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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Oct 22. 2022

소설<가늠할수없는사랑>

한번 다친덴 쉽게 다친다며 째야 한다고 한다

  문자알림이 계속 된다. 서윤은 컴퓨터 화면에서 마침내  시선을 폰으로 옮긴다.      

    

  “지윤서씨”

  피부과 접수계 간호사 서윤의 이름 앞뒤를 바꿔부른다. 하지만 낯설지가 않다. 한동안 드라마로 먹고 살 때 쓰던 이름이 윤서였다. 제작국 CP였던 황.이 지어준 예명이었다.여의사는 서윤의 오른손 중지에 난 상처를 보며, 단순히 긁힌게 아니어서 오래갈거라고 했다.  며칠전  스프링  캘린더를 정리하다 뭔가 찌릿해서 보니 중지 가운데 살점이 벌어져있었다. 그걸보고도 단순히 베인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한심했다.

  여의사는 아직 염증기는 없으니 오늘은 소독하고 드레싱만 하고 가란다. 그리고는 또다시 접수계 간호사의 “지윤서”씨가 되는 서윤.

  “지서윤인데요” 

  “어머 죄송해요. 왜 자꾸 윤서씨로 보이지?”

  “것두 내 이름이긴 해요 ”

  “네? ”

  영문을 몰라하는 간호사. 

  서윤은 자동문을 나서며 씩 웃는다. 방송 재개하나 보다 하면서. 그리고는 그날밤. 대필 원고 작업도중 지훈의 챗을 받은것이다. 미니시리즈 “이별의 왈츠” 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지훈. 그가 왜?     


  “한 5년 됐나? ”

  지훈은 입이 타는지 물을 들이킨다. 금지된 사랑을 했던 둘이 5년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지훈을 처음 본건 서윤의 약혼자 영민을 통해서였다. 서윤이 처음 써본 단막극 원고를 좀 봐달라며 영민이 입사동기인 TV 제작국 조연출이었던 지훈을 찾아간 것이다.

  “내가 무슨힘이 있다구 ”

   하며 마지못해 서윤의 원고를 받던 지훈. 그 순간 서윤은 온몸이 감전된 듯 짜릿했다. 절대 곁을 안줄거같은  지훈에게선 차가움이 느껴졌고 그것은 이상한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 사람과 엮일거 같다는.

 “이래 봬도 신춘문예 출신이야  소설. ”

  하며 영민은 은근 서윤을 치켜 올렸다.

  “그래요”

   하곤 지훈은 원고 앞장의 “지서윤”이란 이름을 응시한다.

  “지서윤씨, 내가 기억해야겠네 ”

   서윤이 지훈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지훈은 그런 서윤의 마음을 읽는다.

  “우리 곧 결혼할 사이야”

  영민이 서윤의 어깨를 안는다. 

  “한 PD 올거지? ”

  “글쎄,, 촬영 겹치면 못가고”

   하곤 서윤을 보는 지훈.

   “축하해요 두분”

  아아, 이 결혼 안될거 같다는 생각을  서윤은 한다. 분명 틀어질거 같다는.

  그리고는그날밤, 집까지 바래다준 영민의 차 안에서 영민의 손이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려할 때 서윤은 완강하게 거부한다. 영민은 뜨악해하고 서윤은 더 이상 결혼을 진행할수 없다는 확신에 찬다. 하지만 남은 한달은 너무나 순조롭게 결혼준비에 소모되고, 정확히 한달후 둘은 호텔 웨딩홀에 나란히 선다 하객중에, 바삐 왔는지, 파커차림의 지훈이 있었다.     


  한 5년 됐냐는 지훈의 물음에 서윤은 그런가, 한다. 벌써 5년.

