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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09. 2024

그가 죽인 女子

"뭔 오피스텔?"

기수의 뜨악한 반응엥 진희는 조금은 서운하다. 언제는 가까이 살라고 하더니 막상 기수의 동네 근처에 미니 오피스텔을 얻겠다고 하니 그의 반응이 시원치가 않다.


"자기가 가까이 살라고.."

"내가? 그럼야 좋지 뭐. 이사 올거야?"

"집이 빠져아 가든 하지. 그냥 단기로 일단"

"그래? 그럼 내가 좀 알아봐?"


그리고는 그날밤 기수로부터 전화거 걸려왔다. 자기 집 근처 소형 오피스텔을 구두 계약했노라고.

미지근한 반응치고는 행동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진희는 지금 사는 집을 1년전에 내놓았는데 통 나가질 않았다.  한두번 가격 흥정이 들어와서 그녀는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였지만 끝내는 불발되고 말았다.

지금 거처가 딱히 불편하거나 한 건 아니었고 돈이 문제였다. 회사를 나온 지 한참 되다보니 퇴직금도 거의 바닥이 나가고 간간이  기수가 앓는 소리를 하면 돈을 건다보니 이제는 살길이 막막해졌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옷장사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집을 팔기로 한건데 통 나가질 않는다.


그래도 한동안은 기수가 보름에 한번꼴로 찾아오더니 근래 와서는 '너무 멀어'라며 오질 않고 그녀에게 오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두시간 거리의 기수의 동네로 가서 그를 만나야 했다.  그렇게 그의 동네를 떠나던 어느날, 버스 차창ㅇ밖으로 비친 소형 오피스텔 건물이  눈에 들어와 저 정도면 세가 비싸진 않겠네, 하다가 그녀 나름의 묘안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세컨하우스로 그 동네에 오피스텔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 되면 기수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원할땐 언제든 만날수 있고 옷장사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으니 그다지 걸리적거릴게 없었다.


가뜩이나 없는 돈에 오피스텔 월세까지 내는게 쉬운게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가는 무슨 사달이 나도 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6개월짜리 단기 월세를  찾았고 기수가 그걸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구두계약을 할게 아니라 그 정도의 계약금이면 기수가 처리할 수도 있는 걸 그녀에게 와서  직접 계약을 하라는 말에 그녀는 조금은 서운하였다.


아무리 빌트인이 돼있다 해도 살건 사야하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반은 이곳, 반은 서울에서 지낼 생각이어서 며칠이라도 머물려면 침대, 식탁은 있어야 하고 간단한 책상도 필요했다 . tv야 노트북이 대신한다 해도 이렇게 저렇게 잔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진희는 곰곰이 생각끝에 침대를 더블로 주문하였다. 아무래도 기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강 눈으로 재보니 그 침대를 놓으면 방이 거의 꽉 찬다. 2인용 미니 소파가 옆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도 소파가 없으면  불편해하는 그인지라 소파도 작은걸로 하나 주문한다.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후미진 골목에나마 세컨 하우스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리고 무엇보다 기수와 가까이 지낸다는게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집에 오자 어서 다시 그곳에 가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희는 집을 내놓은 동네 부동산들에 자신의 집 도어락 비번을 문자로 일괄 통보하고는 그 다음날 다시 오피스텔로 향했다.


"너 어릴 때 소꿉장난 많이 했지?"

얼추 가구며 집기가 갖춰진 진희의 방에 들어서며 기수가 이렇게 내뱉았다.

"이 좁은 방에 뭘 이렇게 쑤셔넣었어?"

"그래도 다 필요한 거잖아"

"얼마나 사나 보자"

갑자기 족발이 먹고싶다는 기수의 말에 진희는 마트에서 사온 식자재를 꺼내다 다시 넣는다

"그럼 시켜 먹을까?"


