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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29. 2024

먼 그대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게 서로를 소원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현영이 기현 가까이 이사 온것도 벌써 한달이 다 돼간다. 그러나 그와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좁혀졌다고 줄어드는게 아니었다.. 거의 매일 만나려니 했던 그녀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그는 오히려 그녀가 가까이 있다는걸 부담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기다리다 못해 "점심먹을래? "라고 전화를 걸자 "니가 사는거냐?"라며 퉁명스레 대답을 해왔다. 만나서 먹어봐야 만원짜리 2인분 정도니 못살것도 없다 생각돼 그녀는 신경쓴 차림으로 인근 대형마트 앞 벤치로 향했다. 만나면 대부분 거기서 만나기 때문에 딱히 약속장소를 정하지 않은게 화근이 되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기현의은 나타나지 않았고 현영은 기분이 상해 전화를 걸자 통화중으로 나왔다. 

그녀가 전화를 끊자 곧바로 기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너 뭐하는 애야? 한시간씩 기다리게 해놓고. 간다 나"라며 그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체 어디서 기다렸다는건지 몰라 애가 탄 현영은 걸어서 10분 거리 기현의 빌라에 가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현영이 현관 초인종을 눌러대도 기현은 문을 열지 않았다. 사귄지 2년이 되었으면 서로의 도어락 번호 정도는 알려주는게 예사인데 기현은 그러질 않았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던가.

그렇게 한참을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던 현영이 포기하고 돌아설 즈음에야 투박하게 문이 열렸다.


"난 우리 늘 보던 거기서 기다렸지..자기가 식당가에 올라가 있을줄은"

그말에 기현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도 현영은 일단 기현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기로 하였다.

"미안. 지금이라도"

"또 나가라고? 아 피곤해. 가라 그만"

"..."

"뭘 그렇게 봐?"

"나, 자기 가까이로 왔잖아"

"..."

"자주 보자 우리"

"내가 오라고 했어?"

그말에 현영도 마음을 다치고 만다. 그 길로 기현의 집을 나와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로 향한다.


갑자기 강풍이 분다. 입고 있던 치마가 바람에 날려 그녀는 계속 치맛자락을 움켜쥐어야 햇다.. 그런 자세로 걷다보니 짜증이 몰려왔다. 혼자라도 뭐좀 먹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한 그녀가 , 기현이 한참 기다렸다는 그 대형마트 식당가로 올라갔다. 뭘 먹나...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어디선가 " 이현영!"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금세 알아차릴수 있었다.  둘이 결혼까지 갈뻔 했던...그러나 석진의 집안에서 결사반대해서 헤어진.

현영이 고개를 돌리자 석진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흐른 세월이 있지..하고 현영도 미소를 지었다

"너 여기 사냐?"

"응...이사 온 지 얼마 안됐어"

"난 외근 나왔다가 출출해서... 점심이나 먹자"

"그럴까?"


그렇게 중화요리집에 마주안자 둘다 쿡, 하고 웃음이 새나왔다.

헤어지던 순간 서로 애면글면 하던 그 젊은날의 기억은 이미 봉인된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봉인된 기억속의 그녀는 완전히 미친 여자였다. 온세상이 자신을 희롱하고 배반했다고 여겼다. 세상 온 남자들이 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결혼은 했구?"라며 석진이 컵에 물을 따라서 그녀에게 준다

"아니 아직...석진씬 했지? "

"알잖아..."

그때 석진의 부모는 집안끼리 정해놓은 혼처가 있다며 현영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의사라고 했던 그녀...

"그 의사랑?"

"응...딸 하나 있어"

"그렇구나..."

"넌 왜 여태?"

"할거야 곧"

"누가 있긴 하구나"

"그럼..내가 누군데.."

"그래. 미모 여전함"

하며 석진이 개구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젠 이렇게 서로 무덤덤해졌다는게 한편 다행이면서도 한편 실망스럽기도 하였다. 

그렇게 둘이 점심을 먹고나서 일어나려는 찰나 현영의 눈에 기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하더니 기현은 현영과 석진에게로 와서는 의심에 가득찬 눈길을 보낸다.

"여긴 어떻게? 밥 먹으러?"라는 현영의 말에 기현은 대답을 않더니 그대로 홱 몸을 돌려나가버린다.

"아는 사람?" 석진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묻는다..

"내 남친. 여기 살아"

"아...그래서 너도 가까이 온거구나"라며 석진이 웃는다.

"근데, 오해한거 같은데 어뜩하냐?"

"나좀 먼저 가볼게"라고 그녀가 먼저 일어선다.



그 길로 중화요리집을 나온 현영은 계속 기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벨만 울려댔다...

아무리 화가 나도 전화든 문자든 기현의 연락은 제때제때 받고 답을 하는 현영과 달리 기현은 몇날며칠이고 침묵으로 응대하곤 하였다. 그리 되면 십중팔구,  원인제공자가 누구든 현영쪽에서 먼저 머릴 수그리고 들어갔고 그러면 기현도 조금씩 마음을 풀곤 하였다.

이번에도 그가 화가나서 전화를 피하려니 한 현영은 어떻게든 빨리 그를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식당가 모든 음식점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기현은 이미 그곳을 떠났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자 현영의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그리고 공들여 하고 나온 화장도 이미 땀으로 엉망이 돼버렸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간 미친여자 취급을 받겠다  싶어 그녀가 공용 화장실로 들어설때 맞은편 남자 화장실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스치고 갔다.




현영은 그저 침묵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해주는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설 즈음 들려온 비명소리는, 옆 남자 화장실 용변칸에 목을 매단채 죽어있는 기현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낸 소리였다.