  결국 결혼을 물리지 못한 서윤은 영민과의 1년도 채 안되는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도 때도없이 자신의 몸을 탐하는 영민을 견딜수가 없었다. 분명 그 이후다. 방송국 복도에서 영민의 소개로 처음 지훈을 보았을 때, 그리고 일주일후,  방송국 까페에서 원고를 돌려주었을 때, 잘 썼는데 자긴 아직 힘이 없다고.  그러는 지훈의 눈을 서윤은 똑바로 보지 못했고 둘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러다 마지못해 지훈이 내뱉은 말, 결혼 축하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윤이 영민과 헤어진 뒤 얼마 안돼 지훈은 연락을 해왔다. 좀 볼수 있냐고. 그렇게 둘은 만나고, 지훈은 두달후에 자기 또한 결혼한다고 한다. 모 국회의원의 딸이라며 처음엔 조건보고 하는  결혼같아 부담스러웠는데, 만날수록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결심했다고.

  “나는 왜 보자구 했나요? ”

  “...생각이 나더라고”

  “왜, 내 생각이 났나요? ”

  그러자  지훈은 손좀 달라고 말한다. 한번도 접촉이 없던 상황임에도 서윤은 자연스레 한손을 그에게 맡긴다. 그 손을 쥔 지훈은 손이 차다고 한다. 마음도 찰거 같다며.

  서윤은 도리질 한다. 손을 잡은채 지훈이 이끈다. 서윤은 뭔가에 홀린 듯 따라가고 둘은 어느새  S 호텔앞에 서 있다. 바로 옆에 호수가 있어, 밤바람이 차갑다.

  서윤은 지훈에게 잡힌 손을 빼낸다. 그리고 등을 돌리지만 지훈이 뒤에서 그녀를 안는다. 처음부터 이상했어. 널 보던 처음부터. 그 말에 서윤도 속엣말을 내뱉을뻔 한다. 자기도 그랬다고. 당신을 본 이후로 영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다. 그날밤 둘은 호텔방에서  함께 잔다.     

  그리고 예정대로 두달뒤 지훈은 국회의원의 딸과 결혼한다. 예식장에 서윤은 가지 못한다. 그냥 정신나간 사람처럼 텅빈 모니터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손좀  줘봐”

   5년전처럼  지훈이 요구한다. 하지만 서윤은 손을 주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레몬차를 마신다.

  “나 원망해?”

  이말에도 서윤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그때 결혼 무를수도 있었잖아, 이말이 하고싶다. 하지만 말이 되지 못하는말.     

  지훈은 결혼과 동시에 연락을 끊는다. 당연한 일이라고 서윤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가 나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서윤을 안았던 두손으로 어떻게.

  일종의 오기였는지 모른다. 서윤은 지훈이 근무하는 방송사 드라마 공모에 응모하고 가작으로 입선한다. 그렇게 서윤이 제작국을 드나들면서 둘은 다시 부딪친다. 그러나 지휸은 서윤을 외면한다. 그 사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점점 지훈이 남의 사람이 돼 간다는 생각에 서윤은 서글퍼진다.     

 “ 손좀 줘봐”

 하지만 서윤은 끝내 자기 손을 주지 않는다.  어느날  다시 연락이 와서 서윤은 지훈과 호텔을 드나들었지만 더는 안된다고  하던 지훈.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했다고.

  서윤은 거의 빌다시피했다. 가끔 얼굴만이라도 보여달라고. 그래도 안된다던 지훈. 그는 세찬 비속에 서윤을 버려둔채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렸다. 그리고 5년이다. 그 둘째가 지금 어지간히 컸겠지.

   그렇게 지훈과 헤어진 뒤 서윤은 일마저  안풀려서 연달아 미니 두 개가 도중에 엎어지고 만다. 그러면서 사실상 조기은퇴를 했다.          

 “그땐 내가 잘못했어 윤서야”

  지훈은 그렇게 예명으로 부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윤은 그제서야 둘의 운명을 가늠한다. 간호사가 윤서라고 불렀을 때 이 남자가 예견된 것이다. 다시한번 그가 부른다. 윤서야, 라고. 

