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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31. 2024

동상이몽 VS 동상동몽

동상이몽, 한자를 직역하면 한 침상에 자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요즘 부부사이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동상이몽'이라는 TV프로그램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부사이를 이르는 말로 더 익숙하기도 하다. 아마도 '동상'이라는 같은 침상에서 잔다는 의미이기 때문일 것도 같다.


요즘세태는 부부가 서로 동상이몽을 꾸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혼이라는 말도 흔한 세상이 되었다. 더욱이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년층의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황혼이혼은 아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더 이상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어간다.


젊을 때 부모님 집이나 처갓집을 방문하여 노부부의 대화를 들어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퉁명스러운 말투 일색이었다. 가난한 시절 고난을 버티며 오랜 세월을 같이 했는데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주로 아내가 남편에게 핀잔을 주면서 말다툼으로 끝나니 서로 감정만 쌓이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 연애보다는 중매로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어른들 눈치 보고 먹고살기 힘들어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서로 좋으니까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았을 것 아닌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면 젊을 때 좋았던 시절이 있기는 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들은 이혼을 금기시하는 사회풍조와 참고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이혼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 우리 부모님들의 안 좋았던 모습을 점점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 사회 분위기도 결혼하면 가족부양은 모두 남편이 책임지고 직장에 다니던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살림과 육아에 전념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다. 누가 봐도 번듯한 직장이라면 몰라도 아내들이 일하러 나가면 남편이 변변치 못하다는 뒷담화를 듣기 일쑤였다.


직장분위기는 산업화와 군사정권 문화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어 요즘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집사람 출산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하면 농담반 진담반 "예전에는 네가 애 낳느냐고 면박을 줬었는데, 요새는 좋아졌다"는 뒷담화를 하며 반강제적으로 휴가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선공후사가 최고의 덕목이라고 우겼다. 그런 직장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남편은 가정을 돌볼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었다.


사회초년병 시절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알뜰히 저축하여 작기는 해도 아파트도 마련하고 당시로서는 약간 늦은 나이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직장의 근무체제가 주야간 철야근무를 하면 쉬는 날 오전에 잠을 자도 몸살증상 같은 피곤이 어깨를 눌렀었다. 지금 같으면 하루종일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진리라고 믿으며, 발전된 내일을 위해 쉬는 날은 공부에만 매진했었다. 그러느라 가정일과 아이들 돌보는 것은 많이 등한시했지만, 아내도 남편이 나태하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 힘을 내기도 했다.(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황혼이혼을 고민하는 아내들은 젊은 시절 생계가 우선이라서 그랬는지, 사회분위기 탓이었는지 남편의 섭섭한 행동을 참고 살아오다 자식 혼사를 치른 후에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더 이상 참고 살 수 없다"라며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남편들은 아내의 생활방식이 모두 마음에 들고 불만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황혼을 앞두고 퇴직해서 백수가 된 남편의 입장이 되니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내가 가끔 화가 나면 남편의 지난날 잘못을 들춰내 비난을 하기도 한다. 가사와 육아로 생활 범위가 가정에 한정된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선공후사를 강요하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에게는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으니, 남편과는 동상이몽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의식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여성의 사회참여 활동이 증가하며 외벌이 보다 맞벌이 가구가 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 영향으로 양성평등 의식이 높아지며 '돈벌이도 같이, 가사분담도 같이'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세대는 '동상동몽'에서 '동상이몽'으로 바뀌는데, 요즘세대는 아내들의 불만도 과거에 비해 적을 것이니 '동상동몽'이 나이 들어도 그대로 일 것 같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20대로 돌아가 보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그때는 지금의 아내가 맞벌이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경제적 여유는 둘째치고 처음부터 집안일과 육아를 아내와 동등하게 한다면 나이 들어서도 비난을 받는 일 없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지 않을까? 만약, 창조주가 있다면 욕심이 과하다고 벌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뒤늦게 깨달았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것이 있다.


ㅡ 내일의 행복은 없다. 오늘을 행복하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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