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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24. 2024

그대 가슴에

이제 두돌 지난 딸 향이 들판을 뛰어다니는걸 보면서 영서는 신께  감사를 드린다. 태어날땜만 해도 2kg 도 채 안된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넣고 먼저 퇴원할때의 참담함과 안쓰러움을 생각하면 여태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저렇게 잘 자라나 오동통한 두 다리로 나비를 잡겠다고 햇살 눈부신 들녘을 종횡무진하는걸 보면 여간 고마운게 아닌다. 


그 심정은 남편인 기준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넘어져 천천히 뛰어!"라며 아이가 혹시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기준은 가서 아이를 데려오려고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런 기준의 팔을 잡으며 그냥 있으라고 영서가 눈짓을 한다. 그러자 기준은 영서의 어깨에 한팔을 두르고, 까르륵 웃음소리를 내며 나비잡기를 하는 딸에게 다시 시선을 보낸다.



향인 이제 나물류도 제법 잘 먹었다 .처음엔 싫다고 연신 도리질만 해대던 아이가 이제는 시금치, 콩나물도 덥석 받아 먹었다. 김치도 물에 씻어주면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우리 향이 동생 만들어주자"라며 기준이 영서의 볼에 자기 볼을 비비며 말했다

"향이 좀 더 크면"

"지금 터울이 딱 좋아"라며 기준은 강하게 어필했다.

그래야 하나....향이도 이제 동생을 볼때가 됐나, 하고 영서는 곰곰 생각에 빠진다. 


그날밤 기준은 오랜만에 영서를 안았다. "이번엔 아들이면 좋겠어"라고 영서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영서가 잠든걸 확인하고 기준은 잠옷을 걸치고 거실 발코니로 나왔다. 그리고는 환한 달을 보자 조금은 서러운 기운이 몰려들었다 왜 이러지...


한참 잠들어있던 영서가 눈을 떴을땐 이미 바깥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여보, 하고 옆을 보는데 기준이 옆에 없었다. 화장실? 하고 불러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그녀는 서둘러 옷을 걸치고 향의 방으로 가본다. 향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토끼 인형을 안고 쌕쌕 자고 있다. 

조깅을 나갔나,하고 향이 방에서 나오는데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네...하고 일단 문을 연 그녀는 아파트 경비원 둘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는걸 보게 된다.

그중 하나가 힘겹게 입을 연다.

"사장님이..."

"네?"

"일단 내려와 보세요"

그말에 갈급해진 영서가 덧옷도 걸치지 않고 잠옷차림으로 다급히 아래로 내려간다.


기준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엎드려있다. 영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기준의 코밑에 갖다댄다. 숨이 멈췄다.



영서가 깨어난 곳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기준의 시신을 보고 그가 절명한걸 확인하고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그런 그녀를 경비원들이 응급실로 데려다 놓았다. 

영서는 자기 팔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링거를 쳐다본다. 내가 왜 여기...하다가 뒤늦게 남편 기준이 죽은게 떠오른다. 안돼...여보! 하며 그녀가 링거를 빼버리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황급히 응급의가 달려와 그녀를 만류한다. 그때 저만치 문가에서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던 경찰 둘이 그녀에게로 다가오는게 보인다.



기준이 원한 살 일은 없었다. 실족사라기에는 발코니 펜스가  높았고 일부러 떨어지지 않는한은...

집으로 돌아온 영서는 혹시 펜스에 문제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그렇다면 일부러 투신했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경찰은 넌즈시 기준의 여자관계를 물었다. 영서가 아는한  기준은  결혼후 한번도 사고를 치거나 덜미를 잡힌 적이 없었다 . 결단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하다가 그녀는 또다시 정신이 흐려지는거 같았고 그런 영서를 경찰이 양옆에서 부축해 소파에 눕히고는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기준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영서는  눈물을 흘려댔다. 그리고는 납골묘에 안장하고 나서는 곧바로 혼절해버렸다. 다시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때는 옆에서 딸 향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아이를 봐서라도 살라고들 했다.  영서는 아이를 끌어안고 또다시 울었다.


그렇게 한참만에 돌아온 집안은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도 영서는 우선 청소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에 청소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작동 버튼을 누르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됐는지 확인해보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고장이 났나,하고는 다시 켜봐도 역시 작동하지 않아 그녀는 빗자루로 대강 집안을 쓸었다. 그리고는 새 청소기를 주문하러 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죽은 기준의 사진이 떠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 활짝 웃고 있는 기준의 모습을 그녀는 넋놓고 쳐다보다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하고 다른 앱을 클릭했다. 그러나 모든 앱을 다 눌러봐도 기준의 얼굴만 떴다. 

