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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26. 2024

지나가는 비

"어? 비가 오네. 잠시만"하고  창민이 아파트 밖으로 나오다 되돌아가려 한다.

"차에 우산 있을거야."

"금방 올게"


미선은 그렇게 동 입구에서 비를 피하면서 창민을 기다렸다. 미선의 느낌에는 지나가는 비 같은데  일기예보에서는  장마라고 했다.

구축 아파트라 지하주차장과  엘비테이버 연결이 안돼있어 창민의 차가 주차돼있는 지하주차장까지 가려면 단지를 에둘러 가야 해서 우산이 없으면 비를 맞기는 맞을 것이다.


그런데 금방 올거 같던 창민은 나타나질 않는다.

왜 이렇게 늦지? 하고 미선은 창민에게 전화를 걸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이상하다?

미선은 그렇게 10여분을 더 기다리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기계는 12층에서 빠르게 내려오고 있다. 창민의 집이 12층이니  분명  타고 있으려니 하고 엘리베이터 옆 경사벽에 등을 기대고 그녀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기다린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춘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왜 이렇게 늦었어?"라며 안에 대고 소리치는 미선에게 웬 중년여자 하나가 거북한 눈길을 주며 기계에서 내린다. 그리고나서 문은 스르륵 닫힌다. 미선은 뒤늦게 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다시 열었다.



12층 창민의 집 도어락 비번을 계속해서 눌러대는 미선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비번을 바꿀 이유도 바꿨을리도 없는 창민의 집 현관은 고집스러게 그녀를 거부하고 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번엔 탕탕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안에서는 역시 아무 인기척이 없다....

그때 미선의 눈에 도어락 바로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열쇠전문'이라는 글귀에 그녀는 그 밑의 전화번호를 다급히 누른다.


 요란스런 드릴작업끝에 간신히 열린 현관을 통해 미선은 신도 벗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창민의 이름을 불러댔다. 모두 세개인 방문을 죄다 열어봤지만 그 어디에도 창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심장이 안좋은 창민이라 혹시나 집에 들어왔다가 심장발작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지만 그런거 같아 보이진 않았다.

어디로 간걸까...

그러다 불길한 예감에 거실 발코니 난간으로 미선의 시선이 날아가 꽂힌다. 그녀는 발코니로 뛰어나가 창문을 확인했지만 열리거나 한 흔적은 없다.


경찰은 최소 하루는 더 기다려보고 그때까지 창민으로부터 연락이 없으면 실종신고를 하라며 창민의 실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속이 타들어가는 미선이 애원을 하자 그제서야 창민의 신상을 물었다. 이른바 '특수관계'라 불리는  '연인사이'라고 하자 담당 경찰이 코를 찡긋거리며 물었다.

"혹시 두분 싸웠나요?"

싸우긴 커녕, 미선은 전날 퇴근하고 곧바로 창민에게 와서 함께 저녁을 지어먹고 단지를 한바퀴 돌고 그러고는 같이 잠을 잤다. 오랜 연인이라 더이상 다툴것도 서로에 대해 의심할것도 모를것도 없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경찰은 "그래요? 알겠습니다. 댁에 가계심 연락드릴게요"라며  그녀를 돌려보내려 한다.

"꼭요.."라며 미선은 사정사정하고 파출소를 나왔다.


미선의 예감대로 비는 말끔히 걷혀 있었다.

"봐.. 지나가는 비라고 했잖아 내가"라는 그녀의 중얼거림은 금세 울먹거림으로 변했고 급기야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디 간거야. 어떻게 된거야...



이틀동안 휴가를 내고 미선은 여기저기 창민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창민의 절친인 동규는 '사랑싸움이네  뭐'라며 대수롭잖게 웃어넘겼다. 그럴수록 미선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급기야 그녀는 도로 한복판에서 심한 현기증을 느껴 쓰러져버렸다. 심장이 멎는것만 같더니 앞이 깜깜해졌다.



창민은 영정사진 속의 미선 앞에 흰국화 한송이를 정성스레 놓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갔으니, 그것도 도로 한복판에서 객사를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싶어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그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창민은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내내 미선의 곁을 지켰고 삼우제까지 지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도어락 비번을 다 누르기도 전에 안에서 문이 열리며 서른도 안돼보이는  여자 하나가 "왔어?"라며 그를 반긴다.


