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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28. 2024

권태

문자알람에 현우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급하게 폰을 들여다 본다.

'본사에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음을 양해바랍니다'라는 글귀를 보고는 휴대폰을 던져버린다.

벌써 스무번도 넘게 거절의 메시지를 받다보니 이제는 정말 안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슬리퍼를 끌고 고시원을 나와 무작정 걷다보니 어느새  동네 어귀 편의점앞이다. 담배..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니 만원짜리 한장이 달랑 들어있다. 자신의 전재산이 만원이라는것에 그는 실성한듯 웃어제낀다 . 그래, 담배나 피고 죽자,라는 마믕으로 그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자주 보는 대학생쯤 돼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매대를 정리중이다.

'담배 하나요!'라고 하자 '네'하고 그녀는 쪼르르 달려온다. 얼핏 그녀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본것 같다.

'이정희'

이쁜 이름이라는 생각에 한번도 눈여겨 보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아직 어린티가 물씬 풍기는 그녀는 현우가 찾는 담배가 손에 안닿아 발돋음을 한다.

'제가 꺼낼게요'라며 그가 성큼 게산대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 들어오심 안되는데'

하는데 그의 손엔 이미 담배가 들려있다.

"라이터도 하나 주세요"라고 하자 "네"하며 어느새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순간 그녀와 커피라도 나눠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담배에 라이터까지 사고나니 천원짜리 몇장밖에 남지 않아 그는 그대로 편의점을 나왔다. 그리고는 편의점 계단턱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후,, 하고 연기를 내뿌는 순간, "여기 앉아 계심 안되는데"라는 조금전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 미안합니다" 하고 그는 느릿느릿 일어나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다시 앉아서 남은 담배를 태운다.


고시원의 밤은 서늘한 공기가 맴돈다. 공동취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선 현우는 오늘밤도 자는게 걱정이다. 서랍을 열어보지만 약국 여기저기를 돌며 사두었던 수면제가 다 떨어졌다.

언제부턴가 현우는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달밤에 뛰어도 보고 물구나무를 서보기도 하고 별짓을 다해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넘게 실업자 노릇을 하다보니 집에서도 눈치를 주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는 집을 나와 고시원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따금 공공근로나 아는 선배가 하는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가져다 하면서 근근이 고시원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잠을 어떻게 잔다?....

무작정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는데 갑자기  멀쩡하던 유리창이 눈앞에서 박살이 나버렸다. 강풍이 부나?  하고 그는 저만치 세워져있는 빗자루를 가져다 유리 파편을 쓸어담는다. 순간 그의 손을 움켜쥐는 또다른 손이 있다. 누구? 하고 돌아보는 순간 그는 쓰러져버린다.



눈을 떴을때 그는 다시 자기 방 좁디좁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옆에는 이따금 말을 섞곤 하는 s 가 우두커니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씨 괜찮아?"

"내가....내가 뭐?"

"기억 안나? 복도에서 쓰러졌잖아"

"아...유리창은.."

"유리창?"

현우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복도로 달려나갔다. 자신의 기억에는 분명 깨져버린 유리창이 멀쩡히 달려있고 바람도 한점 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그렇다면 가상의 유리 파편을 쓸어담던 자신의 손을 움켜쥔 그 손은 뭐였을까?

"고시원에 누구 새로 들어온 사람 있어요?"

"글쎄...아직 못본거 같은데. 암튼 난 가요 괜찮안거 같으니"라며 s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멀쩡한 유리창 너머 밤거리를 내다보는데 뒤에서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손...비질하던 자신의 팔을 붙든 그 손이 떠올라 그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s였다. 어느새 컵라면 두개를 가져와 같이 먹자는 표정을 지었다.



s와 라면을 먹고 나서 현우는 식곤증에 의지해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역시 오지 않았다. 해서  출판사 선배에게 번역거리 있으면 연락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잠시 잠이 든거 같다...어지러운 꿈도 꾼거 같다...

현우가 뒤척이는데 '강현우씨?'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아는건 고시원 주인밖에 없는데...라며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나는데  방문이 스르륵 닫히는게 눈에 들어온다. 누가 나가기라도 한것처럼.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른 여자의 목소리였는데...


그렇게 이틀밤을 계속 현우는 자신의 방에 묘령의 여자가 출몰했다 사라지는 느낌을 받고는 아무래도 고시원을 나가든가 방을 바꾸든가 해야겠다 생각한다...

그가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판사 선배였다. 소설 번역건으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책을 가지러 곧 가겠노라 하면서 그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 옷장을 여는데 옷이 하나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걸려있어야 할 자기 옷이 하나도 없다니....

할수 없이 친분있는 s에게 가서 외출복을  빌어입고 그는 고시원을 나섰다.



