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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Mar 01. 2024

피크닉

해진은 아무래도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겠다 생각한다. 별거중인 남편 윤석과 재결합할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해진은 이른 아침부터 아직 잠에 빠져있는 딸 경을 흔들어깨운다

"왜..."라며 경은 모로 돌아눕지만 그런 경의 엉덩일 찰싹 때리며 해진은 아이를 깨운다.


아이는 식탁앞에서도 꾸벅꾸벅졸았다.

그야말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너 정신 안차려!"

따끔한 해진의 이 말에 아이는 움칫한다.

"오늘, 진짜 아빠랑 어디 가?"

아이는 그제에 두눈을 비비며 잠을 떨치려고 한다.

"응. 조금 있음 아빠 와"

"인제 그럼 아빠랑 같이 살아?"

그런 말을 하는 아직 어린딸이 해진은 안쓰럽다. 해서 아이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해주며 "응...그렇게 될거야"라고 그녀는 말한다.



해진과  윤석은 사내 커플로 만나 몰래 데이트를 하다 해진이 혼전임신을 하는 바람에 서둘러 결혼하고 해진은 퇴사를 했다. 그리고는 경을 낳고 내내 집안에만 갇혀사는 '경단녀'가 되다보니 어느날 자신이 이러려고 명문대를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집안일이 시들해지고 해도해도 티도 나지 않는것에 화가 나서 남편 윤석에게 짜증을 부리곤 하였다 . 처음엔 허허 웃어  넘기던 윤석도 어느 순간부턴가는 맞짜증을 냈고 사소한 일로 둘은 다투었고 '여자가 집에서 애나 잘 키우면 되지!'라는 말은 그의 가부장적 근성에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둘은 급기야 '이혼'을 언급하다 그래도 아이를 봐서 일단 별거를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반년이 흐르다보니 해진은 슬슬 위기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사회로 돌아가길 포기한건 아니지만 일단 가정만이라도 온전히 되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힘들게 소풍 이갸기를 윤석에게 꺼냈다. 그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그러지 뭐'라고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오랜만에 피크닉을 가게 되었다.



지난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뿌려 해진은 내내 소풍이 무산될까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새벽부터 비는 점점 잦아들었고 아침이 되자 비온뒤의 청명함이 선선한 바람까지 몰고와서 나들이하기에 더욱더 적합했다. 날씨마저 돕는다 생각하니 윤석과의 재결합에 그린라이트가 켜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에 해진은 딸 경을 서둘러 샤워시키고 머리까지 감겼다. 그리고는 헤어드라이어로 급히 머리를 말리는데 아이가 문득 "엄마 , 그렇게 좋아?"라고 물었다.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킨게 조금은 창피했지만 딱히 틀린말도 아니어서 "응 좋아"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윤석은  아파트 동 앞에 바싹 차를 갖다대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밤 윤석도 내리는 비를 보며 해진과 똑같은 걱정을 하였다. 남자 혼자 5평 오피스텔 생활을 한다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고 딸 경을 낳고는 자기를 멀리했지만 그래도 보름에 한번꼴로는 아내 해진을 안을 수 있었는데  그런 욕구까지 채우지 못하다보니 빨리 합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려니 자존심이 상하고 굽히고 들어가는 거 같아 기선제압 차원에서도 참고 있었다.

그렇게, 파킹시킨 자신의 suv 주위를 서성이는데 "아빠!"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는 홱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달려드는 경을 번쩍 안아 올렸다. 그 뒤에서 해맑게 미소짓는 해진이 보였지만 뭐라 말을 하진 않고 차 뒷좌석에 경을 태웠다. 그러자 해진이 자연스레 조수석에 올랐고 마지막으로 윤석이 운전석에 앉아 페달을 밟아 셋은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빠져나갔다.



딸 경은 '따라오지 마!"라며 곧죽어도 혼자 '쉬'를 하고 오겠노라며 다 큰 아이 티를 냈다. 하긴 여섯살이면 다 컸지 뭐, 하며 윤석이 태연한 척은 하지만 얼굴엔 걱정의 빛이 역력했다. 아이도 이제 남의 눈치를 제법 봤고 해서 대변이 급한걸 그냥 쉬가 마렵다고 말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거겠지 하던 해진의 표정에도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덤불숲으로 들어간지도 10여분이 넘었다. 아무리 대변을 본다 해도 이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생각에 부부는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딸 경을 찾기 시작하였다.


숲은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차 있고 길은 생각보다 험준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며 숲을 아무리 뒤져도 아이는 대답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금세라도 '엄마 아빠'를 외치며 숲 어딘가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은 아이가 감감 무소식이다.. 그렇게 헤매던 해진은 기어코 울먹이기 시작했다.

"여보..."

그러자 윤석은 해진을 다독이며 진정시키려 한다.

"별일 없을거야. 좀 깊숙이 들어갔나보지. 당신 여깄어. 내가 갔다올게"라며 덤불을 헤치며 걸어간다. 쳐다보던 해진이 그의 뒤를 따르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놀란 해진이 꺅! 비명을 지르자 저만치 가던 윤석이 돌아보았다.

해진의 바로 앞에 떨어진건 길이 1미터쯤 돼보이는 실뱀이었다. 해진은 다가온 윤석의 품에 달려들었다.

"당신은 텐트에 가있어"라며 그가 나뭇가지로 실밤을 집어 멀리 던져버린다.

"같이 가"라며 해진이 윤석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부부가 점점 숲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엄마!"하고 부르는 경의 소리가 들려왔다. 딸의 목소리에 반색하며 부부가 소리난쪽으로 뛰어갔지만 그 자리에 경은 없었다. 그러는데 이번엔 다른 쪽에서 "아빠!"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부부는 오싹해졌다.