그녀 여정을 만난건 지난번 파리 출장때 비행기안에서였다 . 둘은 12시간을 나란히 앉아 가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고 파리에 도착해서 헤어질때 창민은 그녀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렇게 둘은 파리에서 남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돌아올때도 미선에게 줄 파리 향수도 여정이 골라주었다. 그리고는 갈때처럼  나란히 같은 비행기로 귀국해서 이후 미선 모르게 계속 만나왔다.



"자기 배고프지?"

"더 고픈거 있어"라며 창민이 여정을 난폭하게 안았다.

"우리 결혼하자"

"그러러고 한 짓이잖아."

그말에 여정이 살짝 눈을 흘긴다.


미선과는 이미 수십년을 함께 산 부부인양 서로 가릴것도 숨길것도 없이 다 터놓다보니 서로에 대한 신비감이라든가 이끌림같은게  줄어들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  여정을 알게 됐고 그는 별다른 갈등없이 미선을 쳐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우산을 가져온다는 핑계를 대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이틀을  숨어있다. 여정의 오피스텔에서 또 며칠을 보내고는 그 사이 자기보다 더 심장이 안좋은 미선이 거리에서 쓰러져죽자 태연하게 나타나 조문까지 한것이다. 그리고는 삼우제를 지내로 온 바로 그날 격하게 여정을 안은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은 미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심장재활모임에서 알게 된 이후 미선은 정말 헌신적으로 그에게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섹스를 끝낸 뒤 여정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그런 여정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창민은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온수에 샤워를 하고나서  문을 열자 침대가 비어있다.

"어디갔어?"

그가 소리쳐 여진을 찾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바깥 욕실에서 샤워를 하나보다,하고 그는 화장대앞에 엉거주춤 서서 스킨로션을 얼굴에 발랐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여정은 방으로 들어오질 않았고 창민은 갑자기 등뒤가 오싹해졌다. 그리고는 거울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선을 보았다. 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뒤들 돌아봤지만 텅빈 벽만 눈에 들어왔다. 헛것을 봤다는 생각에 그는 고개를 내젓고 다급히 여정을 찾으러 방을 나섰다.



그러나 여정의 모습은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바깥 욕실, 주방, 작은 방 , 거실 소파, 어디에도 없었다. 그순간 그는 혹시나 하고 거실 발코니를 쳐다보았다. 창문이 반쯤 열려있다. 안돼....자기도 모르게 창민은 발코니로 나가 12층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가 뿌리고 있었다.

"비는 금방 멎을거야"라는 미선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창민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겁에 질린그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미선이 조금전 화장대거울 속에서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귀신은 발이 없다고 했어 하고 그가 미선의 발을 찾는데 그 순간 자지러지는 미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그랬지? 여정이, 니가 그랬지?"

"왜. 너는 그래도 되고 난 그러면 안되니?"라며 미선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창민은 그녀를 피해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소파턱에 부딪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미선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고...

창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지만 미선은 차디찬 손으로 그의 팔을 붙들었다.

" 니 여자가 기다리잖아 저 아래서"

"이러지 마..내가 잘못했어 ...그냥 잠깐...지나가는...그래, 지나가는 비라고 생각했어. 니가 그랬잖아. 곧 그칠거라고"

"가자 얼른"하며 미선이 그를 우악스럽게 끌고 발코니로 향했다. 그녀의 힘을 그는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창민의 삼우제를 지내고 오는 날 조문객을 실은 버스가 난데없이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오던 대형트럭과 충돌했고 버스에 타고 있던 전원이 사망하였다. 그날도 비가 뿌리고 있었다...

사고현장을 수습하던 경찰 하나가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듯 과호흡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그에게 응급조치를 취하던 동료 역시 잠시후에 커다랗게 놀란눈을 하고는  조금전 숨을 거둔 그 동료 옆에 나란히 쓰러졌다.


"이제 비는 당분간 없이 맑은 날씨가 계속되겠습니다"라는 tv기상 캐스터의 모습이 도심 거대한 광고화면을 가득 메웠다.

산발적인 잦은 비에 시민들은 지쳐있었다.

"그나마 비가 있어 더위를 막았지. 이제 더위서 어떡해.."라며 저마다 비슷한 말을 내뱉으며 횡단보도를 서둘러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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