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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5. 2022

<실연> 단상

나역시 한때 자작나무를 탔었다...

  이 나이가 되니까 제일 아쉬운게 ‘연애감정’이다. 웬만해선 발동이 안걸리는 연애 혹은 사랑이라는 그 정서...그만큼 나이 들면서 삶이 퍽퍽해졌다는 얘기리라. 생활비를 벌어야하고  집을 유지해야 하고 차도 굴려야 하고...그러다보면 연애감정은 개나 줘버리고 사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미국시인 프로스트의 시처럼 ‘나역시 한때 자작나무를 탔던 적’이 있었다. 짧게나마 나의 연애이력을 살펴보면,          


 우선 사춘기 여중생 겨울방학때 한강 스케이트장에 친척 언니와 놀러 가곤 했는데 거기서 그야말로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갸름한 역삼각형 얼굴에 검은 테의 안경을 쓴, 나중에 들은 바로는 동네도 나와 같았고 K대생이라는 것이었다. 동네에서 마트를 하던 친척언니는 그와 일면식이 있어 나도 인사시켰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 내 온 존재는 그 하나를 위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연애감정의 덫에 걸린것이었다. 몇날 며칠을 속앓이를 하다 그의 집을 알아내 장문의 연서를 보냈다. 그리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기필코 K대 들어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곤 며칠후 친척 언니로부터 그가 나를 좀 보고 싶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아 드디어 그날이다”하며  가장 예쁜 옷을 챙겨입고 동네 제과점에 들어선 순간, 그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마주앉자 그는 이렇게 내뱉었다.“어리니까 공부 열심히 해” 였다. 주책맞게도 그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나왔고 먼저 간다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난 연신 그 눈물을 훔쳐대야 했다.       

        

 그 다음 대학입학 초창기였다. 나의 첫사랑이 다닌 K대 실력에 갈 실력이 못돼 한단계 낮춰 H대에 들어간 나는 여고 동창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내 상대는 하필 같은학교 무역학과라고 했다. 내게 적잖은 관심과 배려를 보였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외모가 열일한다’주의여서 그 삐쩍 마르고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뿔테 안경의 그 아이가 어딘가 ‘갑각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에프터도 야멸차게 거절하고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오자마자 그 아이가 너무나 그립더라는 것이다.자꾸만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던 그 아이....농구를 자주 한다고 했든가, 해서 며칠후에 난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무리들과 농구하는 그 아이와 재회했다. 그 아이는 마침 내가 올걸 알았다는 듯 “왔어?”하고 씩 웃어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도서관에서, 종일 농구나 당구를 치러 돌아다니는 그 아이의 책가방 지킴이 노릇을 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잔뜩 땀에 찌든 그아이가 나타나서 “안갔냐?” 하며 툴툴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춤추러 가자”며 그 아인 나를 끌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태원 모 클럽에 끌려갔고 안되는 춤을 신들린 듯 추어댔다. 그러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인  불쑥 플라스틱 팔찌를 주머니에서 꺼내보이며 “부산갔다 오며 사온거야”라며 내 손목에 끼워주었다. 그순간 쓰나미가 돼서 밀려왔던 그 감동이란, 그러나 5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 그 아인 저벅저벅 저만치로 가버렸다. 영문을 몰라하던 나는 “어디가?” 라고 했고  “초등학교 동창”하며 방금 내게 끼워준 팔찌따위는 아랑곳 않고 그쪽으로 가서 한 여자아이의 팔을 잡아 끄는게 보였다. 그럼 이 팔찌는 왜 나한테 준거니....하면서 난 그 팔찌를 손목에서 빼냈다. 나중에 들은바로는 대학졸업후 곧바로 그 둘은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 졸업 무렵, 나름 도서관 지킴이를 계속 하던 내 자리에 누군가가 잠깐 나 없는 사이를 틈타 쪽찌를 남기는 경험을 했다. 길진 않지만 분명 연애감정이 녹아있는. 특이한 필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엔 애써 무시하려했지만 그게 매일 반복되다보면 은근히 기다리게고 나역시 연정에 휘말리게 된다.

 어느날 나 나름으로 꾀를 냈다. 자리를 뜨는 시늉을 하고 저만치 먼 자리로 옮겨 지켜보았다. 그러자, 어느 고슴도치 머리의 조금은 유약해보이는 청바지 차림의 , 첫눈에도 복학생 차림의 한 남자가 쪽지를 내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었다.“ 잡았다”싶어  얼른 가서 그에게 아는체를 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이 벌개지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후로 나는 본격적으로 연애라는걸 했다. 학교 뒷동산에서 비오는 날의 데이트를 즐기고 학교앞 호프집에서 서비스 안주를 서로 먹여주며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데 그가 잠깐 자릴 비운 사이, 도서관 우리 자리로 어느 여자가 걸어왔다. 그리곤 내 옆의 그의 가방을 확인하더니, 나보고 잠깐 얘기좀 하자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채 이끌려 나간 나에게 그녀는 “그를 놓아줘라.우린 이미 부부나 다름없다”라는 말을 했다. 

 세상, 내가 알고 한 짓도 아니고 쪽지를 투하한건 저쪽인데 너무 억울해서 훌쩍훌쩍 울자, 여자는 내게 손수건을 내밀고 “듣던대로네요”라고 했다. 듣던대로라니. 무슨 말을 그가 그녀에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나의 알뜰한 연애스캔들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훗날 그는 S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합격했고 그녀와 약혼을 했다고 한다. 그놈의 쪽지들은 그럼 뭐였단 말인가.       

        

  물론 이상이 내 평생의 모든 실연담은 아니다. 잠깐 유부남과 얽혀 그야말로 ‘디지게’고생도 해봤고 외국인과 ‘롱디연애’라는것도 했는데 나중에야 유부남이란걸 알고 국제전화로 관계를 끝내고 펑펑 울던 기억이있다.그런가하면 한참 어린 연하가 하도 대시를 해서 마침내 그걸 받아주려하자, 3개월후에 결혼한다는 말을 듣기도.          


  누군들, 태어나서 한두번 연애라는걸 안해봤으랴, 그 과정에서 또한 실연을 안당해봤으랴,만은 나의 연애는 늘 실연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내나름으로 ‘연애가 안되는 팔자’라고 정의내림을 했다는 이야기 되겠다.     

  수많은  암환자의 대 부분이 젊은날 실연을 당해 그 여파로 병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실연당하면 그것을 글로 풀어내라고 조언한다. 그러다보면, 내안의 자괴감, 상처의 응어리들이 씻겨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대신 나는 실연 한 건당 외국어를 하나씩 배워갔다. 대부분 독학으로. 그렇게 익힌 외국어가 적지않다. 그것은 실연으로 무너진 내 자존감의 회복이면서 또 다른 세상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졸업후 한참이 흘러 학교에 자리잡은 한 동창을 만났는데, ‘그런 일’ 자꾸 겪지 말라면서 내 어깨를 안는 것이었다. 이럼 또 겪어야 하잖아, 하면서도 그 팔을 떨쳐낼수 없었던 나는 그로부터 얼마후 그의 청첩장을 받아 들어야 했다. 그리고는 스페인어 독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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