어느새 산엔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몇시간째 딸 경을 찾아 헤매던 부부도 지칠대로 지쳐 바위턱에 걸터 앉아 숨을 고른다. 해진은 울고 있다..

"분명 경이 소리였어. 틀림없어"

"환청 아니겠지?"

"아니야 . 분명 경이였어...당신은 여깄어 "라며 윤석이 혼자 저벅저벅 더 깊이 들어간다.



그렇게 밤이 올때까지 해진은 망연자실해서 부녀를 기다렸지만 둘의 모습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전화 플래시에 의지해 숲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딸에게, 남편에게 전화를 아무리 해대도 산이어서 그런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폰 배터리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배터리를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폰을 끄고 어둠을 더듬어 나아갔다. 다리가 긁혀 피가 났고 얼굴이 나뭇가지에 스쳐 따가웠다. 하지만 그런게 뭐  대수랴 싶다. 아이와 남편만 찾을 수 있다면...

저만치 울창한 나무들위로 별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진마저 길을 잃고 숲의 미아가 되었다.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돼줄걸. 사회복귀가 뭐 그리 급해서 남편 윤석을 닦달했을까, 하는 후회가 마구밀려왔다. 탈진한 그녀가 걸음을 내닫다 말고 푹 쓰러지는 순간, 어디선가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소리는 산을 타고 에코를 만들어 쩌렁쩌렁 울려댔다. 해진은 극심한 공포에 나무 뒤로 숨었다. 그런다고 숨어지는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몸을 피했다.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나뭇잎을가르며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진은 얼굴의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옆의 굵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곤두세웠다. 그런데 다가오던 발소리가 갑자기 딱 끊어지더니 여기저기서 밤새가 날아 올랐다. 그러자 나뭇잎들이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내렸다. 밤새들은 저 멀리 별을 향해 날아갔다...


쓰러져있는 해진을 일으켜 세운건 여자의 손이었다.

어두워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에서는 심한  냉기가 전해졌다. 해진의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흘렀다.

"누구...세요?"

라는 해진의 질문에 "제 손을 잡아요"라는 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음역대가 아닌듯한 그 소리에 해진은 앉은걸음으로 물러났다.  여자는 한참을 우두커니 그렇게 서있더니 서서히 몸을 돌려 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둠속 한점 실루엣으로 남을 즈음 , 해진은 아무래도 그녀가 딸과 남편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다. 그렇게 서로 보조를 맞추게 되자 해진이 물었다

"딸애랑 남편은 어딨죠?"

"잠들었습니다"

그말이 곧 '죽었다'는 얘기로 들린 해진은 순간 상대 여자의 목을 두손으로 움켜쥐었다.

"어떻게 했어. 내 남편이랑 내딸! 니가 죽였어?"라고 소리치자 숨을 헐떡거리며 상대가 말했다. "나를 꺼내줘요"라고...

그 말에 해진은 두손을 상대의 목에서 거두고 찬찬히 그녀를 보았다 . 마침 나무 사이로 달빛이 새어들어 그녀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희다못해 창백했고 나이는 자기 또래였다. 젊은 여자가 무슨 일로...하는데 그녀가 다시 애원한다 "나를 좀 꺼내줘"라고...

그리고나서 그녀는 다시 걷고 시작했다.


해진과 윤석, 딸 경아는 다음날 정오무렵에야 구조대에 의해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 앰불런스에 실리면서 해진은 막연하게 이제 살았다는걸 감지했다. 구급대원 옆에 나란히 앉은 딸과 윤석을 보며 그녀는 안도했다. 경은 해진이 눈을 뜨자 "엄마!"하며 울먹였다. 그런 딸을 달래며 윤석이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걸 보면서 이제 비로소 온전한 가족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앰불런스는 빛의 속도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해진이 숲에서 창백한 그녀를 따라 간곳은 작은 폭포 근처였다. 그제서야 해진은 일의 전말을 파악했다. 그녀는 변심한 남자에게 등 떠밀려 푹포 아래로  떨어진 원혼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물속 어딘가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꺼내줄게요.  내 아이랑 남편을 돌려줘요"라는 해진의 말에 상대는 "꾝요"라며 애원을 하였다. 해진은 자신의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가는걸 깨닫고 서둘러 112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여전히 연결되지 않아 해진은 여기저기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아 헤매다 간신히 연결을 해서 익수자가 있다는 신고를 하였다. 그러고나자 그녀는 고맙다며 손으로 저만치를 가리켰다 . 그곳에 약간의 찰과상만 입은 경과 윤석이 누워있었다. 해진이 다급하게 다가가 둘을 흔들자 둘은 달콤한 꿈이라도 꾼듯한 얼굴로 눈을 떴다. 그렇게 세식구가 감격의 재회를 하고 나자 그제서야 해진은 조금전 그녀가 생각나 다시 그 자리로 가봤지만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응급실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고 나오는데 병원 복도에 비치된 tv에서 "산속 실종녀, 익사체로 발견"이라는 문구가 해진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경찰과 구조대원들이 물에서 그녀를 들것에 옮겨싣는 광경이 나왔다. 물끄러미 화면을 들여다보는 해진의 팔을 윤석이 끌며 어서 가자고 하였다. 딸 경은 윤석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그렇게 세식구는  윤석의 suv에 올라타 서서히 병원을 빠져나간다.

그뒤를  여자 그림자 하나가 뒤따랐다... 그림자는 한참을 더 뒤따르다 어느샌가 스르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일주일후, 그녀를 살해한 변심한 남자의 얼굴이 tv화면을 가득 메웠다.


해진은 다시 비가 내치는 창밖을 보며 이제 곧 퇴근해 올 윤석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매탕을 끓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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