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을 뜻하는 '첫'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계기로 종종 마주하게 되는 것이 첫돌, 첫 직장, 첫사랑 등이 있는데, 주로 아름다운 추억과 어우러지는 말들이다. 지난 시절 많은 첫 순간들이 있었지만 처음 아빠가 되게 해 주었던 첫째 딸이 보람(가명)이다.
동생이 빨리 생겨서 그런지 걸음마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승용차 뒷자리에는 동생을 안은 엄마가 타고, 조수석에 혼자 앉혀 놓으면 발장난도 치며 의젓하게 앉아 있는 것이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한글을 조금씩 알아 갈 무렵에는 지나치는 간판을 보며 혼자 읽다가도, 기특해서 "저거 무슨 글자야?"하고 물어보면 더 가까운 곳 간판인데도 안 보인다고 하니 모르면서 능청을 떠는 것 같아 정말 귀여웠다.
그러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직장에 들어가고, 처음 남자친구가 생겨 꽤나 오래 만난다 싶더니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 친구 부모님과의 첫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종종 자식 혼사를 앞둔 지인들의 이런저런 상견례 경험담을 들을 때는, 요즘 같은 세상에 뭘 그렇게 신경을 쓰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나에게 닥치니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 것인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할 것인지 이것저것 신경이 쓰였다.
5월 가족행사가 많은 시기에 약속을 잡아서 식당 예약이 어려웠는데, 다행히 동생이 출ㆍ퇴근길에 눈여겨봐 두었던 식당에 자리가 있어 예약을 했다. 마당이 있는 옛날 한옥을 개조하여 고즈넉해 보였다. 분위기도 좋고 조용하여 두 가족이 대화하기에도 아주 편했다. 주영(가명)이 아버지는 직장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들과 동년배라서 그런지 친근감이 들고, 이웃에서 마주하던 사람 같이 평범하고 점잖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는 천주교회를 나가신다고 하는데, 종교인이라서 그런지 역시 조곤조곤 말씀을 잘하셨다. 운이 없게도 두 아들 모두 집에서 거리가 먼 중학교에 배정되어 매일 승용차로 등 ㆍ하교를 시켜 줬다는 얘기, 초임 발령이 나서 시골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면서 우셨다는 얘기, 요즘 음식을 잘 안 먹어서 이것저것 많이 챙긴다는 얘기를 들으니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아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혹시 며느리에 대한 잔소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슬쩍 염려가 되기도 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가까운 동네에 신혼집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하는데, 거의 모두 은행 돈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대출금을 갚느라 너무 아등바등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양가 부모가 모두 가까운 곳에 살아서 맞벌이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자주 보면 그만큼 부딪히는 일도 많을 것 같다. 보람이 성격상 우리나 시댁부모는 모르고 넘어가도 좋을 속상한 일까지 바로 엄마한테 하소연하여 분란을 키우지는 않을까 염려도 된다.
어찌 됐든 보람이와 주영이가 준비하느라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고, 어른들 대하는 태도를 보니 좀 더 성숙해지는 것 같아 믿음직스러웠다. 주영이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인상이 수더분해 보였다. 내가 먼저 양보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서로 배려하면 무난한 사돈관계가 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