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영 Feb 16. 2024

속삭임

분명 미림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녀를 잊을까. 강미림.  하지만 미림은 전혀 우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다. 


우석은 옆의 진경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진경은 자기 앞에 펼쳐진 웨딩드레스 캐털로그에 정신이 팔려 우석의 어지러운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거 이쁘네"하고 진경이 손으로 가리키자 미림은 "그러게요 신부님한테 딱 어울리네요. "라고 맞장구를 친다. 



작은 회사에서 경리업무를 보던 미림이 어떻게  웨딩컨설턴트가 돼있는지 몰라도 어쨌든 진경과 결혼을 앞둔 우석 앞에 앉아있는 그녀는 틀림없는 미림이었다. 하지만 우림은 기억상실이라도 온것처럼 전혀 우석을 모른다. 아니, 모른척 하는것만 같다.


우석은 그날이후 계속 불면에 시달린다. 자기가 버린 여자 강미림. 그역시 미림을 사랑했지만 가난한 집안 4남매의 맞이라는 그녀의 처지를 쉽게 받아들일수는 없었다. 게다가 10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 부친까지. 결혼한다면 그 짐을 우석이 함께 져야 한다는게 늘 꺼림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 선배의 소개로 첼로를 전공했다는 지금의 진경을 소개받았고 그 순간 미림은 이미 버려진 여자가 되었다. 그렇게 한달도 안돼서 우석은 5년의 길고 긴 미림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헤맨걸로 치면 우석도 미림 못지 않았다. 진경을 품에 안고 있어도 자꾸만 미림의 생각이 떠올랐다. 우석은 오랜 연인을 버리고 선택한 만큼 하루라도 빨리 진경과 결혼하길 원했으나 진경은 유학을 다녀온 후에 하자며 우겼고 결국 약혼만 한 채 진경은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리고는 마침내 학위를 마치고 모교에 자리를 잡고서야 결혼하자는 뜻을 비쳤다.  진경이 로마에 나가있는 동안 우석은 다시 미림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애써 참았고 재벌에 준하는 풍족한 진경의 집안을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해서 가끔 직업여성을 안는걸로 남성의 욕구를 채우곤 하였다.


"자기 아는 사람이야?"

드레스를 고르고 그밖의 이런저런 웨딩 스케줄을 잡고 나오는데 진경이 물었다. 무감한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구? 누굴 알아?"

"상담사. 자기 왜 그렇게 빤히 봐? 혹시.."하고 진경이 실눈을 하고 우석을 의심하는 시늉을 한다.

"쓸데 없는 소리...아니, 옛날 대학동창을 좀 닮아서 쳐다봤는데 자세히 보니까 아니더라구"라면서 우석은 간신히 위기를 넘긴다.



"여긴 어떻게..."

흥신소를 통해 알아낸 미림의 원룸에 이르러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듯이 금방 현관문이 열린다. 미림은 방금 머리를 감았는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다.

"강미림!"그가 정색을 하고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기만 한다.

"강미림이 누구죠? 저는 아시는대로 한소영인데요"

진경과 처음 웨딩업체를  방문했을때 그녀의 왼쪽 가슴에 조그맣게 달려있는 사원증 안의 '한소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석은 아무래도 이 여자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우리, 예전에 알던 사이 아닌가요? 그여자랑 너무 닮아서"라고 하자 소영이라는 여자가 코를 찡긋거린다.

"원하시는대로 스케줄 잘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

우석은 어쩌면 자신이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제가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분을 사랑했었나 봐요, 것두 아주 많이"라며 그녀가 또한번 코를 찡긋하더니 문을 살짝 닫는다.



틀림없이 강미림인데, 웃을때 오른쪽 볼에 파이는 볼우물까지 똑같은데도 그녀는 자기를 한소영이라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우석은 또다시 혼란에 휩싸인다. 그러다 캘린더에 눈이 가자 이제 진경과의 예식이 보름밖에 남지 않은게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그저 많이 닮은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헤어진 뒤, 아니,  버려진 뒤 그의 뒤를 캐거나 미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신과  웨딩 컨설턴트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많은 변수와 확률을 누르고?