  영민과는 이혼후에도 스스럼없이 만났다. 둘은 기껏해야 연애하다 헤어진 사이같았다.영민은 자연스럽게 와이프와 쌍둥이 얘기를 했고 사진도 보여주곤 했다.  한눈에도 쌍둥이가 영민을 빼닮은게 여실했다. 와이프는 가녀린 몸매에 이국적인 눈매를 가진 여저다.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면 영락없는 백인.

  당신 취향이 이랬지? 서윤은 농을 한다.  글쎄, 내 취향은 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영민이 히죽거린다. 둘은 레스토랑에서 까르보나라를 먹고 샴페인을 마신다 

  “당신 남자 없어?”

  영민이 입가의 소스를 냅킨으로 닦아내며 묻는다.

  “ 내 이상형은 당신이었나 보지”

  서윤이 농으로 받는다. 둘은 그렇게 스스럼없이 농을 주고 받는다. 영민과는 이거였어. 이런 사이. 섹스가 필요없는 사이.

  둘은 오누이처럼 벼룩시장을 뒤진다.  나무가 썩어서 벌레가 나올거같은 프렌치뷰로를 100달라고 한다.

   “사줄까?”

   “사줄래?”

  돌은 다시 천진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영민의 차를 타고 서윤의 오피스텔로 와서 커피를 마신다.

  “ 혼자 늙어가는거 심심하지 않아?”

  그제야 생각난다 서윤은 

 “컴 업데이트 좀 해줘”

 “뭐야 그러려고 나 뎆구 온거야?”

  하곤 서윤의 노트북을 켜는 영민. 영민의 손가락은 언제봐도 곱고 귀하다. 

  정확히 저녁 8시, 영민이 가겠다고 일어난다. 바래다줄게, 하며 서윤이 뒤따르고 노트북 화면은 켜진채다.


  “니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어. 다른 여자를 만나도 봤지만 지윤서 널 잊을수가 없었어”

  지훈이 마른 세수를 하며 말한다.

  “그때 널 택했어야 하는데 ”

  “ 뭐가 걸렸던가요?”

  서윤은 답을 안다. 입사동기의 전처라는게 걸렸겠지 무엇보다. 지금도 수시로 부딪치면서 회사생활하고 있을 영민의 전처라는게. 그리고 어쩜 권력자가 아닌 무명 화가의 딸이라는게.

  “나도 가끔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았어. 갈래”

  하고 서윤은 일어선다. 지훈이 따라 일어나며 서윤의 한팔을 잡는다.

  “올라가자  위로”

  위엔 룸이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앉고 둘만의 욕정을 불사를 오붓한 룸. 하지만 서윤은 도리질한다. 안된다고. 그럴수 없다고. 하지만 이미 지훈은 서윤의 어깨를 안고 엘리베이터앞에 선다. 그리고는 서윤의 손을 가만히 쥔다. 손이 차다. 그가 말한다. 여전히 손이 차다고.     

 “너 미쳤어? 이젠 유부남이야”

  민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윤을 타박한다. 얼마전 방역단계가 격하돼 민정의 까페는 다시 손님을 받기 시작하고 띄엄띄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서윤이 글쓰기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때 흔쾌히 아르바이트  자릴 주던 민정. 그녀가 마치 피붙이라도 되는양 서윤을 꾸짖는다.

  “이제 다시 만나서 어쩌려구?”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없어. 그냥...그사람이 좋아. 지난 5년간 황폐했던 나를 제자리로 돌려놔줬어 ”

  “차라리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해”

  “안그래도 쓴거있음 보여달라고 .”