그리고는 편의점을 지나치는데 이정희 그녀가  있어야 할 시간에 웬 중년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요즘은 중장년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많이들 한다는 기사를 얼마전에 읽은 기억이 났다. 그만큼 살기 팍팍하다는 얘기였다. 하기사 이제 서른도 안된 자기도 취업을 못해 이러고 있으니...

스스로가 한심했고 한편은 그런 자신에 연민을 느끼면서 그는 지하철에서 내려 선배가 하는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얄팍한 영어 소설 한권을 받아들면서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일부를 선불로 달라고.


그렇게 얼마 안되는 돈을 미리 받은 그가 다시 동네로 돌아와 그 편의점을 지나치는데 여전히 그 중년남자가 카운터에 서있다. 이 돈이면 이정희 그녀와 커피 한잔은 마실수 있는데..라며 그가 편의점을 지나치는데 누군가 그의 등을 톡 친다. 이 동네에서 자길 아는 이는 고시원생 s밖에 없어서 그가 궁금해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헉, 하고 숨이 멎는다.



그리고 이번에 깨어난건 인근 병원에서였다.

"정신이 좀 드세요?"라는 마흔 무렵의 간호사가 링거를 봐주며 물었다

"어떻게 된거죠?"

"전반적으로 영양상태가 안좋으세요 이거 영양제니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은 선불로 타온 번역료를 링거 값으로 다 날리게 됐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시간을 더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비틀거리며 병원 유리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 그녀가 떠올랐다. 분명 이정희 그녀였는데 그녀의 눈속에 눈동자가 없었다. 그렇게 텅빈 그녀의 눈에 그는 정신줄을 놔버린 것이다...


고시원까지 죽자고 뛰어오는 내내 그의 머릿속은 그녀의 동공없는 그 두 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렇게 고시원 자기 방문을 열려는데 문이 열리질 않았다. 마치 안에서 문고릴 꽉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신이지?" 그가 낮게 중얼거려보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다. 그러더니 잠시후 스르륵 저절로 문이 열렸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기가 싫어진 현우는 몸을 돌려 s의 방으로 향한다. 그렇게 두어걸음 옮기는데 "왜 그랬어"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잔뜩 겁응 먹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았을땐  복도엔 아무도 없고 창문은 고집스레 닫혀있었다. 왠지 덥다는 느낌에 그가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비를 품은 텁텁한 바람이 기다렸다는듯이 들이닥쳤다. 그 바람을 깊게 들이마쉰 뒤 그가 돌아서는 바로 그때 그는 별이 반짝하고 빛나는 느낌을 받고 휘청거렸다 . 분명 누군가 자신을 둔기로 내려쳤다 . 그런데 사람도 둔기도 아무걳도 없이 텅빈 복도만 그의 눈에 들어왔고 자기가 왜 복도에 나와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아, s의 방에 가려고 했지,하고는 한걸음 떼려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 "왜 그랬어"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커피 한잔을 나눠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이정희 그녀에게 그 이상의 감정이나 욕구는 없었다. 해서, 담배를 사고 남은 몇천원을 그녀에게 내보이며  "이것뿐인데 그쪽이 좀 보태서 커피 마실래요"라고 용기를 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뿐 현우 수상하게 여겼다.

"내 말은..."하고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더니 급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1을 누르는게 현우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도망치듯 편의점을 쳐나왔다.

그리고는 다음날 새벽 , 일을 마치고 나오는 정희를 뒤따라가 어둠속에서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동공이 풀렸다. 죽은 그녀를 인근 공사장 폐자재 속에 묻어버리고 그는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사랑했다거나 마음에 둔것도 아니었다. 다만 커피 한잔 나눠마실 사람이 필요했고 그때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청했을뿐인데...


커피를 나눠 마신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자신에게 던지던 현우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껴  반쯤 열려있는 복도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어쩌면 저 세상에서는 그녀와 커피를 나눠마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뛰어내렸다...


정희는 한동은 계속 안보이는 그 젊은 남자 손님이 궁금해졌다. 후출근해도 사람이 험해보이진 않던. 커피 한잔쯤은 같이 해도 됐을텐데,하는 미안함이 잠깐 스쳤지만 깊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몸이 아파  자기 대신 한동안 일을 보던 중년남자는 자신이 복귀 의사를 밝히자 곧바로 해고되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편의점을 그녀는 쓸고 닦고 이어서 유리창까지  닦기 시작하는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앰불런스 한대와 경찰차가 그 뒤를 따랐다.


인근 공사현장 폐자재 속에서 부패돼가는 신원미상의 여자 시신이 발견된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성폭행이나 금품 갈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목이 졸려 죽은것으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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