내가 헛것을 보는구나...이럴수 있다고 했어. 갑작스런 배우자나 친족의 죽음을 당하면 이럴수 있다고..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진다고..하고 그녀는 폰을 내려놓고 한숨 자기로 한다. 이미 소파에서 잠들어버린 향에게 소파이불을 덮어주고 그녀가 침실로 들어설 때였다.


조금전까지 열려있던 침실문이 스르르 그녀앞에서 닫혀버렸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여보"하고 소리친다. 그리고나자 이미 기준이 저세상 사람이 되었음이 떠올라 망연자실했다. 닫힌문앞에서 그녀가 돌아서는데 갑자기 손 하나가 불쑥문을 뚫고 나와 그녀의 팔을 붙든다. 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잡은 팔을 떼어내려 하였지만 그 손의 악력은 대단했다. 거녀의 팔에 찌릿한 통증이 퍼져나갈때쯤그 손은 스르르 다시 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영서는  닫힌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문은 아무 일 없다는듯이 여전히 그대로였다. 

꿈일거야...하고 그녀가 돌아서는데 이번엔 조용히 문이 열린다.

기준씨? 

영서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이 말에 스스로 놀랐다. 그녀는 홀린듯 방안으로 들어갔고 그러자 문은 다시 닫혔다.


기준은 그녀를 이끌고 침대로 가서는 나란히 걸터 앉는다.

"아팠어?"

"조금...당신은 괜찮아?"

"미안...당신한테 잘해주지도 못하고"

하며 영서가 그의 품에 안겨 울먹였다.

"향이 동생을 봤어 하늘에서"

"아들이야? 당신 원대로?"

"그건 비밀.."하며 기준이 빙긋이 웃는다. 

잊지 못할 저 미소...저 미소에 반해서 영서는 친구 해진의 남자였던 기준을 빼았았다. 결혼을 코앞에 둔 둘을 영서는 기어코 갈라놓고 기준과 결혼을 하였다. 그 일로 해진은 정신병동 신세를 지다 결국 스스로 목을 매었다.

"해진이도 봤어 거기서?"

영서가 기준에게 물었다

"우린 좋은 친구가 됐어 이제"

"나는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느낌이야"

그말에 기준은 아무 대답이 없다. 

경찰에게는 기준이나 자기나 원한 살 일이 없다고 하였지만 단 한사람, 비록 죽었지만, 그 혼이라도 있다면 해진은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을 터였다. 해진은 그 일로 이미 들어선 아이가 유산되었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병동에 감금되었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렀다.


향이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여전히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기준이 떠나던날, 아니 영서가 그의 등을 밀던 그날처럼 하늘엔 달이 밝다.

그렇게라도 영서는 기준을 영원히 해진으로부터 떼어놓고 싶었다. 

"여보 나도 곧 따라갈게"

그날밤 영서는 침대에 들며 누워있는 기준에게 속삭인다.

"향이 좀 크면 와"라며 기준이 피곤한지 등을 보이고 모로 돌아눕는다.

그가 살았을때 이렇게 그의 등을 보고 있자면 영서는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의 마음이 변한거 같아. 저러다 그가 해진에게 가버릴까봐.

"여보 나 봐"라며 영서가 그를 돌려눕히는데 그의 얼굴에 눈코입이 없었다. 영서는 너무 놀라서 침대 밑으로 떨어져버린다.

"나 피곤하니까  건드리지 마"하고 얼굴 없는 기준이 다시 모로 돌아눕는다.

그날밤 영서는 일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부엌에서 식캍을 집어들고 와서 누워있는 기준을 마구 찔러댔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는 마치 산 사람처럼 다량의  피가 뿜어져나왔다. 그걸 보면서 이제야 비로소 기준이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되었다고 영서는 느낀다. 



납골묘 너머의 기준의 사진을 보며 향이 "아빠"하고 부른다.

향을 안고 있는 영서의 배가 어지간히도 불렀다. 조산기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근래와서 영서는 통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이웃들은 아마도 남편잃은 상심이 커서 그런다고들 생각을 하였다.


갓난장이를 안고 병원을 나서는 영서의 얼굴 위로 뜨거운 여름해가 쏟아져내린다.

사내동생을 본 향은 연신 좋아서 아이의 꼬물거리는 발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아가 아야해.."라고 영서가 말하자 

"눈부셔"라며 향이 그 조그만 손으로 손차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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