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일격

by 박순영

이 여자도 어지간히 딱하게 사는구나 싶다. 은탁은 늘 그녀 혼자 써대는 문학까페 <문학의 날개>에 어젯밤 올려진 글을 보고 그녀가 새삼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해진다.



은탁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외국계 회사에 취업이 돼서 이른바 '탄탄대로'를 걸어온 전형적인 엘리트라고 할수 있다.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반나 속도위반 없이 '정상결혼'을 하였고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딸 수진을 낳았다. 남보기에 하나도 부족하거나 할 게 없는 그가 어느날 문득 책장 정리를 하다 사춘기시절 갈겨 쓴 시며 소설을 보면서 훗, 하고는 포털을 검색하다 <문학의 날개>라는 촌스럽고 레트로한 제목의 까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아하니 문학외에 문화, 예술, 여행등등 다루는게 많아서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덜커덕 가입이란걸 한 뒤 게시글을 읽어보니 99%가 까페 주인 '아이린'이란 닉네임의 여자로 글들이었다. 이거 뭐야...이러면 번개고 뭐고 사람들 만날 확률도 없잖아,라면서 슬쩍 '우리 번개하죠?'라고 글을 올렸지만 그 밑엔 그 어떤 호응이나 반대의 글도 달리지 않아 머쓱해하며 글을 지우고 한동안 그 까페를 잊고 보냈다.



그러다 며칠전, 아파서 하루 결근한 동안 누워서 폰을 뒤적이다 잊고 지낸 그 까페가 생각나서 들어가보았더니 그속에서 '아이린'은 딱히 그렇다는 얘기는 없지만 아마도 지독한 실연을 당한듯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 있다. 이렇게 남이 안되길 비는 세상에 저런걸 올리면 뒤에서 다들 흉보는데, 라면서도 그녀가 궁금해졌다. 어떤사람인지 나이는 몇이고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그리고는 사진방을 무심코 클릭하였더니 앳된 여자의 사진 하나가 아무 설명없이 떠있다. 이 여자가 '아이린'인가? 그는 그녀의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서른 초반의 귀엽다면 귀여운 이목구비와 약간 통통한 볼이 아직 그리 나이들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는 동안 아까먹은 약기운도 돌고 그는 한없이 늘어지는 기분이다. 이러면 안되지, 하고는 그는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지라도 돌아볼까 하고는 패딩을 걸치다 살짝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어차피 응답하지 않을테니.... '만날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 명륜동인데 서로 멀지 않으면...멀어도 차를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그는 '아이린'에게 쪽지를 보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쪽지를 확인한걸로 떠도 '아이린'에게서는 그 어떤 대답도 없다.

그럼 그렇지 하고는 방문을 여는데 띵동, 쪽지 알람이 울린다.

'저도 명륜동에서 멀지 않으니 한번 뵐까요?'라는 내용의 답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둘은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

"왜 번개 한번 안하세요?"라는 그의 질문에 '아이린'은 "번거로워서요"라고 답을 한다...

"죄송하지만, 성함좀 알수 있을까요? 그쪽은 내 이름 알테고"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회원정보를 통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최은탁, 쌤이시죠?"라는 그녀의 말에 은탁은 훗, 웃음이 나온다. "저, '아이린님' 가르친 적 없는데 쌤은 무슨..."이라며 그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신다.


허연경이라는 적당히 이쁜 이른의 '아이린'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보다도 3살이나 연상이었다. 현재는 프리랜서 기고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산다고 한다. 나이를 빼고는 그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아무래도 글관련 일을 하니 문학까페를 냈을테고 글쟁이라니 변변한 직업이 있을 확률도 없다고 생각한게 들어맞은 셈이다.

"연경씨 글 읽다보면.."

"제가 주책이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다 털어놓으니.."

"그렇게 남자가 필요해요?"라고 그가 돌직구를 날려본다.

순간 연경의 얼굴이 굳어버리고 만다. 그 순간을 은탁은 놓치지 않는다. 그런류의 여자가 아니구나 싶다...

그녀는 일어서며"죄송해요. 알바 시간 다 돼서"라며 그 자리를 뜨려한다. 은탁은 얼른 그녀의 한팔을 잡는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담에...까페에서 또 봬요. 글좀 올려주시고요"하고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이렇게 저 여자를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에 은탁도 서둘러 까페를 나온다.