  “그래, 그렇게 관계를 이어가야지,  정 서로 놓을수 없다면”  

  그순간 서윤의 머리엔, 의뢰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대필 원고를 빨리 마무리짓고 극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세간엔 파경설이 파다한 연예인 K부부의 이야기. 서윤은 그들 부부의 소속사로부터  보도자료수준의 내용 몇가지를 받았다. 그들의 연애, 결혼, 현재의 단란한 부부생활까지. 발리에서이 광고촬영차  첫만남, 이후 같은 드라마에 캐스팅,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연인으로 발전, 그후 두세번의 열애설 부인, 그리고 마침내 결혼, 첫아이 임신과 유산, 그로인해 더욱 돈독해진 부부간의 정, 6개월후 재임신, 그리고 순조로운 출산과 그걸 기념하기 위한   유럽여행계획, 그러나 펜데믹으로 인한 무기한 연기, 이것이 이야기의 골자였다. 그래도 한번은 당사자들을 만나야 하지 않냐는 서윤의 말에 소속사는 그냥 쓰기만 하라고 했다. 세간에 퍼진 파경설이 사실일거라고 서윤은 생각한다. 하지만 캐스팅과 광고가 걸려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모든걸 반박하는, 흐려놓는 증거아닌 증거가 필요했으리라. 물론 저자이름은 K로 나간다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드라마가 끊어지면서 간간이 들어오던 문예지 소설 청탁도 끊기고 생계가 막막하던 차에 들어온 제안이라 서윤으로선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그 돈이면 밀린 월세가 해결된다는 단 한가지 생각뿐.          

  5년만에 지훈과 밤을 보낸후 서윤의 대필속도는 몰라보게 빨라지고 슬슬 자료에 허구를 덧입혀 세상에 둘도 없는  잉꼬부부의 탄생기를 써낸다. 그러다 밤을 샜든가, 파도소리 전화벨이 울린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서윤은 지훈의 전화임을 확인한다. 서윤의 가슴이 뛴다. 그와 밤을 보낸지 딱 보름만의  전화다. 어쩐지 선뚯 받지 못하는 서윤. 전화벨이 끊기고 서윤은 불안해지고 후회스럽다. 그순간 챗이 온다. 집 앞이고. 잠깐 얼굴좀 보자고. 서윤은 쌀쌀한 새벽 공기는 아랑곳없이 덧옷도  입지 않은채로 달려나갔다.

  원룸앞에 지훈의 파란색 차가 서 있다. 서윤을 본 지훈이 내린다. 서윤이 머뭇거리자 지훈이 다가와 그녀를 가만히 안는다. 여태 안자고 있었냐고 묻는다. 일하고 있던 중이라고 말하는 서윤. 둘은 그렇게 서윤의 방으로 들어간다.     


   영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윤으로부터 지훈과의 이야기를 들을줄은  상상도 못한 그런 표정이 된다.  

   “언제부터였어?”

  그 물음에 서윤은 차마, 처음 본 순간 부터였다고는 답하지 못한다.

  “같이 일하다가”라고 얼버무린다.

  “그랬구나”

   하고 영민이 담배한개비를 꺼내 입에 문다. 서윤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영민은 태우지도 않은 새담배를 비벼서 꽁초를 만든다.

  “당신 사생활인데 뭐. ”

  영민답다고 생각한다 서윤은. 이런 반응을 예상해서 서윤은 털어놓을수 있었으리라.

  “이제 작품도 자주 하겠네?”

  영민이 맥줏잔을 비우며 씩 웃는다.

  “몰라. 쓴거 있음 보여달라는데”

  “좋네. 일도 하고 연애도 하고 ”

  그후로도 영민은 달라진게 없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와 등산을 가자는 그의 제안은 언제나 담백했다. 영민은 심플한 등산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서윤의 집 앞에 차를 댄다. 그러면 서윤 역시 자그만 배낭을 메고 집에서 나와 그 차에 오른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리면 산이 나온다. 주말이어서 인파가 몰리지만 둘은 개의치 않는다.  첫 번째 돌탑까지가 20분, 두 번째가 40분, 그리고 약수터와 사찰이 있는 정상까지가 한시간. 둘의 코스는 늘 같았다.

  그럼 영민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와이프에게 보여주겠다며. 산정상에 오른걸 확인시켜주고싶고 남자들은 그런데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그러면 서윤은 정성껏 찍어준다.  언젠가 영민은 함께 찍자고 했지만 서윤이 거절했다. 그것만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와이프한테, 나 오픈하면 안돼?”

