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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n 18. 2024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수 있는 사회

우리나라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이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살던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의 사자성어로는 '본말전도', '주객전도'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들은 모두 굴러온 돌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들이다. 한편, 요즘에는 '기득권', '텃세'라는 '박힌 돌'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예전부터 "박힌 돌을 뺀다"라고 하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온  말이지만, 현대사회는 오히려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는 '박힌 돌'을 쉽게 뺄 수 있는 사회가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며 함께 잘 사는 성숙된 사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처음 입사하고 발령을 받아 오래 근무했던 기관은 시 지역을 담당하여 항상 바쁘게 업무처리를 하다 보니,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 위주로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근무하다가 전입을 온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니 업무 스타일의 차이로 불협화음이 자주 생겼다. 시골에서 온 직원들은 낯선 환경인 데다 불필요한 것들까지 챙기는 일처리 방식이라서, 우리가 2~3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에 1~2가지 업무밖에 처리하지 못하니, 갑갑증을 느껴 자주 다그치게 되었다. 그야말로 굴러온 돌은 변명도 하지 못하고 박힌 돌들의 시스템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 년 후 시골로 발령을 받아 '굴러온 돌'의 신세가 되어 생소한 지역에서 일을 해보니 모든 것이 어설프고 힘들었다. 그제야 내가 다른 지역에서 온 직원들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박힌 돌' 입장의 기준으로만 다그쳤던 사실을 깨닫게 되니 민망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굴러온 돌을 배척하는 텃세나 기득권은 어느 사회에나 만연한 것이어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귀농, 귀촌과 더불어 전원주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골 원주민과 귀촌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많아졌다. 귀촌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자연환경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얼마 안 되는 노후자금을 투자하여 시골에 토지를 구입하고 집을 지어서 전원생활을 시작한다. 원주민들과 잘 지내기 위해 식사대접이나 선물공세를 하며 ‘굴러온 돌’, 을의 처신을 다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웃 간의 다툼이 생기고 심지어 송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 의대입학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정부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또 다른 박힌 돌 의사집단의 대립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갈수록 낙후되는 필수의료, 지방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입학정원 증원을 통한 인력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정책이다. 의사들의 반대 논리는 필수 의료분야 수가인상 등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의사수만 늘리면 의사의 자질이 하향평준화 되어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차치하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수술을 못 받아서 하루하루 애가 타들어가는 중환자와 가족을 볼모로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의약분업 정책도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며 극렬히 반대를 했었는데, 의약분업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병원을 끼고 있는 약국에 대한 갑을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반국민의 시선에는 오로지 의사들의 희소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입감소를 우려하는 돈벌레로 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 박힌 돌이 바로 검사집단이다. 검찰의 로고가 “균형 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뜻한다고 한다. 현 검찰조직의 검사들 중 과연 이 로고의 뜻을 지키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형사사건 피의자나 가족들이 변호사를 살 때(법률상 용어는 변호인 선임이라고 하지만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이렇게 통용되는 것 같다.) 거금을 주더라도 검찰 전관 변호사를 사야 구속도 면하고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독점한 현직 검사와 검사출신 전관 변호사가 서로 밀고 당겨준다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검사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모든 수사기관 중 사람을 체포하여 구속하고 압수수색하는 영장청구권, 범죄자를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는 (기소유예) 기소편의주의, 판사에 대한 재판 청구는 오로지 검사만이 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 판사는 피고인의 범죄가 아무리 많아도 검사가 청구해야 심판할 수 있고 청구한 범위 내에서만 재판해야 하는 불고불리의 원칙 등 모든 권한을 검사가 독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이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여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검찰개혁이다. 마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는 격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정권은 거세게 저항하는 검사집단의 무도한 칼날에 막대한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헌법상 의무인데, 작금의 검찰은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검찰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권이나 보수정당과는 한편,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정권이나 진보정당은 적으로 돌리는 정말 어처구니없이 한심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검사는 공무원이 아니고 오로지 검사인가?




말 못 하는 어린아이도 자기가 쥐고 있는 사탕을 빼앗으려고 하면 손에 힘을 주고 울면서 저항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집단, 박힌 돌이라고 하면 의사와 검사라고 할 수 있다. 내심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공부하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얻었는데 이렇게 양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량한 국민과 환자가 없으면 검사와 의사 모두 존재가치를 잃는 것 아닌가? 국민과 환자를 위해 좀 더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어느 영화배우의 대사가 명언처럼 느껴진다.


"이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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