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프로 <세계를 날다>의 pd라며 여자는 전화기너머에서 출연을 요청한다. 아니 요청이라기 보다는 '나와야 한다'는 식이다. 성탄 특집인데 천문학전공자인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현은 궁금하기만 하다.
"동방박사들이 별보고 마굿간까지 왔잖아요"
오라, 별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구나 하고는 그는 그게 뭐 어려우랴 싶어 출연을 승낙했다.
그렇게 의현은 pd동희와 만나게 되었다.
녹화방송이라 꽤 길게 진행되었고 녹화가 밤늦게 끝나고 귀갓길에 의현은 동희가 차가 없는걸 알고는 그녀의 오피스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희는 폐가 된다며 한사코 콜을 부르겠다고 하였지만 밤에 여자 혼자 택시에 태운다는게 영 불안하고 찜찜해 그는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그날밤 그는 그녀의 오피스텔까지 갔고 잠깐 들어와 차를 마시고 가라는 그녀의 요식적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차를 돌렸다.
그리고는 2주후, 그날 저녁 방송이 나간다며 꼭 보라는 동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밤 의현은 자신이 난생처음 tv에 나오는걸 보면서 쿡쿡 웃었다. 고지식하고 완고해보이는 전형적 '학자'의 모습에 끌끌 혀를 찼다. 방송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메시지며 전화가 걸려왔다. 너 맞아? 라고.
그 순간 의현은 pd동희가 갑자기 보고싶어진다. 만나서 저녁이라도 먹고 싶다.
동희는 이번에도 한사코 사양했지만 결국 그 다음날 방송국 로비에서 둘은 다시 만나 근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자는 의현의 제안에도 그녀는 눈길을 걷고싶다며 걸어가기를 고집했고 급기야 꽈당 미끄러졌다. 동희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고 일으켜주는 의현에게 계속 '고맙다'는 말을 해댔다.
디저트가 나올때까지도 동희는 슬쩍슬쩍 엉치부분을 매만지는 시늉을 했다.
"병원 가봐야 하는거 아니예요?" 의현이 묻자
"아뇨. 좀 뻐근해서요"라며 그녀가 부끄러워한다.
아마도 자기 또래일것이라고 의현은 생각한다. 문제는 기혼이냐 아니냐인데 손에 반지가 없다. 물론 그것으로 단정지을수는 없지만 . 미혼이길 그는 은근 기대한다.
디저트를 다 먹어갈 즈음, "제가 연락해도 돼요?"라며 그는 용기를 내본다. 그말에 동희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본다. 동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까지 시선을 모아 그를 바라본다...그러자 의현도 그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다음에 만나면 제가 사는 거예요"라고 동희는 에둘러 승낙을 한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을 잡았노라며 동희는 전화너머에서 사춘기 아이처럼 좋아라 한다. 대신 트윈베드로 잡았다는 말에서 의현은 빵하고 웃음이 터진다. 둘다 '속초'를 동시에 외쳤기에 그곳 어딘가에 펜션을 예약했다는 것일테고, 겨울 동해야 누구나 가고 싶어하니 그리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것은 서로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연인가 보다, 서른 훌쩍 너머 이제야 내여자를 만났구나,하고 의현은 잔뜩 기대를 한다.
의현은 동희가 바다를 감상할수 있도록 감속해서 차를 몬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동희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러다 문득, '왜 천문학을 공부했냐'고 그녀가 물어온다.
"그냥 별을 보는게 좋았어요. 조숙했는지..어릴때 외롭다는 느낌을..그래서 별을 보게 된거 같아요"라고 의현이 대답하자 "서울은 이제 별보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긴데"라며 동희가 시무룩해한다. 어쩌면 별것도 아닌 일에 시무룩해 하는 그녀가 귀여워 의현은 운전에서 자유로운 한손을 뻗어 슬쩍 그녀의 손을 잡는다. 동희는 잠깐 움찔하더니 그대로 자기 손을 그에게 맡긴다.
그리고 그날밤 둘은 펜션에서 한몸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의현이 눈을 떴을때는 동희가 인스턴트 음식이며 밥을 전자레인지에 덥혀서 아침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둘은 오래된 연인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아침을 먹었다. 그러다 동희가 "실은 내 고향이 이 근처"라고 한다. 그말에 의현은 "어? 나도 이 근천데"라며 신기해한다.
그렇다면 어릴적 바닷가에 나와 놀때 서로 한두번 마주쳤을 수 있고 그래서 서로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먹고 잠시 해변을 걷기로 한 둘은 불어오는 강품에 서로에게 밀착했고그러다 살쩍 몇번 입을 맞추기도 하였다.
"나, 이제 논문학기만 남겨놨거든. 그거 끝나면 유학갈건데 같이 갈래?"라는 말에 "그거, 지금 청혼?"하며 그녀가 생긋 웃는다. 그말에 그는 그녀의 찬 손을 자기 외투 주머니에 넣어서 녹여준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고 하루를 더 잤다. 두번째 밤에 의현은 그녀 깊숙이 사정을 한다. 그녀는 따로 피임을 안했다며 질외사정을 원했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그녀를 잡고 싶었다.
그리고는 올라오는 길에 의현은 길을 좀 바꿔 저수지를 지나친다.
저만치 결빙된 저수지를 보는 동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왜 그래?"
"여기가 낯설지가 않아..."
"그거야 근처에서 자랐으니까"
"아냐. 그런게..."라며 그녀는 차를 세워달라고 하고는 내려서 얼어붙은 저수지로 간다. 그리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맞아, 여기서 스케이트를 탔었어"라고 말한다.
"위험하게 왜 그랬어"
하는데, 그녀가 충격을 받은듯 휘청인다. 쓰러지는 그녀를 가까스로 붙든 의현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향한다.
눈을 뜬 동희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은 "당신 혹시 형제 있었어? 지금은 없는? 그러니까 어릴때 죽었다던가?"이었다.
그말에 의현은 기억을 모은다. 그러자 어린날 눈부신 햇살 속에서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는,
"맞아. 나 쌍둥이라고 했어 엄마가. 근데 형은 어릴때"
그말에 동희는 꽂혀있던 링거를 뺘버리고 병실밖으로 뛰쳐나간다.
영문을 모르는 의현은 일단은 동희가 지금 온전치 않다는 생각만 하면서 그녀 뒤를 쫓아간다. 병원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어둠속에서 동희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당신 형이었다니. "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어릴때 아까 그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탔었어. 그러다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물에 빠졌지. 허우적대는데 지나가던 남자애가 뛰어들어와서 나를 구했어...그리고 계는 익사했어"라고 말을 한다.
순간 의현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럼....죽은 우리 형이...하다가 그도 휘청해 간신히 병원 담벼락에 몸을 기댄다.
"아니지? 니가 다 꾸며낸 거지?"하더니 손등으로 벽을 탕탕 쳐댄다. 그러자 검붉은 피가 그의 손등에서 흘러나온다.
장례식이 있던날은 햇살이 눈부셨다. 그때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갸 어른들 틈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이는 지웠어"라며 겨울이 끝날 즈음 동희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온다.
의현은 논문 쓰던걸 멈추고 하늘로 가버린 자신과 동희의 아기가 아마도 여아였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동희를 닮아 희고 눈이 커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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