  산에서 내려와 콩비지를 먹으며 서윤이 먼저 운을 뗀다.

  “오픈?”

  “응, 와이프가 싫어할까?”

  “글쎄, 우리가 무슨 사이나 돼? 아무짓도 안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아닌가?”

  “그런가?”

  “사실이 그랬다. 둘은 아무사이도 아닌거다.          

  ” 니 둘 정말 아무짓두 안해? 그래도 한때 한이불 덮던 사인데?“

  민정이 못믿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응, 하고 서윤은 싱겁게 웃는다. 전혀, 라며 덧붙인다. 그게 뭐야, 하고 민정이 못믿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와이프가 알면, 하고 서윤이 머뭇거리던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상상하지 않을까? 그렇고 그런 그림을? 

  둘은 해답이 없는 선문답같은 대화를 이어간다. 잘 생각해, 하고 민정이 대화를 마무리한다.

  민정과는 여고동창이다. 3년내내 같은반이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민정은 여고 졸업후 곧바로 개인회사 경리로 취직해 돈벌이에 나섰다.그렇게 2년을 보낸후, 한밤중에 서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결혼해.  소개시켜줄게.

   그리고 다음날 만난 민정의 예비신랑 최.는 사람 좋은 인상에 훤칠한 키를 가진 호남형이었다.

  나 임신했어, 하고 민정이 털어놓는다. 그말에 남자가 민정의 손을 잡아준다. 남자는 작은 까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바리스타를 겸한 까페 사장. 둘은 얼마후 식을 올렸고 그러고는 서너달후 사내아이 훈.을 낳았다. 이모이모, 부르는 훈. 이 서윤에겐 친조카 같았다. 그리고 이듬해 둘째를 임신한 민정. 이번엔 딸이면 좋겠어, 하던 그녀의 말대로 둘재는 딸이어서 란. 이란 이름지었다. 그렇게 해서 서윤에겐 조카 둘이 생겨났다. 훈과 란. 외동으로 자라나 피붙이의 정을 받아본적이 없는 서윤으로선 조카를 만들어준 민정이 고마웠다.          

  첫 번째 사정을 한뒤 지훈은 길게 담배를 피운다. 왜? 하고 서윤은 묻고 싶지만, 지훈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자기말야“

 ”응?“

 ”자기가 위에서 하는건 어때?“

  지훈이 담배를 눌러끄며 서윤의 벗은 몸을 자기 위로 끌어올린다. 서윤은 그가 원하는 것을 알지만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체위라 당황한다.

  ”무릎을 꿇어, 그리고 “

  하며 자기의 페니스를 서윤의 질 속으로 넣는다.

  ” 이제 하면 되는거야 “

  서윤은 어정쩡한 자신의 모습에 수치감을 느낀다.  지훈은 눈을 감는다. 욕망을 충족시켜달라는 저 간절한 표정. 서윤은 무릎을 꿇은채 앞뒤로 몸을 움직인다. 작은 신음소리가 지훈에게서  새어나온다. 더 빨리. 더 세게. 지훈은 요구한다. 지훈의 요구대로 서윤의 몸이 움직이며 자그만 가슴이 출렁인다. 지훈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두손으로 서윤의 가슴을 움켜쥔다. 가슴에 저릿한 통증을 느끼는 서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거친 숨을 내쉰다.둘은 그렇게 절정에 달한다. 호텔밖의 이지러진 달도 민망해서 엿보기를 그만 둔다.

  그렇게 두 번째 사정을 한 지훈은 또 다시 담배를 피운다.

  ”영민이한테 왜 얘기한거야?“

  서윤은 말문이 막힌다. 영민이 지훈에게 둘의 관계에대해서 거론했다는걸까.

  ”난 그냥...“

  ”왜 쓸데없는 소릴해서 ...“

  ”미안. 자기한테 뭐라구  해?“

  ”아니...근데 자기집에 드나든다면서?“

  ”가끔 , 등산 가자구 와. 아님, 지나가는 길이라구...이상한 상상하지마“

  ”안해“

  하고 웃으며 지훈은  본래의 체위로 돌아간다.. 그리고 속삭인다. 서윤의 귀에 대고.