예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석에게는 하루하루가 혼돈이고 지옥이었지만 진경 앞에서는 내색을 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진경은 그 예리한 육감으로 우석의 심사가 편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매일 강의가 끝나면 장을 봐서 곧바로 그의 오피스텥로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그가 퇴근해 들어가면 함께 식사를 하고 인근 공원을 나란히 산책하고는 함께 잠을 자고 새벽에야 자기 아파트로 가곤 했다.

그래, 이미 던져진 주사위다. 어쩔수 없다,라는 생각이 우석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잠시 뵐수 있을까요?"

소영이라는 미림을 너무도 닮은 그녀의 전화를 받고 우석은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이제 와서 엣일을 들먹이면서 돈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마저 들어 어떻게든 그녀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그녀와 약속을 잡고 만다



"우리 ,알죠? 전에 만났죠?"

우석은 이젠 아예 '그렇다'는 대답을 그녀로부터 끌어내려 애원하는 꼴이 되고 만다.

"많이 사랑하셨나봐요 그분을?"이라는 맞은편 한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안돼하는 눈치다.

"다 지난간 일이에요...난 왜 보자구?"

"저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분 같아서요"라는 그녀의 말에 우석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하마트면 떨어뜨릴뻔한다. 대신 커피는 까페 테이블을 흥건히 적시고 만다.

"저런"하고 소영이 얼른 냅킨을 집어 젖은 테이블을 닦아낸다.

저 손...저 길고 가늘고 흰손. 미림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된거야. 밤새 전화도 꺼놓고"

다음날 아침  , 소영과 함께 밤을 보낸 그 모텔에서 우석이 꺼놓은 전화를 키자 진경의 부재 전화가 여러통 찍여있다.

"우리 다신 만나지 맙시다"라는 그의 말에 소영은 아무말도 않고 원피스 뒷지퍼를 올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 지퍼를 올려주던  우석은 그녀의 등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진경의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강의실 앞을 서성이고 있는 우석에게 진경이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굳어있다.

"왜 통 전화를 안 받아?"

"우리, 끝난거 아닌가요?"

"뭐? 결혼이 코앞인데"

"결혼? 여보세요 정우석씨. 우리 파혼한거 기억 안나요? 그것도 당신 쪽에서...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그런 진경의 말을 우석은 전혀 알아들을수도 이해할수도 없다. 

그리고나서 진경은 몰려나오는 학생들에 휩싸여 복도를 걸어나간다.

내가 언제 진경과 파혼했을까?  혹시...하고는 소영에게 전화를 걸자 결번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당신 추잡하군요"라며 이틀후 간신히 불러낸 진경이 자신의 폰으로 전송된 우석과 소영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는 모텔사진을 내민다.

"이건...오해야..."

"나쁜 자식. 이래놓고 뭐? 날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을 못해?"

그말에 우석은 아무 할말이 없다. 온세상 말이란 말이 다 자신과는 무관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렇게 정신을 놔버린 우석을 버리고 진경은 까페를 나가버린다.


한참 벨을 눌러도 소영의 현관문은 열리질 않는다. 집에 없나...하고는 그가 돌아서려 하는데 그제서야 달칵 하고 문이 열린다. 중년남자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유없는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아, 여기 살던 아가씨..."

"아가씨요? 내가 여기 3년째 살고 있는데. 집 맞게 찾았어요?" 라는 남자의 말에 우석은 휘청거리며 심한 한기를 느낀다. 그러더니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남자는 한동안 사납게 그를 노려보더니 쾅 하고 문을 닫아버린다.

바로 얼마전 자신이 찾아왔던 한소영, 아니 미림의 방이 분명한데 그런 여자는 없다고 한다. 돌아서던 우석은 다시한번 벨을 누른다. 그러자 이번엔 기다렸다는듯이 곧바로 문이 열리며 남자의 일격이 가해진다.


하필 눈을 맞은 우석은 일단 안과부터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원룸앞 자기차에 오른다 

"언닌 그때 죽었어요"

미림의 동생을 만난  우석은 황당한 소릴 듣고만다.

"그때 형부...아니 당신한테 버려지고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서... "라며 그녀는 무섭게 그를 노려본다.그러더니 금세 두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all pics from google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