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던 밤 그들은

by 박순영

온유는 그를 다시 믿어도 되는걸까, 의구심이 든다. 지난번 이별의 파장이 너무 깊어 그녀는 거의 폐인처럼 지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간파했는지 익현은 그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쓰는게 엿보인다.


"요즘 몸이 너무 안좋아"라는 대목에서 그녀는 뭉클해온다. 아직 이 사랑이 남아있구나...

"나 또다시 상처받기 싫어"

"내가 잘할게요"라며 그는 당장 만나자고 하였다



그렇게 둘은 홍대입구 자주 가던 까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온유는 조금은 철이른 봄 옷을 꺼내 입고 화장도 정성들여 한다. 6개월만의 만남이니 아무래도 신경을 쓴 티를 내는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주말이어서 대중교통이 낫다고 판단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번에 만나면 다짐을 받아두리라..



까페엔 익현이 먼저 나와있다. 그도 온유처럼 신경 쓴 차림이다.

온유가 그의 자리로 가자 익현은 얼른 일어나 그녀의 의자를 빼준다.

"그냥 하던대로 해"라며 그녀가 말하자 "내가 언제는 안 했니?"라며 그가 헤벌쭉 웃는다.


그러나 막상 마주 하자 지난 6개월의 공백이 여실히 느껴져 둘은 데면데면해 한다.

"우리 여행 갈까?"

그가 장고끝에 내뱉은 첫마디가 '여행'이었다.

그런 그를 온유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회산 잘 돼?"

익현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웨딩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헤어질 무렵에 회사를 차려 자금 문제로 둘은 옥신각신 하다 그게 번져 서로의 인신공격으로 확대돼 결국 헤어진 것이다.

"좀 아팠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작년 이맘때 그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기억이 난다. 한밤에 토하고 복수까지 차오르고 몸을 가누지 못했고 병명은 '급성 간염'이었다. 그래서 온유가 밤새 병상을 지켰었다.

"술먹는건 아니지?"

"내가 알아서 해"라며 그가 퉁명스레 대답한다.

"어디 봐"라며 그는 예전에 자기가 준 반지를 보여달라는 시늉을 한다. 안그래도 그와 헤어진 뒤 온유는 그 반지를 빼놨다가 그의 연락을 받고 다시 그와 잘 해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끼고 나왔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서 그 반지를 확인한 그가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한사코 온유를 바래다 준다는걸 거절하고 그녀는 '오늘은 혼자갈게' 라며 택시에 오른다. 주말 저녁이라 거리는 오히려 더 한산해서 차는 막힘없이 달린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에 온유는 한참만에 비로소 나른한 행복감과 안정감에 젖는다 . 정 그가 말을 안 꺼내면 자신이 하리라 마음먹는다. 결혼하자고. 언제까지 밀당만 하고 재보기만 할거냐며 타박부터 하고는 결혼하자고 말해야겠다 생각한다.

그녀가 집에 도착해 현관을 들어서는데 익현이 메시지를 보내온다. 잘자라고. 무뚝뚝해보여도 세심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지 ,그녀는 새삼 느낀다.



"우리 조만간.."이라고 그가 심각한 얼굴이 돼서 말을 꺼낸다.

지난번 만난 이후 일주일 후 둘은 다시 그 홍대까페에서 마주했다.

이 남자가 드디어 결혼얘기를 꺼내는구나, 싶어 온유의 마음이 요동친다.

"우리 합치자"라고 익현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한다.

"왜, 결혼하자고는 안해?"그녀가 조금은 다그치듯 물어본다.

"결혼은 돈이 들잖아..."

"그냥 간단히 어른들 모시고"

"싫어 그렇게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같이 살다가 돈좀 모이면 결혼식 정식으로 올리자"라며 그가 자기 손을 테이블 건너 내민다. 그손을 물끄러미 보던 온유가 자기 손을 그 손위에 얹는다 . 그러자 그가 그 손을 힘주어 잡는다. "나 이젠 상처받기 싫어"라며 온유가 나직이 말하자 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pd황은 거의 1년만에 전화를 걸어와 10부작 미니시리즈를 하게 되었다며 온유에게 원고를 써달라고 말한다. 안그래도 꽤 오래 방송일이 끊겨 온유는 리뷰를 비롯한 이런저런 잡문을 기고하며 생활해와서 생활비도 바닥이 날 즈음이라 그런 황의 전화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익현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해 전화를 걸자 익현은 '정말?'이라며 자기일처럼 기뻐하였다. '잘 써 이번엔'이라며 제법 근엄하게 말을 하기까지 한다.


