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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5. 2022

<말꼬리>단상

목포행 열차...

          

 몇해전 TV 예능에서 우연히 “말꼬리”라는 노래를 들었다. 한 아이돌이 불렀는데 마이너로 시작돼 죽 그 톤으로 점점 격하게 진행되던 노래였고 그 여운은 깊고 강하게 내 안에 박혔다.  이후 그 아이돌은 군대 갔지만  나는 그 노래를  계속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말,은 뭘까? 일단 정의를 살펴보면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해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라고 정의돼있다.

 그럼 흔히들 “말꼬리”라고 하는건 무얼까?

그건 “말의 뒷부분”이라고 한다.          

  영어로 sholud have p.p.구문이 있다.

“과거에 ...라고 했어야 하는데”라고 해석되는데, 그것은 하지못한 것의 회한을 나타낸다.     


 누구나 이런 가슴아픈 기억 한두가지씩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할 말 다 하면서 산단 말인가. 이런 저런 이유로, 할말을 다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릴적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를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마지막 신에서, 예전에 열렬히 사랑하였던 두 연인이 재회하지만  남자는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그 아이를 안으며 옛여자는 울먹이며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만약,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고 했더라면, 영화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영화는 끝나고 그래서 명작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남은 삶은 얼마나 피페했을까를 상상하면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내 개인사라고 별반 다를 리 없다.  여고 동창하나와 남영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그 친구는 재수중이었고 나는  대학 새내기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학교정문을 나서는데 ‘그’가 오고 있었다. 저만치 횡단 보도를 건너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번도 그런일이 없던 터라, 난 긴가민가 했지만, 건널목을 다 건너온 그는 정확히 내 앞에 섰다. “뭘 그렇게 놀래?”하며 씩 웃어보였다.


  아, 친구가 날 기다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이끄는대로 학교앞 술집으로  따라갔고 그가 주문을 하는 동안 손가락으로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결국 친구한테 못간다는 전화는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유를 알수 없다.

  그렇게 그 친구는 바람부는 남영역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그날, 난 고작 맥주 두어잔을 그와 나눠 마신게 다였다. 그렇게 그와 술집을 나와  또다시 기약도 없이 헤어지고 그제서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어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는 종료음을 냈고 그걸로 그친구와는 연이 끊어졌다. 이후에도 여러번 나는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친구의 마음을 다신 얻지 못했다. 지금도 내 생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이제 ‘그’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꽤 오래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그러다 우연히 그가 대기업에 입사해 목포 로테이션 근무를  하고 있으며 잠깐 짬을 내서 서울에 올라와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용기내서 그에게 전화를 했고 그와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리곤 잠실에서 한시간 거리의 기차역까지 택시를 탔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를 보고 싶었다. 늘 어긋나던 우리의 연을 이번만은 이어보겠노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역에서 나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보는 순간, 난 준비해온 모든 말을 잊어버렸다. 의례적인 미소조차 , 인사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역시 굳은 표정으로 어디가서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둘은 마치 싸운 사람들처럼 근처 까페로 향했고 뚝뚝 끊기는 말 속에 커피만 홀짝였다.

 그러다보니 기차 시간이 다 됐고 그는 그만 가야겠다고 일어났다. 그때 난 마지막 용기를 내서 물었다. “가끔 내 생각은 하냐”고. 그러자 그가 “가끔”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고 개찰구를 통과하며 그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살짝 미소를 보낸것도 같다.

 아, 이렇게 또 헤어지는구나, 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 만약 “나도 데려가라”고 했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차역을 울며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렸지만 그런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영영 잃었다는 상실감은 거의 죽음과도 같았다.


 왜 난 그 말을 못했을까, 그게 내 인생 마지막 기회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다신 못볼줄 알았던 그를 몇 년 후,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서 난 다시 보게 되었다. 이미 아이 둘의 아버지가 돼 있는 그를. 우린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 그를 보면, 그를 생각하면, 그와 닮은 사람만 봐도 설음이 복받치면서도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당신에게 가겠다‘는 그 한마디를. 그렇게 우린 서로를 잃었다.     


 이후로 ‘목포’라는 두 글자는 내 안에 트라우마로 박혔고 상상속의 난 늘 목포행 열차에 올랐다.        

   

 노랫말처럼 우리들의 말은 왜 자꾸 뚝뚝 끊기는걸까?   



                      https://youtu.be/x2e-A9HWl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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