   ”자기 재능있어 보기보다“

  서윤은 얼굴이 달아오른다.          

  ”웬 고기야?“

  지나가던 길이라며 들른 영민에게 서윤은 준비해둔 스테이크를 내놓는다.

  ”나도 좀 잘 먹으려구“

  그러자 영민이 웃으며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음...맛있다“

   ”정말?“ 

   ”응, 정말 “

  하며  영민은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날 지훈은 컴퓨터에 새 프로그램을 깔아주겠다며 usb를 꺼낸다. 글쎄, 내가 쓸일이 있을까?  일단 깔아둬. 요긴하게 쓸테니까. 그리고 쓸 때 다 내 생각할거 아냐. 

  ”뭐야 마지막 인사처럼? “

  ”우리, 잘까?“

   서윤은 영민의 그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농담이야“하고 영민은 컴퓨터 작업에 몰두한다. 영민을 돌려보내고 서윤은 착잡한 심정이 돼서 그말을 곱씹는다, 같이 자자던 영민의 말을. 무슨 뜻이었을까? 한번도 그런적이 없는 사람이...

 다음날 아침 일찍 서윤은 영민에게 전화한다

  ”어제 그 말“

  그러자 영민이 싸늘하게 대답한다, 바쁘다고.

  ”아, 미안.“

  ”당분간 바빠서 못가“

  하고 영민은 전화를 끊는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했을까, 서윤은 자신에게 되묻는다. 애초에 섹스리스 관계가 아니었든가.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

  그러고는 그날밤, 영민의 차가 집앞에 서 있음을 서윤은 보게 된다. 대필 원고를 소속사에 넘기고 홀가분하게 귀가하던 그 시간에.

  영민은 서윤을 보자 타라고 한다. 바쁘다며? 서윤이 살짝 피하는 눈치를 보이자 , 응, 바빠, 오래 못있어. 하고 대꾸하는 영민.  그럼 다음에 시간있을 때 들러. 

  그때 서윤의 등뒤로 들려온 말

 ”너 석녀 아니었어?“

  ”뭐라구?“

  하며 돌아보는 서윤의 얼굴이 화석처럼 굳어진다.

  ”아니,지훈이랑 잤다고 해서 “

  서윤은 모멸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영민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학과 선배로부터 아는 동생이라고 처음 소개받아 결혼이야기가 오갈때까지 영민에게 강한 끌림같은건 없었다. 그저 영민이 먼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해오고 가슴을 매만지고 그랬을뿐, 이 남자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그리고는 남아있던 일말의 연민 내지는 동지애 같은 감정마저 지훈을 보는 순간 완전히 사그라 든 것이다.

  영민은 시동을 건다. 어디 가는거야? 그러나 영민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10여분을 달려 외진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 무슨짓이야 이게“

 ”니가 석녀가 아니란걸 확인해야겠어 “

  ”뭐라구?“

  하고 서윤은 문을 열려하나. 하지만 영민이 거세게 서윤의 팔을 움켜쥔다.

 ”그 새낀 되고 왜 난 안되는데?“

  아, 이런 사람이었든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한테 지훈과의 관계를 털어놨단 말인가, 서윤은 강하게 영민을 뿌리치고 차에서 내려 바깥으로 달린다. 야. 지서윤!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불러대는 영민이 이젠 끔찍하다.

  호텔밖으로 나온 서윤은 민정에게 전화를 한다. 도와달라고.          

  민정의 남편이 아이들과 자겠다며 자릴 비켜준다. 민정과 서윤은 마주보고 눕는다.

   ”넌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난 정말 몰랐어.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지 “

  ”그래서 어떡할거야?“

  ”다 끝났지 뭐 “

  ”니들 친구로는 참 좋았는데. 나 한편 부러워했다?“

  ”정말?“

  ”응.“

  하고 민정이 서윤을 다독인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그리고는 다음날 민정은, 서윤이 집을 비운 사이, 냉장고에  밑반찬을 잔뜩 넣어두고 간다.  고마운 친구.          

