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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Mar 02. 2024

아늑한 집

소영은 첫눈에 이집이 마음에 들었다. 공실에 깨끗이 수리가 돼있어 구축아파트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 원준은 조금은 망설이는 눈치다.

"보셨을때 하세요"

옆에서 중개업자가 부추긴다.

"여보, 하자 그냥 "

그러자 원준이 중개업자에게 말한다. "혹시 사람 죽은 집은 아니죠?"

그말에 중개업자가 뜨악해하더니 "젊은분이 별걸 다 따지네..그렇게 치면 사람 죽은 집 아닌 데가 얼마나 될까요? 아이구 참...아니예요. 신혼부부가 살다가 부자돼서 나간 집이예요. "라며 거드는 눈치다.

그말에 원준은 "아, 예..."하면서도 조금만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노라 한다.



"그러다 놓치면 어뜩해"라고 돌아오는 길에 소영이 툴툴대자

"이상하잖아. 아무리 싸게 나와도 시세라는게 있는데...게다가 수리까지 다 해놓고"라며 원준이 차선을 바꾼다.

"치..."하며 소영이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밖은 완연한 봄이었다. 올듯 말듯하던 봄이 드디어 온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다. 이러다보면 벚꽃도 피겠다...

"우리 이사하면 강아지 한마리 키울까?"

소영의 머릿속은 조금전 보고 온 그집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벌써 계약 해버린 느낌이다.

"다른 데도 좀 보고 결정하자"라며 원준은 다음 중개업소의 약속시간에 맞춰 페달을 밟아댔다.



결국 소영의 채근과 원준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수리된 그집을 계약하기로 하였다.

"잘 생각했어요. 안그래도 다른 데서 연락오고 그랬는데 내가 신혼부부가 할거 같다고 미뤄뒀어요"라며 중개업자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였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30대 중후반 정도의 삶의 기반이 잡힌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여기 살기 좋습니다. 산도 있고 물도 있고..서울에 이만한 데 없죠 이제"라며 조금 아쉬운척 한다.

"와이프가 기관지가 안좋았는데 여기서 싹 다 낳아서 갔어요. 매일 등산하고 그랬거든요"라며 그가 덧붙이자

"여기 공기하나는 끝내줍니다"라며 중개업자가 거든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계약을 마치고 집을 한번 더 볼수 있겠냐는 원준의 말에 집주인은 그러라며 양해를 해주었다.

그렇게 소영과 원준은 약간 언덕받이에 있는 그 아파트 단지로 다시 향했다.

"숨차.."라고 소영이 헉헉거리자

"니가 좋다고 해서 한 계약이야"라며 원준이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들어선 그집은 며칠전 본 그대로였다. 작은 공간에 용케도 방 세개를 뺐고 거기다 침실욕실을 별도로 뺀게 앙증맞고 실용적이었따. 게다가 온통 화이트 일색인 대부분의 인테리어를 벗어나 과감히 그레이톤과 베이지 톤으로 간게 무척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소영은 "여긴 우리 침실, 여긴 당신서재, 그리고 여긴 손님방"하며 이미 이사릉 와버린것처럼 굴었다.

"파기하면 계약금 다 줘야되나?"라는 원준이 불쑥 던진말에 소영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나다. 재수없게...



그렇게 이사가 정해지자 소영은 지금 셋집에서 쓰던 물건은 과감히 버리고 가자고 닦달을 하였다. 버리면 다 돈이라고 아무리 원준이 만류해도 소영은 이미 배송예정일까지 지정해 새집으로 가구들을 주문한다. 니가 다 책임져,라며 원준이 타박을 줘도 소영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화장실좀 써도 될까?"라며 침실크기를  줄자로  재던 원준이 배가 아픈지 급해한다.

"얼른 눠"라며 소영욕실 문을 연다.  작은 욕실도 깨끗이 수리돼있고   휴지까지   걸려있다. 요즘   부부는  그렇게  부동산엔 연락도 않고 그 집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그렇게 원준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용변을 보는 동안 소영은 앞뒤 발코니를 살펴보며 세탁기를 어디에 둘까를 고민한다. 앞발코니에도 수도가 달려있어 여기서 써도 되나보다, 하고는

"자기야. 이집 넘 편하다"라고 소리쳤는데 욕실에서 원준의 대답이 없다.

"아직두야? 그래서 내가 채소 많이 먹으라고 했잖아"라며 그녀가  욕실로 다가가서 노크를 해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나왔어?'라며 그녀가 여기저길 둘러봐도 원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순간 그녀는 불안한 느낌에 욕실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타일 바닥에 원준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앰불런스 안에서 응급처치를 받을때까지도 원준은 의식이 없었다. .그리고는 응급실에 도착해 갖가지 처치를 받고서야 그는 겨우 눈을 뜨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잔뜩 걱정어린 소영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집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원준이 말한다.

"뭘, 봤어 그 안에서?"소영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묻자

"파기해. 나가는대로 계약 파기해"라며 원준은 강하게 나왔다.



그날 원준이 욕실에서 본건 욕실 선반에 목을 맨 여자의 시신이었다. 원준이 용변을 다 보고 바지 지퍼를 올리는 순간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부패해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원준은 소리치려 하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며 원준이 소영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당신이 그 집 내켜하지 않으니까 헛것을 본거지 뭐"라며 그녀가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정신차려!  아무리 그래도 시세라는게 있는데"

"요즘 시세가 어딨어. 급한대로 파는거지"라며 그녀는 그래도 그집을 고집하였다.