그는 왜 죽었을까? 그녀는 곰곰 생각해보았다. 기현의 치밀한 성격을 본다면 , 석진과 마주앉아 있는 현영의  모습 하나로 설령 오해는 했다 쳐도 죽기까지는 할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은 이후로 계속 혼란에 빠뜨렸다.



더이상 기현도 없는 낯선 동네에 살 필요가 없어진 현영이 다른 곳에 집을 계약하고 짐을 꾸리던 어느날 밤이었다. 포장이사를 하기로 하였지만 그래도 주인이 챙겨야 하는 짐들이 있어서 그 짐을 꾸리는데  가위가 보이질 않았다.

어따 뒀지? 하고 그녀가 가위를 찾아 두러빈거리는데 "이거 찾니?"라는 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하고 돌아본 그녀는 저만치 가위가 놓여있다. 기현씨? 하고 자기도 모르게 새나온 이말에 스스로가 놀라하면서도 그녀는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하지만 이미 죽어 화장까지 해버린 그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들었다 판단하고 짐을 마저 싸려는데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현씨..그렇게 가는게 어딨어....라며 그녀는 짐싸기를 포기하고 밤새 그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그렇게 퉁퉁 부운 눈을 하고 다음날 단지 안 분식집을 향해 그녀가 다가갈때 "나 배고프다"라는 기현의 소리가 또 들려왔다. 하지만 현영은 이번엔 돌아보지 않았다. 이런다고 하였다. 근친이나 배우자의 죽음을 당하면 한동안은 환청, 촨시, 환각을 경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해서 그녀가 그 소리를 무시하고 분식집 문을 열려는데  문 손잡이를 잡는 그녀의 손을 움켜쥐는 손이 보였다. 기현의 손이었다...가 그만 . 이젠 쉬어 편히. 하고 그녀가 그 손을 자기 손에서 떼어내려 하자 그 손에 악력이 가해비며 그녀를 잡아 끌었다. 이러지 마! 하고 그녀가 그 손을 뿌리치려 하였지만 결국에는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작긴 해도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진 이런 동네에 이런 후미진 곳이 있다는걸 그녀는 알지 못했다 .

현영이 기현의 손에 이끌려 온곳은 폐가나 다름없는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그런 곳이었다. 현영은 오싹 한기를 느꼈다. 그제야 그녀는 기현이 옆에 없다는걸 알아챘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자기는 무엇에 홀려 왔다는 걸까? 그녀가 혼란에 빠져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났다. 놀란 그녀가 홱 고개를 돌리자 바로 자기 뒤에서 벽이 무너져내렸다. 하기사 늘어선 빈집들의 상태가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수 있음을 말해주긴 하였지만...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한걸음 내딛자 이번엔 어디선가 여자의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라고 현영이 소리치자 그 웃음소리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 현영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사지가 마비되는듯 심하게 저려왔다. 

"가라고 했잖아 이제 그만!"이라고 그녀가 소리치는데 밖에서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강풍이 가시지 않아 비는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들이쳤다. 그 비에 그녀는 온몸이 다 젖었다. 그녀는 벌벌 떨었다...그러는데  그앞을 지나던 취객 하나가  힐끔 안을 들여다본다. 현영 허물어진 벽의 잔해를 집어들었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때 취객은 이마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었다. 그 옆엔 망연자실 주저 앉아있는 현영이 있었다. 이미 그녀의 두눈은 초점이 없었고 경찰이 묻는 말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들것에 실리는 순간 숨을 멎었다.



정당방위가 인정돼 풀려난 현영은 오랜만에 자기집으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건 이사가기 위해 싸다 만 짐 꾸러미였다. 가위...그 가위가 저만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기현이 찾아준 그 가위...

"미안해 기현씨..."하며 그녀가 울먹였다.


현영의 2년에 걸친 스토킹을 피해 여기까지 도망쳤지만 현영은 기어코 기현을 따라 같은 동네로 이사를 왔고 하루 걸로 밥을 같이 먹자, ott 영화를 같이 보자며 전화를 걸어왔다. 기현은 한번만 더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마음에 그녀를 만나러 대형마트 식당가로 갔지만 그녀는 나타나질 않았다. 그리고는 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냐고 근거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집에서 내쫓은 뒤 기현이 한숨 돌리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정신도 온전치 않은 여잔데...하는 생각에 그녀를 뒤쫓아 간 기현은 그녀가 중화요리집에서 웬 남자와 마주앉아있는 걸 보았다. 뭐야 이여자...하는 마음에 살짝 질투가 이는걸 느낀 자신이 우스웠다. 스토커와 사랑에 빠진다는게 이런걸까, 하며 인근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자신의 머릴 강타한게 있었다. 분명 둔기였다. 정수리를 가격당한 그는 그자리에서 숨이 멎었고 그런 그를 석진과 현영이 자살로 위장했다...

"하도 애원을 해서 제가 거들었습니다"라고 석진은 뒤늦게 경찰에 진술하였다.


석진의 진술에 다급히 들이닥친 경찰이 현영의 집에서 본것은 집안 여기저기 나뒹구는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들이었다. 그리고 가위가 한가운데 놓여있다.

그녀를 찾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 옥상까지 올라가봈지만 그녀가 투신한 흔적은 없었다...

이러다 미제 사건으로 남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찰은  사라진 현영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른 새벽, 낚시를 하던 초로의 남자가 건져올린건 물고기에게 두눈이 파먹힌 젊은여자의 시신이었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잘려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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