연경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은탁은 자기 차를 빼서 그녀를 뒤쫓아간다.

"추워요. 타요"라며 그가 차를 세우고 조수석 문을 열자 연경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그 문을 쾅 닫아버리고는 걸음을 빨리한다.

순간 은탁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오랜 알아온 여자를 무참히 짓밟은거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는 속도를 내서 그녀를 따라잡아 거의 강제로 그녀를 차에 태운다.

"지금 무슨 짓이죠?"라며 그녀는 경찰에 신고라도 할 기세다.

그는 그녀의 폰을 뺏으며 "안심해요...바람이나 쐬고 오죠"라며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둘러준다. 그리고는 가속페달을 밟아 달리기 시작한다.


겨울환상.png


그렇게 명륜동에서 한시간 남짓 달려 그는 얼어붙은 강 언저리에 차를 댄다. 연경은 오는 동안 체념했는지 아무 말도 없다가 결빙된 강을 보고는 상기되는 눈치다.

"걷기에는 춥죠?"라고 그가 슬쩍 운을 뗀다. 그말에 그녀는 대답대신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다.

둘은 그렇게 약간의 거리를 둔채 겨울강변을 걷기 시작한다.

"언제 tv에서 보니까 겨울강에서 수영하는 대회가 있던데"라고 그가 말하지만 그녀는 응답을 않는다. 하기사, 납치되다시피 왔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고 생각해 그는 더이상 말을 않기로 하는데,

"우리, 만난적 있죠?"라며 그녀가 뜬금없이 물어온다.

"그거야 까페에서.."라던 그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인다.

아, 하는 짧은 탄식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가 지금 회사에 입사해 얼마 안됐을때 회식차 근처 식당에 간적에 있고 그곳은 술을 함께 하는 주점을 겸한 곳이었다. 선배들이 권하는대로 술을 받아 먹은 그가 눈을 떴을때는 다른 사람은 없이 덩그러니 혼자 말끔히 치워진 식탁에 엎드려 있었다. 그가 졸린눈을 비비며 일어날때 주방에서 한 여자가 걸어나왔다.

"계산은 다 됐습니다"라며 그녀는 그냥 가면 된다는 뜻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저때문에 문도 못 닫고"하다가 그가 아직 취기가 남아 휘청거리자 그녀가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그날밤 둘은 식당에 딸린 방에서 하나가 되었다.

다음날 그녀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그녀를 데리고 이곳에 온것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강을 쳐다보며 은탁은 연경의 어깨를 한팔로 살포시 안아주었다.그러자 연경은 "우린 계속 가나요?"라고 물었고 은탁은 "그럼"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녀를 잊었고, 아니 생각이 났는데도 그녀를 찾지 않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다 그녀를 완전히 잊어 까페 사진방에서 그녀를 보았을때도 이렇게 마주했음에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것이다....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돼있다더니...


"아, 그때는...."

하고 그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자신의 배반의 세월을 떠올린다.

"남자가 필요하냐고 물었죠?"라며 연경이 싸늘하게 물어온다.

"미안...그게 다 내가 당신한테 남긴"

"맞아요. 난 여태 그 상처로 힘들어해요."라며 그녀가 난데없이 갑자기 그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윽"하고 그가 몸을 굽히는데 이번엔 그의 남성을 훅 가격한다.

그는 마침내 고꾸라져 뒹굴고 그녀는 온기라곤 전혀 없는 눈길을 보내다 그를 버리고 터벅터벅 저멀리로 사라져간다...

'우린 이렇게 다시 만날거였어..내가 제 아무리 그녀를 기억에서 지우려 해도 운명은 우릴 다시 보게 했어'라고 생각하며 그는 성기에 가해진 아픔을 애써 잠재우며 비틀거리며 일어나 이미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그녀의 흔적을 찾아 강변을 헤맨다....

그때 봄을 알리는,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물안개가 피어난다...


그날밤,그는 까페에라도 사과의 말을 남기기 위해 까페를 클릭하지만 까페는 이미 폐쇄된 후였다.


버려짐.jpeg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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