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안되면 혼자살자, 윤수는 그리 마음먹는다. 결혼이 될듯될듯하다가도 늘 막판에 어긋나거나 틀어져버린게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유난히 잊히지 않는건 대학동창 경미의 케이스다. 둘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만에 우연히 영화관로비에서 마주쳤고 그날 저녁을 먹은뒤 자연스레 다음 약속을 잡았다. 남들이 하듯 그렇고 그런 과정과 갈등을 겪고 이겨내면서 상견례까지 갔는데 윤수의 모친과 경미의 부친이 예전에 집안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한 , 무슨 드라마나 영화같은 사연을 갖고 있어 깨진 경우다.
둘다 최대한 부모들을 설득해보았지만 허사였고 둘은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헤어질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두달후 경미로부터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마도 마음을 추스리려고 서둘렀나보다 하면서도 그날 윤수는 밤새 술을 퍼먹고 그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떠야했다.
그런가하면, 그렇게 경미와 헤어진 뒤 들어온 맞선 자리에서 윤수는 바람을 맞았고 그때 등을 맞댄 자리의 여자도 역시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동병상련이라고 둘은 합석을 했고 거나하게 술을 퍼마시고는 그날밤 모텔로 직진하였다. 그렇게 원나잇으로 헤어진 뒤 윤수는 그녀 은진을 잊고 지냈는데 한달후 그녀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문자를 받는다. 임신이라는...
그렇게 다시 만난 둘은 서둘러 결혼과정을 밟았는데 상견례를 코앞에 두고 은진이 접촉사고를 일으켜 유산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또 가져도 된다고 그녀를 위로하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순전히 아이때문에 결혼결심을 했던거라며 매몰차게 돌아서서 그 결혼도 깨져버렸다.
그외에도 좀 끌리는 상대가 나타나서 연애에 들어가면 훼방꾼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막판에 여자가 변심하거나 집안에서 반대해서 나이 마흔을 코 앞에 둔 윤수는 여태 혼자다.
해서 , 이번에도 안되면 아예 '비혼'으로 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무엇하나 남에게 빠지는것도 없는 자기가 허구한날 여자문제로 열패감에 시달린다는것도 싫지만 그러다보면 삶 자체가 부조리하게 여겨져 도대체 살맛이 나질 않는다. 그냥, 가볍게 연애만 하고 살자, 남자의 본능이 발동하면 그때그때 해소나 하면서,라고 그는 다짐한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30분이나 늦은 여자는 앉자마자 "아파트 있으신가요?" 라고 묻는다.
이 여자봐라? 윤수는 더 볼것도 없고 끌것도 없다싶어 있는 아파트를 없다고 거짓말 한다. 그러자 여자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지더니, 실은 자기가 조그만 오피스텔을 하나 갖고 있으니 일단은 거기서 시작하는게 어떻냐고 한다. 어라? 이 여자 뭐지? 하고는 '그게 좀 그렇지 않나요? 아무래도 집은 남자가'하자 여자가 생긋 웃어보이며 '요즘 그런게 어딨어요'라며 가방에서 콤팩트를 꺼내더니 마치 오래 된 사이처럼 내놓고 화장을 고친다. 이 여자 좀 신기하네..하며 윤수는 조금씩 그녀에게 끌려간다.
홍성은. 그녀는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을 세내서 동창과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코흘리개들 가르치면서 언제 오피스텔은 샀을까, 그게궁금하다. 윤수가 그런 눈치를 보이자, '학원 수입은 얼마 안되고 따로 과외를 해요..입시과외'라면서 그녀가 웃는데 그 모습이 윤수의 애간장을 스르르 녹인다. 순간 그는 한동안 억눌렀던 남성의 본능이 되살아남을 느끼고는 당장 그날밤 이 여자를 가져야겠다 생각한다. 해서 저녁을 같이 먹고 여자가 헤어지는 인사를 할때 바래다주겠다고 떼를 쓰다시피 한다. 성은은 괜찮다고 계속 사양했지만 결국에는 윤수의 차에 올랐고 그렇게 둘은 성은의 오피스텔이 있는 일산으로 향했다.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안으려는 윤수에게 성은은 처음엔 저항을 하였지만 이내 그를 받아들인다. 마치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처럼 느긋하면서도 격정적인 섹스를 마친뒤 윤수는 '결혼합시다'라고 말하고 성은의 반응을 살핀다.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한번 잔 걸로 뭔 결혼?'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러다 이 여자를 놓치겠다는 생각이 든 윤수는 '실은 마포에 20평대 아파트가 자기 명의로 하나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말에 여자는 뚫어지게 윤수를 쳐다만 본다. 가타부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 여자, 내가 맘에 안드는구나,라고 판단한 윤수는 마지막 무기를 들이댄다. 요즘 여자들이 애 낳는걸 싫어한다는 설문조사를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난다. 해서, '애는 없이 살아도 된다'라고 힘을 주어 말한다. 그말에 성은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정말요?'하고 묻는다. 통했다...윤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윤수는 그래도 상견례는 해야 하니 다음주말에 하자고 떼를 쓴다. 성은은 너무 빠르다고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결혼의 기회가 없어보여 윤수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주일후 양쪽 상견례가 이루어졌다. 양가부모 모두, 자식들에게 애인이 있는줄 몰랐다며 놀라했다.
