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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18. 2024

강변의 추억

"그 여잔 나한테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한집에 사는 거 뿐이야"라는 현중의 말에 난주는 할말을 잃는다. 지난 2년간 그가 두집 생활을 해왔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지만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것이다. 자다가도 그 여자의 전화가 걸려오면 뛰쳐나갔고 그렇게 밤을 세우고 들어와서는 아무말도 없이 늦은 잠에 빠지곤 했다. 한번은 난주가 잔뜩 술을 먹고 그만 헤어지자고 하자 더이상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현중이 내뱉은 발이 저랬다.  그여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난주는 현중과 결혼까지 갈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그래서 그가 빈둥거리고 놀아도, 가끔 한눈을 팔아도 묵묵히 그를 견뎌왔다. 모든건 잠시 불고 가는 바람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여자와 한집에 산다고 한다. 현중을 더 봐주다가는, 더 그를 참아내다가는 자신이 돌아버릴 것만 같아 난주는 그 집을 나오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현중의 얼굴은 한번은 보고싶다. 그런데 이번엔 사흘째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자 집을 나가겠다던 그녀의 의지가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그것은 현중에 대한 기다림으로 변해갔다. 그리고는 어느새 문밖을 서성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결혼하자"

근 일주일만에 집에 온 현중에게 그녀는 벼르고 벼른 청혼을 했다.그러나 현중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조금의 동요나 흔들림, 갈등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그 표정은?"

"하는거였잖아 결혼.하자 그래"

"그럼..정리해 그 여자.그 집에서 나와"

"꼭 그래야 해? "

난주는 밥을 먹던 숟가락으로 현중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 팔이 올라갔다. 그러나 잠시후 그 팔은 다시 내려졌다.

"밥 먹자" 

그리고 현중은 묵묵히 밥먹기에 열중하였다. 너무나 진지해서 그런 그를 채근하고 닦달하는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한사람이 꼭 한사람만 좋아해야 하나요?"

은주라는 여자가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말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난주는 그녀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드라...

"우리, 어디서 봤나요?"라는 난주의 뜬금없는 질문에 은주는 어이없어 한다. 그러더니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는 까페를 나가버린다.

분명 눈에 익은 얼굴인데...하면서 난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왼쪽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난주가 눈을 뜬건 병원 응급실이었다. 

"환자분,  평소에도 심장이 안좋았어요?"라는 응급의의 질문에 난주는 뭐라 할말이 없다. 평소 심장 체크를 해본적도, 이렇게 통증과 함께 쓰러진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아야 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는 응급실을 뛰쳐나왔다.


난주가 병원을 나오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비는 처음 보는것만 같다. 아직 장마도 아니고 일기예보에서 폭우예보도 없었는데 웬 비...하며 그녀가 손우산을 하고 두어걸음 내딛는데 저만치 현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옷이 온통 검기만 하다. 자세히 보니, 넥타이까지 까맣다. 무슨 일일까? 하는데 은주라는 여자가 그에게  다가가는게 보인다. 그런데 그녀도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마치 상을 치르는 젊은 부부처럼 보였다. 뭘까 이 상황은....


자신이 영정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난주는 넋을 놓고는 하마트면 쓰러질뻔 하였다. 그녀가 심하게 휘청거렸는데도 방안 조문객 누구도 그녀를 걱정하거나 부축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만치 상주 자리의 현중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잡히질 않았다. 말을 하려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꿈일까..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걸까. 

그녀가 답답해하며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쳐대도 누구 하나 자기를 의식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저만치서 열심히 조문객 식사 시중을 드는 은주가 보였다. 이 상황이 뭐지? 난 왜 영정 사진 속에 있는거지?


그녀는 자신의 몸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 사이  장대비도 그치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맑게 개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른한 졸음에 빠졌다...

그녀는 잠결에 들은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그녀는 서둘러 잠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공중에 붕 뜬 채로 잠이 들어있었다.

"우울증이 심했어요"라는 현중의 말에  조문객들은 끌끌 혀를 차는게 보였다. 누가 우울증이었단 말인가, 하는데 "매사를 의심했어요.."라고 현중이 덧붙이자 그들은 말없이 고래를 주억거렸다.

그때 은주 그녀가 "오빠, 염한다고 문자 왔는데"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10여분 후 난주는 가슴위가 벗겨진채 사람들 앞에 눕혀졌다. 그녀는 벗어나려 했지만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염이 시작되고 염장이들이 자신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은주 그녀가 까무러치는 시늉을 했다. 저 여자를, 저 여자를 본 적이 있어 분명...하는데 그사이 염이 끝나고 그녀는 입관되고 말았다. 그러고나자 그 어느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질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언니 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난주가 돌아보자 저 아래 강가에서 튜브에 몸을 싣고 다 젖은 몸으로 손을 흔들어보이는 어린 계집아이가 보인다. 난주는 '집에 가야지 . 나와 얼른!'이라며 아이를 향해 소리 친다. '언니도 들어와!'라며 아이가 손짓을 한다. 그러나 난주는 그 자리에 선채 소리친다.  '은주 너, 이러다 엄마 아빠한테 혼난다. 빨리 나와'라는데   아이는 갑작스런 급물살에 저멀리 떠내려간다. 은주야! 은주야! 부르면서도 난주는 은주에게로 가질 않는다. 그사이 은주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때 지나가던 동네 오빠 현중이 지나가다 그런 난주를 보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상황을 알아챈 현중은 곧바로 물에 뛰어들어 은주를 구하러 나섰다. 교회에서 늘 은주 옆자리에 앉던 현중은 난주에게는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어느날 그의 집 파란 철대문에 그녀는 쪽지까지 남겼지만 현중은 끝내 난주를 모른척했고 은주만 챙겼다. 은주가 죽었으면 좋겠어..그녀는 여러번 생각했다.


간신히 은주를 구해낸 뒤 현중은 의식을 잃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에 의해 둘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둘다 죽었어야 돼,라고 중얼거리는 어린 난주의 말을 알아듣는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난주는 점점 자신이 누군지, 어릴때 어디서 살았는지 기억을 하나씩 잃어갔다. 그러다 어느날 현중이라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엘 갔고 현중은 그녀를 애처로워하며 알뜰히 보살폈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본적이 있는듯한 얼굴일 뿐 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어느날밤 그가 살며시 그녀를 안아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난주는 알아차렸고 이후로 그는 한밤에 울리는 '그녀의 전화'에 기다렸다는듯이 뛰쳐나가곤 하였다. 참지 못한 그녀가 둔중한 옥상문을 열고 나갔다. 아래는 4차선 도로 였고 이만하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4층 아래로 뛰어내리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 그전에 '그녀'를 한번은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은주를 만나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난주의 장례를 치른 후 은주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현중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죽은 언니 난주의 흔적들을 하나둘씩 치워갔다. 현중은 이제야 사랑하는 여자를 온전히 품에 안을수 있다는것에 만족해 하였다. 그리고는 은주의 뱃속에 아이가 들어서던날 은주는 퇴근해서 돌아올 현중을 위해  우럭 매운탕을 끓였다. 비로소 은주와 제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중도 마음을 잡고 인테리어 일에 열심이었다.

은주가  창을 열어 음식 냄새를 뺀뒤  소파에 잡시 드러눕는데 도어락 비번이 눌렸다. 현중이 퇴근하려면 아직 한시간도 더 남은 시간이라 은주는 의아해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하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니 이젠 오지 마"라는 은주의 말에 열려있던 문이 스르륵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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