  서윤의 1,2부 원고를 다 읽은 지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왜, 맘에 안들어?“

  ”자긴 말야, 단순히 말하면, 하이틴 소설같아 “

  ”어디가?  어떤 점에서?“

   ”남자를 모르는것도 아니잖아 “

  그말에 서윤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훈도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아니 내 말은...조금 더 대담하게 쓰라는거지. “

  ”그래도 지상판데“

  ”수위조절은 내가 하니까 자신 그냥 맘 가는대로, 나랑 한 대로 쓰면 돼“ 

  ”우리...결혼할순 없을까?“

  그말에 지훈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니었구나 그런게 “

  ”가능할수도 있지 “

  가늠할수 없는 이 남자의 속마음. 진실은 뭘까, 서윤은 궁금해진다.

  ”올라갈까?

   서윤은 기계적으로 먼저 일어난다. 둘은 언제나 그랬듯이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그러나 더 이상 그녀의 손을 잡지 않는 그. 손 차다, 이말이 너무도 그리운 서윤.

  그날밤 지훈은 서윤의 손발을 벌려 침대에 묶는다. 꼭 이래야만 해? 심심하잖아. 뭐가? 그냥. 의미없는 말들이 섹스가 되고 그 섹스는 바람이 된다. 살짝 열려있는 창틈으로 새어나가는 바람.          

 “미안해요. 우리 허락도 없이 파경설을 인정해버려서. 그래서 책은 쓸모가 없게 됐네요 ”

 아침 일찍 K부부의 소속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회사로 나와달라는 말에, 드디어 고료를 받나보다 싶어 택시를 타고 달려간 서윤은 날벼락같은 소릴 듣는다.

  “우리도 몰랐는데 K는 이미 딴 살림까지 차렸더라구”

  “그래도, 제가 쓴 보상은”

  “그럼요, 드려야죠”

  하며 봉투를 건넨다. 봉투안의 5만원권이 몇장 되지 않는다. 한달치 월세도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이러심 안되죠”

  서윤은 발끈한다 . 최소한 절반은 달라는 말에, 우리 계약서 썼든가요? 하며 상대는 비웃듯 입가를 씰룩인다. 그리고 덧붙인다.

  “지금보니 지작가 미인이네, 남자좀 붙겠어 ”

  그말에 서윤은 자릴 박차고 나온다. 왜 이런 결과를 상상하지 못했을까? 고료 전액을 받으리라고 너무도 당연한 기대를 품었던 자신이 한심해진다. 이제 남은 희망은 지훈에게 준 원고뿐이다. 그래 고치자. 그의 말대로 남자에 대해 모르는 숫처녀도 아닌데, 자극적으로 쓰자, 서윤은 이를 악문다. 그리고는 몇날며칠, 1,2부를 수정한다. 그 사이 여주는 순박한 아가씨에서 요부로 변신하고 키다리 아저씨처럼 늘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던 남주는 섹스 파트너로 바뀌어간다. 서윤은 웃는다. 자신에게 이런 성향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처럼 . 그리고는 지훈에게 원고를 보여준다. 알몸상태의 지훈이 몹시 흡족해한다. 됐다 이제,  모두 12부작이니까. 고료가 들어오면  한동안 먹고살 걱정에선 벗어난다.

  그날 지훈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서윤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전화하겠다며. 서윤은 기대감에 부풀어 , 첫 촬영때 현장에 가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택시에 올라 차문을 닫으려는데 밖에서 지훈이 먼저 문을 닫는 바람에 지난번 탈이 났던 손가락이 문틈에 끼인다. 아! 단말마의 비명소리. 그러나 지훈은 모른다. 택시는 출발하고 서윤의 손가락에선 피가 흐른다.          

   민정이 저만치 놓여있는 원고를 가져온다. 그것을 서윤 앞으로 밀어놓는다.

  “이게 뭐야?”