그리고는 예식을 한달뒤로 잡고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처음엔 좀 데면데면해하던 성은도 차차 그를 반기게 되었고 그의 품을 편안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번엔 성공이라는 생각이 그를 스칠 즈음, 성은이 조심스레 말을 꺼낻다
"실은 예전에 한번 갔다왔어요"라고.
그말에 윤수는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하다. 분명, 소개를 주선한 대학선배 지원의 말에 의하면 '참한 아가씨'였는데 '아가씨'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닌가..
"아...그랬군요"라고 윤수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높이고 있다. 이미 거리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얘도 하나 "라는 성은의 말에 윤수는 기함을 한다. 결혼을 했으면 부부관계라는 걸 했을테고 그러면 아이가 생기는건 지극히 당연한 건데도 윤수는 그 '아이'까지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있었군요"그는 이미 모든 기대와 희망을 내려놓은 투로 말을 한다.
"윤수씨 마포 그 20평대 아파트면 우리 셋은 충분히..."이라고 성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수는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게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려한다.
"실망했군요 나한테"라며 그녀가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그렇게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그녀를 두고 윤수는 오피스텔을 나와 자기 차에 오른다...
내 팔자에 무슨...것도 무슨 처녀장가를 간다고...하며 그는 거칠게 차 시동을 건다. 그러고 있는데 보조석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가 옆을 보자 성은이 울먹이며 애원한다. "한번만 봐주면 안돼요?"라고.
그날 그녀가 보인 눈물이 설령 악어의 눈물이라고 해도 그는 이제 그녀의 과거따위는 묻고 가기로 하였다. 어어찌되었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그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장가라는 걸 가서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남들처럼 살수 있는 마지막 기회...그리고는 예정대로 결혼을 추진한다. 예식 일주일전 세를 내보내고 부분소리를 한 뒤 입주청소까지 마친 그 마포 아파트를 성은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함박 웃음을 웃으며 좋아라 하였다. 내 자식 낳고 살면 되는거다,라고 그는 자신을 추슬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빈'이라는 그녀의 아들을 만난다. 성은은 '새아빠'라고 그를 소개했고 아이는 수줍어했다.
신부가 늦어도 너무 늦는다는 생각이 든다. 예식이 시작될텐데.
해서 윤수는 축의금을 내며 덕담을 해오는 하개군단을 부모에게 맡기고 저만치 구석에 가서 성은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성은의 전화는 꺼져있다. 이 무슨 뜻일까...이번에도 얼그러지는 걸까? 그러고 있는데 그에게 문자가 날아온다.'미안하다'고.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그말에 윤수는 화가 치민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비상구로 7층을 뛰어내려간다. 그리고는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자기차에 올라 다급히 시동을 건다...
성은은 드레스차림으로 오피스텔에 웅크리고 있다. 불도 켜지 않은채...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허겁지겁 그가 들어서자 그녀는 잠시 그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당신이 내켜하지 않는거 같다"면서 그녀는 드레스를 벗으려 한다.
윤수는 그녀를 덥석 포옹하며 "사랑한다"고 자기가 생각해도 신빙성 1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자 그녀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피식 웃는다...
그 미소의 의미를 그는 알수가 없다...
그러더니 그녀는, 자신은 한번도 결혼한적도 없고 아이도 없고 그때 나온 빈이는 언니 아들, 즉 조카라고 한다. 그말에 윤수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된다. 당신이 하도 서두르길래 한번 떠봤다고 말한다. 그의 마음이 진심인지 알고 싶어서...그리고는 그녀가 결심한듯 말을 이어간다. 한달만 만나보자고. 그말의 의미 역시 윤수는 알수가 없다. 한달, 천천히 서로에게 시간을 주어가면서 천천히 알아가자고 그녀가 말한다. 그러더니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그말에 윤수는 와락 그녀를 안는다. 필요없다고. 한달의 유예기간따위는 필요없다고. 이미 당신을 사랑한다고 한다.
보조석의 성은이 멀미가 난다고 해도 그는 이미 늦어버린 예식이라 최대한 속도를 높일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저만큼 예식장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쯤 양쪽 하객이며 부모들이 당황할걸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차에서 내린 그는 덥석 성은을 안아들고 7층까지 뛰어올라간다. 그의 품에서 발버둥치는 성은에게 그가 살짝 입을 맞춘다. 그러자 성은은 마치 아기새처럼 그의 품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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