배달은 20분도 걸리지 않아 쏜살같이 도착했다. 기수는 배가 고팠는지 랩을 찢듯이 하고는 손으로 덥석 집어 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진희는 그가 늘 '배고프다'는 말을 달고 사는걸 상기했다.

"자기 , 집에서 안먹고 살아?"

"귀찮잖아. 남자가 뭘 해먹니"

그 말에 진희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혼 1년도 채 안돼 아내의 외도로 이혼한 진수의 사정 이야기를 들은 그날 둘은 밤을 처음으로 함께 보냈다. "내가 잘해줄게"라며 진희는 그의 품에서 속삭였다. 눈물도 흘렀다. 불쌍한 사람...

그렇게 둘은 2년의 연애를 끌어오고 있다. 퉁명스럽고 무뚝뚝해도 그의 마음만은 의심하질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무리를 해서까지 그의 곁으로 온게 아닌가.


"너 니 집 가있을때 나 여기 와 있어도 돼?"라며 기수가 족발 기름이 묻은 입술을 티슈로 닦아내며 말한다.

"우리 만난 날. 그게 비번이야"


기수는 진희의 오피스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구축 원룸 아파트에 살고 있다.엘리베이터가 없어 그는 6층까지 오르내리는게 지겹다고 하소연을 했다.

"운동되고 좋지 뭐"라고 했을때 그는 발끈했다. "다 배부른 인간들이 하는 소리"라고...


기수가  이렇게 위성도시로 흘러든 건 이혼하고 얼마 안 가서였다. 그때까지 기수는 작은 출판사를 하면서 책도 제법 냈는데  친한 작가 s의 작품을 받은게 화근이 되었다. 원고지 1000매의 장편소설이었고 출간 뒤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하였는데 누군가 일간지 문화부에 '표절'로 투고흘 한 것이다.  s를 불러 진위를 묻자 "하늘 아래 새로운게 어딨어"라며 되레 타박을 하였고 얼마 안 가 그의 책들은 유통서점 매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그의 출판사는 문을 닫았다.


백면서생인 기수는 막일도 하지 못했다. 말로는 '뭐라도 해서 먹고 산다'고 하였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간간이 편집일을 하며 사는 형편이니 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늘 돈에 궁했고 성격은 투박해졌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그런 그의 생계비를 거의 진희가 떠맡게 된것이다.






"나도 얼른 이사가야지. 이건  집이 아냐. 닭장이지"라며 그는 진희의  오피스텔 침대에 드러누우며 툴툴댄다.

"그래도 계약기간이란게 있는데"

" 몰라몰라"하며 그는 모로 누우며 잠에 빠진다.


무심한 그의 등을 보며 진희는 서울집이 빠지는대로 둘이 같이 살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기수가 잠든 사이 온라인으로  서울외곽이나 가까운 위성도시쪽의 값싼 매물을 검색한다. 진희가 원하는 30평대 아파트는 아무리 외진곳이어도 턱도 없이 비싸서 진희는 방 두칸짜리 오피스텔로 눈을 낮추었다. 그렇게 하자 그에 부합하는 매물 몇개가 눈에 띈다.

"뭐하니 이리 와"라며 기수가 빼꼼 고개만 돌려 진희를 부른다. 그렇게 진희는 기수의 품에 안겼다.



비가 계속 내렸다. 기수가 진희를 찾지 않은것도 벌써 나흘째다.

처음 기수 옆으로 이사를 왔을땐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들고 그녀가 주말에 서울집에 가 있을 땐 대신해서 오피스텔을 쓰곤 하던 기수가  요즘은 통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할까 하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하지만 결국엔 전화를 걸고 만다.

"어....몸이 좀 그렇다. " 라는 기수의 말에 진희는 가슴이 뭉클하다.

아팠어 이남자가. 요며칠 아무소리도 없이 아팠구나 싶어 그녀는 그길로 약을 사들고 그의 아파트로 향했다.