황과 만나 이야기의 얼개를 잡은 뒤 보름후까지 1,2부 극본과 시놉시스를 보여주겠노라 약속하고 방송국을 나서는데 계절은 이미 봄으로 옮겨가 있다. 오가는 행인들은 겨울옷을 벗고 얇은 트렌치 코트나 점퍼차림이었다. 봄꽃들이 금방이라도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기다리고 있는게 보이자 온유는 괜한 설음이 밀려온다. 이럴때 익현이 옆에 있었으면...그녀는 문득 그가 보고싶어진다.


"보름? 야, 너무하다. 방송작가들이 무슨 귀신도 아니고 보름안에 어떻게 그많은 걸 다 써?"

"쓰라면 써야지..."

"계약금이랑 받았어?" 라는 그의 말에 온유는 잠시 머뭇한다. 그러다, 아니겠지 설마, 하고는 그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가 뵤루퉁해지면서 "내가 니 돈 쓸까봐? 안그러다"라며 싱긋 웃는다.

이 남자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 온유는 미래 남편인 익현의 익숙한 얼굴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뜯어본다. 쌍커풀 없는 큰 눈에 적당히 높은 코, 그리고 야무져보이는 입술. 새삼 그가 잘생긴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약간의 무뚝뚝함과 필요한 말만 한다는 것도 일종의 '마초이즘'으로 그녀를 사로잡은 요소중의 하나였음을 기억한다. 한마디로 듬직하고 신뢰가 가는 남자를 남편으로 갖게 되었다는 뿌듯함에 그녀는 안도하게 된다.



"저기..."하며 그가 스테이크를 썰다말고 힘들게 말을 꺼낸다.

"뭐?" 하고 온유가 천진한 얼굴로 묻는다.

"회사가 좀 그래...요즘 다 불경기잖아."라는 그의 말에 온유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간다.

"돈은 안돼."라고 그녀가 딱잘라 거절하자

"내가 돈 달랬어? 너한테 하소연도 못해?"라고 그가 발끈한다.

자기가 좀 오버했나 싶어 온유는 후회스럽다. 그날은 그 일이 빌미가 돼 서로가 데면데면하게 헤어졌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온유는 어떻게든 사과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글이 써지질 않는다. 한참을 액정위에서 깜박이는 커저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메일 알람이 들린다. 순간 익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심각한 얘기를 할때는 메시지가 아닌 메일을 곧잘 쓰기 때문에 그녀는 조금은 불안하다. 그리고는 메일창을 열었다.

"회사가 어려워...너 이번에 계약금 탔으면 좀 융통해줄래? 곧 갚을게"라며 그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온유는 곧바로 답메일을 보낸다.

"미안. 돈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음 해. 우리 그것때문에 지난번에도 싸우고 헤어진거잖아. 아직은 우리 합치거나 결혼한것도 아니고."

그러자 그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없다.

심란한 마음으로 온유가 겨우 1부 중간까지를 쓰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드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익현이었다.

"내가 몸이 안좋다"

"또 토하고 그래?"

" ..."

그러다 익현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바람에 잠이 다 깬 온유는 아무래도 당장 익현에게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주워입고 차키를 집어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녀가 익현의 집에 거의 다 왔을때쯤 메시지가 온다.

"몸이 이렇다보니 성기능도 망가진거 같아"라는.

차를 세우고 온유는 그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본다.

그리고는 마지막 결심을 하고 물어본다.

"날 사랑은 해?"

그말에 익현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결혼이 꼭 섹스를 의미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너 한창땐데...그거 없이 살수 있어?"라는 답문이 온다.

익현이 원하는걸 정확히 알고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그녀는 차를 돌려 오던길을 되돌아간다.

그날따라 평소엔 안보이던 별들이 촘촘히 하늘에 박혀있다.


pics from googl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