  “뭐긴, 원고. 잘왔네 마침. 이거좀 전해줘”

  ”뭔데 이게?“

  ”보면 모르니? 원고지. 수정고“

  ”뭐? 수정...무슨 얘기야?“

  ”왜, 넌 되구 난 안돼? 이혼녀에 것두 모잘라 상간녀주제에....”

  “민정아, 너..”

  “이거 한 PD 한테 주면 알아”

  서윤의 시선이 허공을 헤맨다.

   “넌 늘 그랬어. 당연한듯 나한테서 받아갔어. 이것저것, 너무도 당연하게”

   “니가 좋아서 한거 아니었어?”

   “헛똑똑이”하고 민정이 비웃는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바닥은 널린게 원고야. 니게 될줄 알아? ”

   ‘‘지난번에 너 혼자  보낸날, 그 사람 누구 만난줄 알어?”

  그날이다. 지훈이 거세게 택시문을 닫던 그 날. 그래서 다친 손가락을 한번 더 다쳐야 했던. 서윤은 차라리  소리내 울고싶다. 모두에게 기만당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섹스가 있다고 해서  남자가 언제까지 충실할 거라고 생각해?”

  서윤은 참지 못하고 민정의 뺨을 때린다. 그 모습을 본 최.가 황급히 달려온다.

  “무슨 짓이예요!” 하며 민정의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미쳤어. 당신들 미쳤어!” 

  하고 서윤은  까페를 뛰쳐나간다. 그 뒤에서 자길 비웃는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둘이 늘 보던 장소에서 서윤은 지훈을 만난다. 지훈은 적잖이 머쓱한지 서윤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게, CP가 퇴짜를 놔서”

 “당신이 그렇게 쓰라고 ”

  “내가? 이건 지상파야. 무슨 소릴  하는거야. 당신, 그렇게 밝히는 여자였어?”

  “뭐?...그럼 왜... 민정인”

  “어느날 전화를 했더라구. 원고 쓰고싶다고. 자기 친구라며”

  “그래서 써보라고 했지, 그랬더니 제법 쓰대? 아마 이번 작품 그사람 거...”

  “...우리 사랑은 어떡해?”

  “사랑? 그거 섹스 아니었어? 사랑이라고 하려면 최소한 전남편을 집에 들이진 말았어야지”

  “뭐? 아무일도 없었다고 했잖아”

  “내가 봤어?” 

  “더러운 자식, 너 이바닥에서 매장시킬거야. 두고봐. 더러운 새끼!” 하고 서윤은 자릴 박차고 일어난다. 그 순간 서윤의 뒤통수에 대고 그가 말한다. 위로 올라가자고.     

  여의사는  서윤의 덧난 손가락을 보며, 한번 다친덴 쉽게 다친다며 째야 한다고 한다. 염증 때문에 서윤의 손가락은 검푸르게 멍들어있다.

  서윤은 처치대에 앉는다. 처치전, 지난밤 자신을 윤서라고 잘못 부른 그 간호사가 준비를 한다. 이어서 여의사가 들어온다. 부분마취할게요. 하곤 손가락에 주사를 놓는다, 악,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여의사는 손가락을 째기 시작한다. 서윤은 그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손바닥만한 처치실 창밖으로 작은 새 한 마리가 파다닥 날아오르는게 보인다. 그 와중에도 민정이 썼다는 그 원고가 궁금하다. 어떤 내용일까, 제목이 뭐였더라. 지훈에게 전해졌을까..그러고 있는데, 다 됐다,는 여의사의  음성이 구원처럼 들려온다. 상태확인을 위해 다음주에 다시 오라며 여의사가 나간다. 서윤이 처치대에서 내려오려하자 간호사가  아직 한가지 더 남았다고 한다.

  “뭔데요?” 

  “피부 재생 레이저 쏘실게요 ”

  피부 재생 레이저. 그말이 깊은 울림으로 와닿는다. 정말 새살이 돋을까? 서윤은 자문하며 처치대에 다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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