"뭐할러 와. 내가 갈텐데"라며 기수는 눈꼽을 떼며 문을 열었다.

집안은 한마디로 '난장'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빈 컵라면 용기, 소주병, 주전부리로 먹었을 과자 부스러기들이 널려있다. 진희는 두팔을 걷어부치고 집 청소부터 한다.

"놔둬. 내가 하지. 니가 왜"라는 그를 밀치며 청소기를 돌린다.

"야, 시끄럽다"하며 욕실로 들어가는 기수의 등을 물끄러미 보던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는 연달아 사흘을 기수는 진희의 오피스텔을 찾았다. 하루는 간만에 편집일이 들어왔다며 밤새 진희 옆에서 일을 했다. 진희는 둘이 결혼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다.

그 다음날도 기수는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갔고 이틑날 또 왔다...빨리 서울집이 나가야 이 사람이 편해질텐데...하는데 서울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2000만 다운시켜줄 수 없냐는 흥정 전화였다. 지금도 거의 최저치로 내놓아서 더 깎을 일도 없건만 부동산 경기가 워낙 침체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거저달라는 식이 많았다.  진희는 하루만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임자 나왔을때 팔아라"며 기수가 채근했다.


결국 1500을 깎아주는 선에서 집은 나갔고 진희는 기수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정말이야? 그 집이 나갔어?"라며 기수는 자기 일인양 좋아라 한다.

"그 동네 , 오피스텔 방 두칸짜리 내가 좀 봐뒀는데"라고 진희가 말하자 기수는  "그럼 나 닭장 벗어나는거니?"라며 당장이라도 자기 아파트에서 나올 기세다.


오피스텔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있어 그때까진 기수의 작업실로 쓰기로 하고 진희는 예전에 온라인으로 봐둔 그 방 두칸짜리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그렇게 이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긴 왜 나한테 결혼하자는 얘기 안 해?"

이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을때 진희는 그의 품에서 물었다

"상황이 안되잖아. 내가 뭐라도 해야..."

"돈은 누가 벌면 어때..언젠가 자기도 벌겠지. 요즘 1인 출판이 붐이라는데"

"책은 징글징글 하다...하면 난 식당이나 까페 하고 싶어."하더니 "북까페 어떨까?"

"책은 징글징글하다며.."라며 그녀가 웃었다.


분명 기수였다. 기수보다 한참 작은 키의 여자가 찰싹 달라붙어 가고 있다. 진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설마...

그러고보니 진희가 방두칸 오피스텥로 옮긴 이후 기수는 그녀를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서울집을 처분하고 남은 돈을 거의 기수에게 넘겨준 이후로 기수의 태도는 달라졌다.

기수씨! 하고 소리질러 부르고 싶은걸 진희는 간신히 참는다. 그렇게 자기 앞의 기수와 여자는 대형 할인마트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난 왜 이곳에 온걸까...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동안 왜 한번도 기수에게 가까운 곳에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걸까...


"나야. 왜 안 왜 요즘?"

전화기 너머에선 기수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자기땜에 여기까지 온건데"

"내가 오라고 했니?"

"우리..안봐 이젠?"

"그러고 싶어?"

"우리 끝난거면 내 돈은 돌려줘"라며 진희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긴 침묵끝에 한껏 톤다운된 기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넌 늘 그런식이야. 니가 좋아서 줘놓고 돌려달라구  변덕부리고"

진희는 지금 통화하는 상대가 정기수 맞나 싶다. 마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품에 안고 자기의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을   내뿜던   그  남자.


기수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진희는 괜히 이 집을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서울에 있을걸....힘들어도 혼자서는 그럭저럭 살 수 있었는데...라며 방 두칸을 둘러본다. 기수의 서재로 마련한 방에 들어서자 울컥 설음이 밀려든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고프다. 안먹던 중화요리가 당긴다. 왜 이럴까....배달앱을  뒤지던 그녀는 한달게 생리가 없다는걸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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