 너무 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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