그말을  듣자 원준은 진짜 자신이 헛것을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그는 퇴근을 그 집으로 했고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욕실로 직행하였다. 욕실은 아무 이상도 , 목을 맨 여자도 없이 깨끗하였다. 내가 신경이 예민했나,하고 그가 소변을 누는데 여자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가 돌아보자, 어제 그 자리에 목을 맨 그녀가 또다시 매달려있다. 그런데 부패한 그녀의 입이 울먹이고 있다.

바지지퍼를 올리는 것도 잊은채 원준이 욕실에서 뛰쳐나오려 하자 그녀가 "제발..."이라고  애원하였다.

아무래도 이집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생각에 원준이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소영은 야근한다며 늦게 들어온 원준의 행동이 아무래도 이상하기만 하였다. 아무 말도 않고 씻지도 않고 출근복장 그대로 피곤하다며  잠자리에 들지를 않나, 그래놓고는 밤새 잠못이루고 뒤척이질 않나...

그러더니 다음날아침 해가 밝기도 전에 출근한다며 나가버린것이나...

이삿짐을 싸던 소영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는걸 질색하는 남편이라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일에 방해 되는것도 싫어해서 하지도 못하고 그녀는 끙끙댔다.

그렇게 하루종일 심란해하던 그녀에게 새로 계약한 그 집 중개업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집주인은 법대로 한답니다:"라는 말에 소영은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계약금 전부 떼이는거 아시죠? 해약하면?"이라고 중개업자가 볼멘 소리를 한다.

"아뇨. 해약 안했는데"라고 그녀가 덧붙이는데 전화가 딱 끊겨버린다.


그날밤 자정이 다 돼서야 술에 만취해 원준이 들어오더니 또다시 옷도 벗지 않고 침대로 들었다.

"당신 그집 해약했어?"

"응."하고 그는  등을 보이고 모로 돌아눕는다.

"왜..."하며 그녀가 흔들자

"느낌이 안좋아 아무래도"라며 그는 잔다고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계약금이 얼만데.."

"그래도 흉가에 들어가 사는거보단 낫잖아!"라며 그가 발끈해서 일어난다.

"흉가라니?""

"아 몰라몰라.."하고 그는 베개를 끌어안고 침실에서 나가 거실  소파로 갔다.

그제야 소영은 이번 이사가 물거품이 된것을 인정해야했다.



이후로 원준은 야근이나 특근을 핑계로 자주 늦거나 하지 않던 외박을 하곤 하였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그는 퉁명스레 "뭘 알려고 해?"라며 화를 내서 소영은 더 묻지도 않았다.

안그래도 빠듯한 벌이에 계약금 수천을 날리고나니 소영은 앞날이 막막했다.

"뭐 먹구 살아 우리?"라고 하면 원준은 들은척도 안했다.


"당신을 기다렸어...이렇게 우리가 다시 마난게 될거라고 생각했어"라며 욕실에 목을 맨 희정은 담담하게 말을 했다.

"너였구나...희정이 , 너..."

"그래. 당신이 무참히 짓밟고 버린 나 희정이야. 강희정"이라며 그녀가 여전히 공중에 대롱거리며 말을 햇다.

그러자 원준은 두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러지 말았어야지...당신 애까지 가진 여자를 어떻게"라며 희정의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땐...그땐 다른 방법이 없었어. 니 집 형편이 너무 안좋았잖아. 중풍으로 10년째 누워 계시는 홀아버지, 그리고 니 동생들...너한텐 얘기 안했지만 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하셨어"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도 당신 기다렸어. 까페 문 닫을때까지 커피를 다섯잔이나 마셔가면서"

"미안...할말이 없다. 그렇다고...그렇다고 이렇게"

"당신이 오지 않는다는걸 알고 난 차에 뛰어들었지. 하지만 부딪치진 않았어. 그냥 기절해버렸고 그때 운전하던 사람이 지금 남편이야

"..."

"내가 사연있는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묵묵히 나를 받아줬어. 그리고 잘살고 싶었는데...되지가 않았어. 당신한테 버려졌다는 생각에..."

"바보.."라며 그는 그녀의 목에 감겨있는 수건을 이어 만든 수건끈을 걷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하중이 고스란히 그에게로 전해지면서 그녀는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했다. 네게 돌아오겠다고.. 돌아와 너와 살겠다고.


그리고는 퇴근하면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고 그러면 둘은 같이 저녁을 먹고 함께 잠을 잤다. 그리고는  밤이 깊으면 그는 소영에게로 오곤 하였다...

어느날 소영을 "희정"이라고 부른게 결국 사달이 났고 소영은 그동안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럼 죽은 여자와...시신과 동침을 했다는거야?" 라며 기겁하는 소영에게 그가 그동안 준비한 말을 했다. 이혼하자고.

"미쳤어...미쳤어 니들 둘다" 하고 그녀가 발코니쪽으로 뒷걸음을 친다.

싼 매물을 구하겠다고 새시가 없는 집을 고른것도 소영이었다. 난간턱은 고작 50센티도 되지 않았다.

원준은 점점 더 그녀를 발코니쪽으로 몰아갔다. 하늘의 달빛은 그날따라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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